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비우는 일’과 ‘뱃속(창자)을 비우는 일’중 어느 것이 더 어려울까?

 답 대신 당장 이런 반발이 나올 듯싶다.

“그게 말이 되는 비교입니까? 전자는 정신적인 문제고 후자는 육체적인 문제인데 차원이 다른 것들을 놓고 어느 게 더 어렵냐고 묻다니 말입니다.  

어쨌든 나는 모처럼의 물음을 물리고 싶지 않다. 이런 내게 2차 반발이 나올 듯싶다.

“아니 그럼 당신은 어느 것이 더 어렵습니까?

내 경험에 비춰 답하겠다.

“둘 다 어렵습니다.

 

사실 내가 에둘러 하는 말의 뜻은 ‘뱃속을 비우는 일도 마음 비우는 것 못지않게 어렵다’는 것이다. 지상에 수많은 다이어트 방법들이 존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위험한 위 절제수술까지 제시되는 것만 봐도 우리 몸의 뱃속 하나를 비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실감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다이어트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어떤 의사 분이 이렇게 말한 것을 기억한다.

“다이어트는 본질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일단 살이 찌면 우리 몸은 본능적으로 그 상태를 유지하는 데 총력을 다 하거든요.

이제 내 결론을 말하겠다. ‘육체적인 문제는 정신적 문제에 못지않다.

 

괜히 서두가 길었다.

나는 올해 춘심산촌에서 농사를 짓다가 두 번 벌에 쏘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벌에 한 번 쏘이기만 해도 목숨이 경각에 이르는 특이체질의 분들이 있다는데 나는 다행히도 그렇지 않았다. 그 점 하나만은 잘 태어났다.

어쨌든 나는 벌에 쏘인 순간 머리에 짧은 벼락을 맞은 듯했다. 그 강렬하고 순간적인 통증이란! 수력발전소나 원자력발전소 같은 인위적인 발전소에서 공급하는 전기가 아니라, 순수한 자연의 발전소(?)에서 공급하는 전기에 순간적으로 감전된 거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강렬한 통증 이외에는 아무 것도 내게 존재하지 않았다.

감히 말하건대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젊었을 때에는 쾌감의 순간들이 수시로 존재했다. 하지만 늙어서는 그런 순간들이 대부분 사라졌다. 그런데 뒤늦게 농사짓다가 벌에 쏘인 순간 통증이면서도 아주 강렬한 쾌감을 경험한 듯싶었다.

이런 내게 누가 물을 수 있다.

“그러시다면 자주 벌에 쏘이는 게 어떻습니까? 구체적으로는 아예 땅벌 벌집 가까이서 지내는 게 어떻냐는 얘기입니다.

나는 영어로 답한다.

NO!"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8-10-06 1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심이병욱 2018-10-06 18:02   좋아요 1 | URL
저는 그냥 견딥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