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장에서 주례 맡은 어른이 신랑 신부한테 말씀하신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함께하며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하지만 그 말씀을 주의 깊게 귀담아 듣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신랑 신부의 부모님들은 어쩌면 당신의 자식들 아파트 전세자금 마련 문제에 골몰하며 앉아있을지 모른다. 사회자는 결혼식 끝날 무렵에 펼쳐질 신랑 신부 골탕 먹이는 프로그램(언제부턴가 이런 이상한 일이 자리 잡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멀쩡한 신랑을 환자로 만든다. 잘못된 이런 프로그램을 어서 바로 잡아야 한다.)을 다시 한 번 점검하느라 마음이 바쁘다. 하객들 중 일부는 신랑 신부 중 누구 인물이 더 났는지 비교하느라 바쁘고 또 다른 일부는 식이 끝나기 전에 어서 식당에 가서 밥을 먹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에 마음 바쁘다. 하물며 오늘의 주인공들인 신랑 신부까지 먼 신혼여행지로 날라다 줄 비행기를 그리느라 주례사가 영 귓전에 담기지 못할 수도 있다.

 

세월처럼 덧없이 후다닥 지나가는 것도 없다. 오늘의 젊고 예쁜 신랑 신부들이 환갑 넘고 칠순을 바라보는 노년이 되는 것은 잠깐이다. 그렇게 늙었을 때 몸의 여기저기가 병이 나기 시작하면서 병구완에 나서야 할 사람이 바로 곁의 배우자라는 사실을. 오래 전 결혼식장에서 무심히 들었던 주례사의 한 구절이 뜻밖에 금과옥조가 되어 당신의 노후를 지켜줄 줄이야.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함께하며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무심히 들었던 주례사. 그러나 그처럼 무겁고 금빛 나는 말씀도 없을지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