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태원이는 이상한 학교에 있을 때부터‘교직을 그만 두고 오직 그림만 그리며 사는 생활’을 내게 얘기하곤 했다. 나 역시 이상한 학교를 경험하면서 교직에 대한 회의가 깊어져 그의 그런 얘기를 긍정적인 자세로 경청했던 듯싶다. 그래도 그렇지 실제로 명퇴할 줄이야.

모교로 가자마자 태원이가 명퇴했다는 얘기를 듣게 된 나의 간단치 않은 심적 상황. ‘그렇다. 나도 명퇴하자.1999, 나 역시 모교에서 명퇴를 신청하게 된 사연이다.

하지만‘책정된 예산에 비해 명퇴 신청자가 너무 많아 고경력 자 이외에는 모두 보류시킨다 ’는 도교육청의 조치에 따라 나는 명퇴가 되지 못했다. 교직에서의 명퇴는 그 신청을 반 년 전에 받는다. 태원이가 명퇴를 신청할 때는 전년도인 98년도였고 그 때는 명퇴 관련 책정예산이 충분했던 것이다.

‘모교에 가면 태원이를 만나겠지’했는데 그렇듯 무위로 드러났다. 이제 모교는 지난 60년대의 사춘기 적 꿈의 공간도 아니고 그저 직장일 뿐인데 그마저 마음의 의지가 될 수 있는 친구마저 한 발 먼저 사라져버려, 텅 빈 벌판 같았다. 그즈음 어느 날 후배 되는 한 젊은 교사가 내게 이렇게 물었다.

“선배님. 졸업한 지 30년 만에 모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는 감회가 어떻습니까?

 대단한 회고담을 기대한 듯싶은 그에게 나는 영어로 한 마디 뱉었다.

Nothing.(아무 것도)"  

 

뒤늦게, 모교 오기 전 이상한 학교에 있었을 때 일들이 먼지를 털고 떠올랐다. 두 가지 일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내 딸과 태원이 딸에 얽힌 에피소드다. 94년 여름날이다. 영월 내성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아비의 전근에 따라 춘천의 부안초등학교 4학년으로 전학 온 딸애가 어느 날 웬 친구를 데리고 집에 와 말했다.

“아빠. 혹시 전태원 선생님이라고 아나?

“그럼, 잘 알지. 아빠 친구야.

“얘 아버지가 전태원 선생님이래.

“뭐?!

 

친구애도 내 딸처럼 키 크고 약간 뚱뚱했다. 내게 수줍게 인사하는 태원이 딸을 다시 보며 나는 한 인연이 또 다른 인연을 낳는, 무수한 인연의 영겁을 보는 듯했다.  내 딸이 이런 말을 하며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우리 둘이 친하게 지내니까, 반 아이들이 우리보고 뭐라고 별명 붙인 줄 알아? ‘은방울 자매’래.

은방울 자매. 한복 입은, 약간 뚱뚱한 여성 뚜엣 가수가 KBS의‘가요무대’에 나와서‘밤 깊은 마포 종점 갈 곳 없는 밤 전차’하면서 노래를 부르곤 했었다. 나는 은방울 자매라는 딸들의 별명에 우스우면서도, 파도처럼 밀려오는 어떤 감회에 말을 잇지 못했다.  

뚜엣 가수 은방울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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