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이란 "물체가 현재의 운동상태를 지속하려는 성질"이다. 사람 중에는 관성이 강한 사람이 있고, 별로 없는 사람도 있는데, 난 전자의 대표적인 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난 뒤, 난 열심히 공부만 했다. 나뿐 아니라 다른 애들도 다 그랬다. 우린 동료가 아닌, 자신이 남기 위해 남을 제껴야 하는 경쟁자였다. 그런 우리한테 선배들은 이렇게 말했다. "예과 때 놀아야지!" 심지어 이런 노래도 가르쳐 줬다.
'노세 노세 예과때 노세/ 본과 가면 못노나니/ 예과는 천국이요 본과는 지옥이라/얼씨구 얼씨구 차차차/지화자 좋구나 차차차/예수도 공자도 아니놀지는 못하리라 차차차
이런 말들에 세뇌된 탓도 있을 테지만, 중간고사가 끝나고 나자 다들 긴장이 풀려버린 우리는 그야말로 노는 데 전념했다. 별 이유없이 수업을 제꼈고, 대낮부터 술을 퍼마신 걸 무슨 무용담처럼 떠벌이기도 했다. 그렇게 2년을 놀고 우리는 본과에 갔다. 많은 친구들이 공부만 하는 학생으로 잽싸게 변신했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본과 때 노니까 더 재밌네!" 이래가면서 허우적대던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3학년이 어느정도 지나간 무렵이었다 (그래서 난 3학년 때 성적이 가장 좋다).
졸업 후 난 4년간 조교 생활을 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까지 일하는 고달픈 삶을 난 용케도 잘 견뎌냈다. 그러다 군대를 갔다. 운이 좋게도 난 국립보건원에서 3년간을 있게 됐다. 소속과로 가서 과장님께 인사를 드렸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이틀을 보냈다. 사흘째가 되니 좀이 쑤셨다. 과장님께 찾아갔다. "저...무슨 일을 하면 되겠습니까?" 커피를 마시던 과장님은 매우 당황하신 눈치였다. "벌써 일하려고? 좀 쉬었다 천천히 생각해 봅시다"
그날 난 나처럼 할일없는 애들을 모아 노는 모임을 만들었고, 3년을 내리 놀기만 했다. 밤마다 술을 마셨고, 낮엔 테니스를 쳤다. 제대 때가 되자 사회에 복귀할 날이 슬슬 걱정이 되었지만, 그런 불안감을 씻기 위해 더욱 악착같이 노는 데 매달렸다. 사회에 복귀해 직장을 구한 뒤에도 난 2년 정도는 더 '관성의 법칙'에 시달려야 했다.
꼭 나쁜 관성만 있는 건 아니다. 언젠가부터 시작한 독서는 이제 내 삶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 되었고, 내가 읽은 책들은 벽돌이 되어 황폐해진 내 정신을 재건해 주고 있으니까. 읽으면 읽을수록 더 읽고 싶고, 해마다 읽는 책의 양이 많아지는 걸 보면 '관성'이라기보다 '엔트로피의 법칙'에 좀더 가까운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난 그걸 내가 관성이 강한 놈이라서, 라고 우기련다.
좀더 일찍 독서에 취미를 붙일 걸, 하는 후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술 대신 몇배 더 큰 관성을 가진 책을 대학 시절부터 취미로 삼았다면, 아예 졸업도 못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1월과 2월 읽은 책의 권수를 보건대, 올해도 작년 기록을 깰 수 있을 것같다. 지금 난 관성여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