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원과 나는 춘고(春高) 42회 동기다. 나는 춘천에서 태어나 춘중을 거쳐 춘고를 갔지만 태원이는 평창에서 태어나 평창중을 거쳐 춘고에 온 경우였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는 춘고를 같이 다니면서도 그의 존재를 잘 몰랐다. 뒤늦게 알게 되기는이학천이란 시를 쓰는 친구 때문이다. 학천이는 인제 출신 아이였는데 무슨 까닭인지 미술반 애들을 많이 알았다. 그 중 한 아이가 전태원이었던 거다.

그래서 나와 태원이의 첫 만남은 고3 때 예비고사를 치른 겨울날 소양로에 있는 학천이의 자취방에서 이뤄졌다. 물론 그 이전에도 날마다 학교 미술실에 남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 키가 큰 아이로서 그 존재를 알고는 있었다. 그냥 그림 그리는 키 큰 아이가 아니었다.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에는 교복 아닌 검게 물들인 군복 차림이었고, 어떤 때에는 소주 냄새가 날 때도 있었다. 고백하건데 나 역시 학천이란 친구한테 술을 배워 주말이면 그의 자취방에서 소주에 취해 문학이니 인생이니를 논하곤 했던 것이다.

당시 춘고 과학관 건물 내 1층에 있던 미술실. 수시로, 졸업한 미술반 선배들이 후배들을 찾아와 그림에 대해 얘기 나누고 담배 피우고 그러는 것 같았다. 큰 사각 화판들에, 유화 재료에서 풍기는 페인트 냄새에, 창의 커튼만 치면 이내 깜깜한 밤처럼 될 듯한 흐릿한 형광등 불빛에, 한복판에 놓인 난로의 열기에, 소주 냄새에, 담배 연기에 그 즈음 춘고 미술실은 학교 내 숨어 있는 해방 구역이었다.

어쨌든 태원이와 내가 정식으로 만나기는 예비고사를 치른 날, 저녁, 학천이란 친구의 소양로 자취방에서다. 우리는 지겨운 시험이 끝났다는 해방감에 그 날 엄청 소주를 마셨다. 다섯 명이서 마셨다. 의도한바 아니었지만 문학 하는 애들과 미술 하는 애들의 합동 만취(滿醉)가 돼 버렸다. 문학 쪽은 학천이와 나, 미술 쪽은 태원이를 포함한 미술반 동창 셋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69년 초겨울이었다.

 

 

 http://www.lswmuse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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