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산을 올랐다가 내려오던 K가 산길에서신음하며 죽어가는 청설모한 마리를 보았다. 사실 신음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주둥이를 벌린 채 몸을 간간이 떠는 놈의 모습에 신음소리를 듣는 듯싶었다. 좀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동네에 있는 작은 산이라 엽사의 짓일 수가 없었다. K의 지식으로는 엽사는 매년 당국의 허락 아래 정해진 구역에서나 동물을 수렵할 수 있다. 물론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 산 같은 곳은 절대 불가하다. 그렇기도 하고 엽사가 엽총을 갖고 다니며 사냥한 게 고작 청설모라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뱀에 물린 걸까?

그럴 리가 없었다. 청설모가 신음하며 누워 있는 산길 위치를 봤을 때 위의 참나무나 소나무 가지에서 떨어진 듯싶은데 그런 높이의 나무에 오르는 뱀은 우리나라에 살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의 뱀 중에는 나무그루를 휘감고 올라가 새를 잡는 놈도 있다지만, 우리나라 뱀은 그렇지 못한 것으로 K는 알고 있다. 우리나라 뱀은 고개도 빳빳이 쳐들지 못하고 그저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게 전부 아닌가.

매나 부엉이 같은 맹금류한테 당한 걸까?

그럴 리가 없었다. 만일 그런 일이 생겼다면 매나 부엉이가 청설모를 산길에 내버려둘 리 없었다. 나뭇가지에 갖다 놓고 찢어먹기 시작하거나, 둥지로 갖고 가 새끼들한테 먹이거나 해야 한다. 청설모를 이대로 산길에 방치할 리 없었다.

결론이 나왔다. 이 청설모는 나뭇가지와 나뭇가지 사이를 오가다가 실수로 밑의 산길로 떨어져 목숨이 위태롭게 된 경우였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속담이 왜 만들어졌겠나? 바로 이런 경우를 가리키는 것이다.

혹시 다 늙은 청설모라면 살 만큼 살아서 자연사를 기다리는 장면이라고 짐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의 청설모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으로 치면 청년으로 여겨지는, 몸의 털이 윤기 나는 모습이었다. K는 마음 같아서는 이 죽어가는 청설모를 수습해 어디 편안한 다른 장소로 옮기고 싶었다. 하지만 K는 그러지 못하고 산길을 부리나케 내려왔다. 무서워서였다. 놈이 무섭다기보다는 같은 생명체로서 언제고 맞이해야 할 죽음이 불현듯 무서워서가 아니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