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전태원 화백을 만났을 때‘81년 초 겨울에 윗샘밭에 살던 외수 형네 집을 방문했다가 본 기괴한 인물화얘기를 꺼내며 물어봤다.

외수형이, 그 그림을 자네한테서 선사받았다는데 어찌된 거야?”

태원이가 껄껄 웃고 나서 말했다.

내가 그 무렵에 시내 후평동에 화실이 있었지. 그 인물화가 화실에 있었는데 외수형이 보고서 단번에 반했던 모양이야. 술자리에서 형이 내게 이러더라고. ‘저 그림을 나한테 주면 안 되겠니?’다른 사람도 아니고 외수형이 그러는데 내가 안 된다고 할 수 있겠나. ‘형 마음에 들면 갖고 가세요.’그래버렸지. 그랬더니 형이 그 그림을 자기 등에 대고 끈으로 동여맸다는 게 아니겠니? 그림을 손에 들고 귀가하다가는 술 취한 탓에 자기도 모르게 길바닥에 흘려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염려에서겠지.”

그 말을 듣는 순간 기괴한 인물화 한 점을 마치애기 업듯하고는 비틀비틀 귀가하는 외수형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졌다. 인물화나 그 인물화를 등에 맨 사람이나, 기이하기가 막상막하 아닐까.

말이 나온 김에 태원이한테 한 가지 더 물어봤다.

누구를 모델로 그린 거야?”

굳이 답한다면 당시 시대상을 의인화한 인물화라고나 할까? 생각해 봐라. 그 시대가 얼마나 암울하고 삭막한 시대였니?”

아아 1980년대 초. 7910월 어느 날 밤 궁정동 안가 술자리에서 느닷없는 총성이 터진 게 그 암울한 시대의 정점이었다. 그 궁정동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험상궂은 사내가 실세로 부각됐고 우여곡절 끝에 그는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랐다. 전두환. 그는 궁정동 사건을 처리한 뒤 들불처럼 일어나는 민주화 열기에 이런 말을 쏘아붙였다.

항간의 일부 몰지각한 자들이

오랜 세월이 지난 뒤 그가 말한항간의 일부 몰지각한 자들이란 바로 자신이었음이 입증되었다. 역사는 결국 순리를 따른다.

 

춘천의 외곽인 샘밭은 윗샘밭과 아래샘밭으로 나뉜다. 아래샘밭은 우체국 농협 같은 기관들에 상가까지 형성돼 있어서 외곽 마을치고는 한적한 느낌이 덜했다. 하지만 윗샘밭은 그렇지 못했다. 지금이야 높은 아파트들까지 들어찬 풍경으로 바뀌었지만 80년대 초만 해도 한적하다 못해 쓸쓸한 마을이었다. 게다가 그 겨울의 찬바람이란.

어디 그뿐인가. 근처 소양댐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물이 꽁꽁 얼어붙어, 그러잖아도 추운 마을에 냉기를 더했다. 어쩌다가 지나가는 시내버스의 삭막한 엔진음까지. 그런 삭막함의 한가운데 있었던 외수 형의 길가 윗샘밭 집. 햇빛들마저 추위를 피하고 싶었던 걸까. 오전에나 마루로 간신히 찾아드는 겨울 햇빛들인데 그 햇빛들을 가장자리로 받으며 그 인물화가 마루 벽에 걸려 있었다. 결코 따듯한 색은 전혀 없는 차디찬 색감으로.

전태원 화백의 ‘현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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