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즈음 나는 양양고등학교 교사였다. 동해안으로만 도는 교사생활이 답답해서일까, 모처럼 겨울방학 기간에 춘천으로 버스 타고 온 것이다. 요즈음은 고속도로로 한 시간 남짓해 닿는 동해안이지만 1981년경은 그렇지 못했다. 세 시간 가까이 버스 타고 가야 되는데다가 특히 겨울의 한계령 고갯길은 저승 가는 길처럼 험하고 가팔랐다. 그런 고갯길에 얼음까지 얼었으니.

어쨌든 그런 저승길을 이겨내고 춘천으로 와 찾아간 데가 윗샘밭 동네의 도로변 외수형 집이었다. 외수형과는 대학시절인 1972년 여름부터 인연을 맺은 사이. 형은 내가 그 겨울에 찾아갈 당시 장편소설꿈꾸는 식물로써 문단의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었다.

지나가는 차 소리가 그대로 들리는 집에서 두 어린 아들까지 키우느라 형수가 고생 많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내가 모처럼 찾아간 그 집 마루 위 벽에 웬 기괴한 인물화 한 점이 걸려 있었다. 사람을 그렸다기보다 괴물을 그린 것 같았다.

, 이 그림 아주 기괴한데?”

내가 그 그림을 가리키며 한 말에 형이 말했다.

태원이한테 선물 받은 거야.”

태원이라면 전태원이?”

그럼 너하고 춘고 동기이지. 태원이한테 네 얘기도 들었어. 태원이 아주 착한 애야.”

그 기괴한 인물화를 선물해서 착하다는 뜻인지, 원래 착하다는 뜻인지 알 수 없었다. 197910월 박정희 대통령의 이상한 한국적 민주주의가 궁정동 사건으로 급작스레 막을 내리고, 뒤이어 험상궂게 생긴 사내가항간의 일부 몰지각한이라는 말을 즐기며 TV에 등장한 지 얼마 안 된 1981년 초였다.

전태원 화백의 ‘현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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