
지금도 나는 그 어두운 골목이 생생하다. 학천이가 다른 친구 편에‘오늘 밤에 전매청 앞에서 단 둘이 만나자’는 연락을 해 와 그 현장에 갔더니 굳은 낯으로 찻길 건너 어두운 골목으로 앞장 서 가던 것이다. 지금의 강대 정문 부근 뒷골목이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며 내게 외쳤다.
“어서 때려! 씨발, 도망 다니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젠 지쳤다.”
나는 맥이 확 풀렸다. 단 둘이 만나자고 했을 때에는 흔한 말로 ‘맞짱(대결)을 뜨자’는 게 아닌가. 전매청 앞에서 만나자마자 이 어두운 골목으로 앞장서 가기에 주먹을 단단히 쥐고 한판 싸울 채비를 했다. 그런데 자기를 어서 때려달라니? 그러잖아도 내 마음 한 편으로‘내가 학천이와 맞장 뜰 일이 있나?’갈등하는 중인데 그리 나오니 도대체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이참에 좋게 화해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화해의 말을 건네야 하나 망설이는데 학천이가 재차 외쳤다.
“지겹다! 어서 때려!”
말이 통하는 상황이 아님을 나는 깨달았다. 그러고 보면 학천이한테서 소주 냄새도 났다. 하는 수 없었다. 주먹으로 그의 등을 두 대 쳤다. 소리만 요란한, 상징적인 의미의 폭행(?)이다. 그런 뒤 나는 그를 데리고 어디 가까운 막걸리집이라도 갈까 했는데… 그 동안의 마음고생이 끝났다는 안도감인지 허탈감인지 뒤도 안 돌아보고 혼자 먼저 찻길 건너로 걸어가 버리는 게 아닌가. 그 때다. 그의 발걸음이 이상했다. 찻길을 한 쪽 발을 끌듯이 절며 건너가느라 편치 않아 보였다. 전부터 그랬는지, 아니면 오늘 낮에 발을 다치기라도 했는지 처음 보는 불편한 모습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를 쫓아가 ‘발이 왜 그리 됐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분위기가 못됐다. 나는 그 어두운 골목에 그냥 서 있었다. 찻길 건너 전매청 앞에 다다른 학천이는 얼마 후 행인들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 후 우리는 사실상 절연한 사이가 되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2016년 초여름이다. 내 첫 작품집 ‘숨죽이는 갈대밭’의 표지화 문제로 태원이를 만났을 때다. 얘기 나누다가 ‘학천이’얘기까지 나왔는데 태원이가 이렇게 얘기했다.
“75년 8월이었지. 내가 입영 영장을 받고 소집 장소에 갔는데 학천이도 오지 않았겠어? 교대를 졸업 못하니까 군대 가게 된 거지. 어쨌든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런데 입영 훈련을 앞두고 신체검사 때 그 녀석이 불합격되면서 인제 고향으로 되돌아가고 말았지 뭐야. 나 혼자 입영하는데 참 마음 쓸쓸하더구먼.”
내 짐작에 학천이는 무릎 관절염을 앓았던 것 같다. 그래서 고향 인제에서 방위로 군 복무를 마치지 않았을까?
춘천에서 자취할 때 간장을 푼 냉수 한 그릇으로 끼니를 해결하고는 온기 하나 없는 방에 이불 펴고 누워서 지내던, 열악한 생활의 결과 같다. 참 안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