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국의 계단>을 보느라 너무 힘들어, 한동안 드라마를 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는 사이트에 김여정이라는 분이 쓴 이 글을 읽고나니 갑자기 드라마에 대한 욕구가 용솟음치는군요. 이렇게 보고 싶게 글을 쓰면 어떡하란 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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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매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방송되는 프로그램중에 드라마가 가장 후지다고 생각한다.

남매인줄 몰랐던 남녀가 서로 사랑하다 비극적 운명에 질질 짠다던지(진주목걸이)

가난한 남자친구를 버리고 돈 많은 남자에게 간 여자(애정만세),불륜(성녀와 마녀)

첫사랑의 남자가 시누이의 남자가 되어 나타난다던지(회전목마)

요즘 트랜드니까.. 연상녀와 연하남의 연애이야기(천생연분,사랑한다 말해줘)

천편일률적인 캐릭터의 악녀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재수없을정도로 착하고,별 노력안해도 일 잘풀리고, 남자 많이 꼬이는 신데렐라 투성이의 여자들이 등장하는 아침드라마,일일드라마,주말드라마를 보면 하품이 절로 나온다.

 

세상이 얼마나 많이 달라지고,개개인의 인생도 얼마나 버라이어티해진 세상인데 드라마는 10년전이나 20년전이나 구태의연하다.

얼마전 드라마를 보는 개개 풀린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작품이 있으니 <네멋대로 해라>의 인정옥작가.차기작을 기대하고 있다.

 

암튼 많은 작품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거짓말><바보같은 사랑>그리고 이 <꽃보다 아름다워>가 노작가의 3대 역작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외에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작품들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재미있어지고 있다. <꽃보다 아름다워>는 어떤 코미디보다 재밌는 명장면들도 많다.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이 드라마를 본다.

예상을 번번이 빗나가는,가슴을 예리하게 그어대는 칼날같은 대사는,그리고 명배우들의 연기는 가끔 숨이 멎을정도다. 같은 칼날이라도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는 상대를 겨누는 칼이라면 노희경작가의 칼은 자신을 향한다. 해하지 못해 자해하는, 그래서 많이 슬프고 짜안한 바보같은 사람들이다.

 

거의 바보나 다름없는 엄마(고두심)의 남편(주현)은 일찌감치 젊은 여자와 살림나서 애까지 낳아 살고 있으면서 뻔뻔하다...엄마는 남편의 첩에게 신장까지 기증하는 작태를 연출한다.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안주면 내 자식들한테 달라고 할거 아니예요? 난

다 줄거예요. 그 사람들 내 배까지 갈라서 얼마나 잘 사는지 두 눈 똑바로 뜨고 볼거예요"

 

그런 엄마에게 억척스런 이혼녀 큰딸 미옥(배종옥)이 있고,유부남 애인을 둔 딸 미수(한고은),엄마를 애인처럼 생각하는 백수 아들 재수(김흥수)가 있다.

 

미옥은 착한 영민(박상면)의 구애를 받지만 영민의 고향으로 인사갔다가 애 딸린 이혼녀가 빽도 돈도 없으면서 총각 교수하고 언감생심 결혼하려한다며 박대를 당한다. 그 집구석 식구들에게 나물무쳐

밥해올리고 소밥 주면서 그녀가 혼잣말 하는 대목이다..

 

씬 11  영민부의 시골집+부엌, 전경, 어스름한 저녁.


        미옥, 힘들게 큰대야에 물을 가지고 나와 소죽통에 물주고, 한숨쉬고,


미 옥 : (소 보며) 내가 시아버지 될 사람을 만나러 온 건지, 널 만나러 온 건지 모르겠다.


        인써트 - 소 물을 먹으면,


미 옥 : (작게 웃으며) 잘두 쳐먹네..우적우적우적우적...(하고, 웃고 가는)

 

그러나 영민의 사랑은 변치 않는다. 미옥의 생선가게 주변 마트 아줌마들이 미옥에게 주제도 모른다며 동네방네 소문내는걸 알고 영민의 복수가 시작된다.

 

카메라, 야채코너로 가면,

영민, 야채를 심각한 표정으로 구경(?)하고 있고, 마트아줌마, 그런 영민을 보며 서있다.


마트아줌마: (영민을 관찰하듯 보며) 뭐 드릴까요? 교수님?

영 민 : (심각하게, 야채 하나 하나를 가리키며) 이건 얼마예요?

마트아줌마: 한단에 천오백원이요.

영 민 : (다른 거 가리키며) 이건요.

마트아줌마: 4백그람 한근에 이천원.

영 민 : (다른 거 가리키며) 이건요?

마트아줌마: 두단에 천원.

영 민 : 이건, 이건, 이건. (하며, 가리키는)

마트아줌마: (왜 그런가 싶은, 어리둥절한)

영 민 : (아줌마 밉게 보며) 왜 말씀을 안하세요. 이것들 얼마냐구요?

마트아줌마: 왜 살 것도 아니면서 자꾸 물으세요?

영 민 : 제가 살지 말지 아줌마가 그렇게 잘 아십니까?

마트아줌마: (눈치보며) 그럼 살 거예요?

영 민 : 안삽니다. 기분 나뻐서. (하고, 가는)

마트아줌마: (황당한) ?

영 민 : (가면서, 궁시렁) 열 받지? 내가 매일매일 열 받게 해줄 거다, 못된   여편네. 지가 뭐야? 씨.

 

엄마 영자(고두심)는 결국 신장을 주기로 합의하고 아빠 두칠(주현)을 고깃집에서 만난다.

얼마전 고깃집에서 영자는 나 몰라라하고 첩에게만 익은 고기를 권하는 두칠를 보며 총각김치에 우걱우걱 밥을 먹었었다.그런데 두칠이 영자에게 신장을 준다는게 고마워 고기를 사주는 장면이다.

이 장면이 가장 많은 눈물을 뽑아낸다. 고두심의 열연과 주현의 연기에 몰입하게 되는...

 

 씬 65 고기집 안.


아버지, 고기를 구워 엄마의 그릇에 놔주며,

 

아버지: 고기가 연하다, 많이 먹어.

엄 마 : (덤덤한) 내 배 가를라니까 되게 미안은 한가보네, 고길 다 사주고?

아버지: (맘 아픈) ..먹어.

엄 마 : (눈가 그렁해 보며) 여보.

아버지: (보는데, 눈가 붉은)

엄 마 : 나한테..미안하다고 해.

아버지: (눈가 그렁해지며, 차마 못보고) 미안해.

엄 마 : (눈가 그렁해) 고맙다고도 해.

아버지: 고마워.

엄 마 : (눈물 흐르는) 빌어.

아버지: (눈가 손 등로 닦고, 엄마 보고, 두 손을 모으는)

엄 마 : 당신, 내가 아팠어도 재건엄마 찾아가 부탁했을까?

아버지: 그럼..

엄 마 : 나 그 말 믿어두 돼?

아버지: (고개 끄덕이는) 믿어두 돼.

엄 마 : 그래두 미워.

아버지: (맘 아픈, 고개 끄덕이는)

엄 마 : 당신 마누라가 있으니까, 좋지? 아쉬울 때 뭐든 들어주고.

아버지: (맘 아픈) 말이라고 하냐, 좋지. 근데 난 니 남편 아니다...니 자식이다, 내가. 니 자식.

엄 마 : (울먹이며, 맘 아픈) 용서 못할지도 몰라. 죽는 날까지 미워해도, 당신 나한테 뭐라 그러면 안돼.

아버지: (고개 끄덕이는)

엄 마 : (꺽꺽 대며, 우는) 나쁜 놈.

아버지: 더 욕해.

엄 마 : 당신 재건엄마랑 나 수술할 때 재건엄마만 보면 안돼, 나두 애들 땜에 살아야 하니까,

           나두 챙겨 줘요, 어.

아버지: (고개 끄덕이고, 눈물 닦고) 볼 일 보고 올게. 먹고 있어라.

엄 마 : (가는 아버지 보고, 고기 먹는, 자꾸 눈물이 나는, 손등으로 눈물 닦고, 억지로라도 먹으려 하는)


씬 66 건물 뒤쪽 벽.


아버지, 쪼그리고 앉아 고개 숙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가만있는, 울음을 참는 듯하다. 그러다 손 내리고,

아버지: (눈가 그렁해, 작게 허허로운 혼잣말) ........개새끼, 개새끼, 김두칠이 이 개새끼...(하는데,

            눈물 주룩 흐르는)

 

이날은 내가 <태극기 휘날리며>를 본 날이었는데 태극기보다 더 많이 울었다.

바보같은,하지만 이상하게 끌리는 다섯커플의 사랑이야기,여러분도 시간되면 함 보세요.

일욜 재방송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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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주 2004-03-02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희경이 드라마를 정말 잘 쓰는 모양이네요. 전 추천글 여기저기에서 무척 많이 봤습니다. 하지만 감정이입하면서 같이 우울해지거나 슬퍼지거나 진심으로 가슴이 애리고 싶지 않아서 보지 않습니다. 진솔한 드라마는 그렇게 마음을 아프게 하지요.
나중에 노희경이 또 드라마를 쓰고, 그때 제가 고시 공부에서 벗어난다면, 그때 보려구요.

2004-03-02 1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oulkitchen 2004-03-02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또..검은비님..우리 의리 이거 거의 조직 분위기 아닙니까? 저도 드라마 같은 거에 의리 되게 지키는 편인데..ㅋㅋ 저도 이 드라마, 저희 엄마가 보고 계셔서 한 번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가 아마 고두심 수술하고 나서였는데, 엄마한테 대충 줄거리를 듣고서는 무슨 이런 복장 터지는 드라마를 다 보냐고 뭐랬던 기억이 납니다. 아, 근데 이 글을 읽으니 가슴이 찡~하군요..

2004-03-02 1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시보 2004-03-02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꽃보다 아름다워를 간혹 봅니다. 물론 천생연분을 더 많이 봤지만요. 노희경 작품이 재밌긴 엄청 재밌는데 너무 슬퍼서요. 보고 나면 사는게 짠하게 느껴져서 행복할때 아니면 잘 안봅니다. 요 얼마간 일 때문에 힘들어서 별로 행복하질 않았거든요. 그래서 부러 좀 피했습니다. 그래도 저기 묘사된 장면들은 다 본것 같네요.

mannerist 2004-03-03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를 속 터지게 본 이후, 노희경 작가 드라마 빼놓지 않고 보지요. 허준 보느라 '바보같은 사랑'놓친 건 천추의 한이지만요. 그러고보면 노희경 작가도 지지리 재수없는 편입니다. 거짓말은 세상끝까지에 밀리고,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도 무언가에 치이고, 바보같은 사랑은 허준에 박살나고. 아마 시청률 평균 1%를 기록했다죠. -_-

제 생각에 그녀의 드라마가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이야기의 축이 한쪽으로만 쏠리지 않는 다핵적인 구성이 산만하지 않게 이끌려 나가는거라 생각합니다. 감성적인 대사보다도요.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에서는 중심축 배용준-김혜수 커플 이외에 갱년기 김혜수 부부, 배용준 동생 커플, 셋집 사는 부부, 배용준 이모 등등이 나름대로 서로 다른 모습의 사랑을, 삶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담아냈지요. 이게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절정에 달한 듯 합니다. 주인공'들'이라고 하는수밖에 없잖아요. 키득

생각난김에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에서 가장 뭉클했던 부분 찾아 올립니다.

재호 : (눈가 붉어져, 힘주어 말하는) 내가 신형이 그 사람한테 보여 주고 싶은 모습은
전처럼 건강한 모습이 아니예요.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그 여자 때문에 버티려고 하는... 바로 이 모습이예요.
진숙 : (맘 아픈) ?!
재호 : 이모.
진숙 : (보면)
재호 : (눈가 그렁해, 이 악물고 힘주어 말하는) 내가 그 여잘 사랑하는 건, 내 인생을 사랑하는 거야.
그래서 난 포기할 수 없는 거구. 내말 믿어요. 이모가 날 안 믿어주면, 누가 날 믿어주겠어요.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에서 생략된 목적어는 '서로'가 아니라 '우리의 인생을'이라더군요.

사비나 2004-03-04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허준보느라 <바보같은 사랑>을 놓친게 천추의 한이 되었는데 나중에 심야에 재방송을 해주더군요.그때는 빼놓지 않고 밤마다 베갯잇을 적시며 봤습니다.그때 참 배종옥이라는 배우 조하하게 된거 같아요.<거짓말>에서도 멋있었지만 <바보같은 사랑>에서는 정말 이뻤습니다.내가 데리고 도망가고 싶을만큼...<꽃보다 아름다워>가 끝나면 어쩌나...다음 드라마는 언제나 볼수 있을까..조바심 내는 나날입니다.
 

 

 

 

 

 

요즘 내가 쓰는 술일기는 그냥 일기가 아니라 술이라는 거대한 악에 홀로 맞서 싸우는 한 인간의 처절한 무용담이 아닌가 싶다. '연간 180일 이하'를 목표로 열심히 금주하자는 술일기의 취지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이제 겨우 61일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36번을 마셔버렸다. 12월에 신나게 퍼마실 걸 생각하면 미리부터 저축을 해야 하건만, 저축은커녕 빚을 내서 돈을 쓰는 격이다. 이런 추세라면 180일은커녕 250일이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오늘은 술약속을 취소하고 집에서 쉬기로 했다.

날짜: 3월 1일
술: 소주 한병+알파, 2차 가서는 맥주 다섯병?
상대: 생존퀴즈 모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좋았던 점: 모임이 영원하리라는 영감을 얻었다
나빴던 점: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10시쯤 정신을 잃었다. 아무래도 그동안 너무 무리했나보다.

-오늘 출근하는 기차 안에서 설사가 나서 죽는 줄 알았다.
-태극기를 안달았다.

부제: 사랑 만들기

전에도 말했지만, 생존퀴즈라는 퀴즈프로가 있었다. 1회만 하고 끝이 났지만, 그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정기적인 모임을 한다. 한데 그 모임에 나오는 이들은 나를 비롯해서 대부분이 1라운드 탈락자다.

모임 멤버 중 오갑숙(가명)이라는 여자가 있다. 절세의 미인은 아니지만 정말 '참한' 여인네다. 성격이 좋으며, 잘 웃어주고, 말도 잘한다. 능력있는 회사원이며, 술도 제법 잘한다. 몸이 비쩍 마른 것, 그래서 굴곡이 없는 것은 단점에 속할 것 같다.

백선엽(가명)은 키가 크고 잘생겼다. 그리고 착하다. 그리고 박사과정 학생이다. 외모로 보면 에이 플러스를 주고픈 그에게 말이 너무 없는 것은 단점일 것이다. 모임 내내 입을 열지 않아, 그런 것을 못참는 나한테 늘 괴롭힘을 당한다. "여기에 대해 백선엽 씨의 견해를 들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상황을 백선엽 씨가 정리해 보겠습니다"라는 식으로. 그래도 그는 큰 눈을 껌뻑거리며 빙긋이 웃을 뿐이다. 퀴즈 대회에 나갔을 때도 침묵만 지키다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난 그 둘이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임 참가자의 대부분이 둘이서 잘되는 것을 지지한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답답하리만큼 진전이 없다. 여자는 분명 남자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 같은데, 남자의 속은 도통 알 수가 없다. 우리는 모임 때마다 그 둘을 맺어 주려고 난리 부르스를 춘다. 한번은 귀가할 때 둘을 같이 보내기도 했다. "두분, 손잡고 같이 가요!" 물론 그 둘은 끝까지 손을 잡지 않았다. 남자에게 물었다. 우리가 그러는 게 싫으냐고. 아니란다. 그리고 모임만 있으면 꼬박꼬박 나온다. 그렇다면 남자도 어느 정도 마음이 있는 게 아닐까?

어제 모임 때도 우린 시종일관 둘이 잘되야 함을 역설했다. 자세한 건 살아봐야 알겠지만, 어울리는 한쌍이 잘되는 건 보는 사람에게 기쁨을 준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건 억지로 되지 않는다. 주위에서 밀어주니 뭐니 해도, 될 커플은 되고 안될 커플은 안된다. 그런 걸 잘 알면서도 그 둘을 맺어주지 못해 안달하는 것은, 남자가 워낙 숫기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모르겠다. 그러는 게 도움이 될지. 오늘, 백선엽이 오갑숙에게 전화를 걸었으면 좋겠다. 이번 주말에 둘이서 한번 만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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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4-03-02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오갑숙이었다면. 그래서 백선엽을 좋아라 하는 맘이 있었다면 가만두지 않았을 겁니다. 남자가 좀 적극적인 것이 모양새가 더 이쁘긴 하지만 그래도 어쩌겠어요. 그가 안하고 혹은 못하고 있음 나라도 확 하고 덤벼야죠.^^

진/우맘 2004-03-02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술일기의 취지가 금주였나요? 주량 늘리기, 혹은 모두 뻗게 하고 살아남기가 아니구요?
ㅋㅋㅋ 술이라는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이라... 그 거대한 악을 이 한몸 다바쳐 '마셔 없애겠다'는 숭고한 희생정신.^^

마태우스 2004-03-02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님이라면 충분히 그러셨겠죠^^ 하지만 세상에는 님처럼 멋진 여성분이 그리 많지 않나 봅니다. 하기사, 그러니까 님의 존재가 더 돋보이는 거죠.
진우맘님/술일기의 취지를 모르셨다니, 서운합니다!!!!

비로그인 2004-03-02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일기의 취지는 금주였으나, 점점 변질되어 가는거 같은데요...ㅎㅎ 저 엄청난 가명의 두분, 앞으로 어떻게 진전되어가는지도 들려주세요~ 계속 제자리 걸음일거 같은 불안이...^^;;

paviana 2004-03-02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가명이 아니라 실명같아요..ㅋㅋ 꼭 거대한 악에 맞서 싸워서 승리하세요.정말 넘 웃고 가서 행복합니다 .
 

 

 

 

 

 

"땅거미 내려앉아 어두운 거리에/밤하늘 너의 뒤 나의 꿈 들려주네
에헤~~~ 에헤~~~~ .......마음깊은 곳에서 우리 함께 나누자
너와 나 너와 나 너와 나만의 꿈의 대화를"

한달만 지나도 식상해지는 노래가 많은 와중에, <꿈의 대화>는 시대를 초월해 꾸준히 불려지는 명곡이다. 당시 인기리에 열렸던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이 노래는 한명훈과 이범용이 만들고 불렀다. 이범용은 연대 정신과를 나와 의사로 살고 있는데,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그 좋은 노래를 정말 그 사람이 지었는지에 대해,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런 노래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 후 20년이 지나도록 아무 노래도 짓지 않고 있지는 않을거다"
그의 말이 맞건 틀리건, <꿈의 대화> 하나만으로도 이범용은 불후의 명가수 대열에 오를만 하다는 게 그 노래를 즐겨부르는 내 생각이다. 몇 년 전 대학가요제 25주년인가를 기념해서 주최측이 그들의 재공연을 추진한 적이 있었는데, 한명훈은 흔쾌히 수락한 반면 이범용이 거절해 아쉬움을 던져주기도 했다.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 너를 다시 만났었지/신문을 사려 돌아섰을때 너의 모습을 보았지...언젠간 우리 다시 만나는 날엔 빛나는 열매를 보여준다 했지/우리의 영혼에 깊이 새겨진 그날의 노래는 우리 귀에 아직 아련한대.."
동물원이 부른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의 가사다. 이 노래엔 지하철에서 발을 밟았는데 미안하다고 했다느니 어쩌니 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여기서 난 우리의 평범한 일상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노래로 만들어질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이 곡 외에도 수없이 많은 주옥같은 노래들을 쓴 천재 작곡가 김창기도 연대 정신과 출신인데, 지금도 어디선가 의사로 활동 중이다. 그가 훌륭한 의사일 수는 있지만, 음악 부문에서만큼 그의 존재가 크지는 않을 터, 그가 음악계에서 계속 활동을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좋은 노래를 많이 만들어서 피로에 지친 사람들의 정신을 위로하는 것도 보람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의 어머님은 한숨을 쉬면서 말씀하신다. "우리 얘가 원래 천재였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에 빠져 저렇게 되었다" 연대 의대가 아무나 가는 것은 아닐텐데, 과연 천재는 천재다. 이대 의대를 다니던 내 써클 친구는 김창기를 좋아해 공연 때마다 찾아가고 했었지만, 김창기는 그녀와 같은 과인 다른 의사와 결혼을 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같은 과 친구에게 김창기를 '빼앗겼으니' 속상할 법도 한데, 지금은 그녀 또한 좋은 남편과 결혼해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중이다.

연대 정신과의 계보를 잇는 마지막 주자는 표진인이다. 신촌 어디쯤에 개업을 하고 있는 그는 TV에 출연하며 화려한 입담을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앞의 두 명에 비하면 중량감이 좀 떨어지긴 해도, 앞의 둘과는 달리 앞으로도 쭈욱 방송에 출연할 예정이니 속단하긴 이르다.

그와 난 초등학교 동창이고, 고교 때 같은 독서실에 다녔고, 대학 때도 잠깐 같이 논 적이 있다. 하지만 그 후 만남이 없다가 인터넷 덕분으로 다시 만났는데, 사실 그 전까지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초등 동창들 중 '신촌파'로 결집되어 자주 만나고 있다. 방송스타에 속하지만 그에게는 그런 거만함이 없다. 술을 마실 때 가끔 팬이라고 찾아오는 여자가 있지만, 배용준처럼 얼굴을 가리고 외출해야 할 정도는 아니다. 그는 아직 독신인데, 걔가 "쟤 예쁘다!"라고 하는 애들을 보면 그다지 눈이 높은 것 같지도 않다. 올해는 뭔가 한건 하겠다고 했으니, 기대해 봐야겠다.

고교 때 독서실에서 만났을 때, 그는 그다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도 지금처럼 같은 독서실에 다니는 누구누구가 이쁘다느니 하는 얘기를 했고, 틈나는대로 기타를 쳤다. 고3 때 같은 독서실에 다니는 친구가 표진인을 불러 "너도 대학은 가야지"라는 말을 했는데, 그때 표진인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자기는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그게 웬 말이냐는 식으로. 그 친구 덕분인지, 아니면 원래 열심히 해서인지 표진인은 연대 의대에 갔는데, 늘 그를 걱정해온 독서실 주인은 그를 껴안고 감격했다고 한다 (하긴, 나도 좀 놀랐다). 언젠가 브레인 서바이벌이란 프로에 출연해 우승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계단 올라가기에서 그가 세운 기록은 UN의 김정훈에 의해 깨지기까지 최고 자리를 유지했다. 우승자들만 출전한 왕중왕전에서 그는 또다시 우승하는데, 우승상금을 두 번 다 출신고에 기증한 덕분에 '훌륭한 선배'로 조회 시간에 연설을 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고교 때도 그랬지만, 표진인은 지금도 기타를 잘 친다. 한때 토요일마다 모 카페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을 정도. 노래도 잘 불러, 동창 모임에서 임재범의 <너를 위해>를 부를 때는 기립박수가 나오기까지 했다. 그의 유머 감각은 최고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매우 독특한 언어를 구사하는데, 그게 참 웃긴다. 예컨대 내가 물을 많이 먹으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야, 너 물 잘나간다!" 빨리 달리는 차가 있으면 "저 차 운전자, 쏘는데?" 이외에도 '신경을 긁는다'같은 자기만의 어휘를 끊임없이 구사해, 나를 비롯한 그의 추종자들은 그 어법을 열심히 배우고 있다. "이땐 쏜다를 써야 되니?" "아니, 먹어준다, 이렇게 써야지" 

한때는 유명 연예인과 안다는 사실이 뿌듯했는데, 같이 놀다보니 그런 마음은 다 없어졌고, 지금 표진인은 내 소중한 친구일 뿐이다. 어찌되었건 면면히 이어지는 연대 정신과의 계보를 누가 계승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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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3-02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의대 출신 중에도 상당히 독특한 분들이 많군요. 하지만, 저에게 있어 '의대 출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가장 쇼킹한 인물'은 이범용도 아니고 김창기도 표진인도 아닌 마태우스님입니다.^^ 뭐, 이건 칭찬이라구요. 칭찬.^^

비로그인 2004-03-02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진우맘님 의견에 한표! ^^ 꿈의 대화는 저두 좋아했던 노랜데, 그런 독특한 이력이 있었군요~ 표진인씨의 어휘세계는 너무 독특해요. ㅎㅎ

sooninara 2004-03-02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 말에 한표...에구..리뷰써야하는데..글솜씨가 없어서 고민중입니다..

마태우스 2004-03-02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 앤티크님/저도 의대애 같지 않다는 말은 칭찬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수니나라님/어머나 제가 리뷰에 대한 스트레스를 드렸군요. 안쓰셔도 되는데...

sooninara 2004-03-04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트레스라니요..공짜로 책받고 죄송해서 알아서 기는거지요^^
 

 

 

 

 

 

1. 마당닭
마당에서 자라는 닭(마당닭이라고 부르겠다)은 대개 몸집이 크다. 키도 오똑하고, 눈도 부리부리하며, 달리기도 잘한다. 겉모습을 봐도 충분히 놀랄 만하지만-친구 하나가 "저런 닭은 동물원에 가야 하는 거 아냐?"라고 한다-백숙을 시켜보면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다. 삼계탕에 나오는 닭 한 마리는 우습게 먹는 사람도 거대한 크기를 가진 마당닭을 보고는 질려 버린다. "저 다리 굵기 좀 봐. 저게...닭이야?"

마당닭이 큰 까닭은 마당에서 크기 때문이다. 그 닭들은 마당 여기저기를 쏘다녀 다리근육을 발달시키고, 사료 외에도 마당에서 자라는 각종 벌레들-구더기를 포함해서-을 쪼아먹는다. 풍부한 영양과 운동이 제공되니, 큰 닭으로 자라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2. 그럼 양계장에서는?
양계장에서 대량으로 사육되는 닭들을 보면 불쌍하기 짝이 없다. 철장 하나에 수십, 수백마리씩 들어가 있는데, 겨우 서있을 정도의 공간만이 닭들에게 허용된다. 그저 한 자리에 서서 가끔씩 주는 사료를 먹는 게 그들 일과의 전부인데, 배설물을 선 자리에서 싸니 환경 또한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그 결과 몸은 왜소해지며, 한 마리라고 해봤자 한사람이 먹기에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들에겐 삶의 즐거움나 미래에 대한 비젼 같은 것도 없어 보인다.

3. 김어준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를 만났을 때, 그의 예리함과 유쾌함에 감탄한 적이 있다. 운동권에서 학습을 받은 것도 아닌 그가 그토록 고강한 내공을 지니게 된 이유가 뭘까? <쾌도난담>의 일부를 소개한다.

[김어준: 난 학교다닐 때 도시락을 잘 안싸갔어. 왜냐? 엄마가 귀찮아 하니까.
김규항: 어준이네 집은 어떤 시스템이냐 하면, 부모가 자식에게 해주는 게 하나도 없어. 그 대신 통제나 참견도 일체 없어. 그러니까 이런 애가 나오는 거지.
최보은: 이상적인 가정이네....
김어준; 그리고 맛있는 거 있잖아? 그럼 부모님들만 잡수셔. 너는 먹을 날이 많이 남았잖아, 이 자식아, 이러면서. 아, 난 정말 우리 부모님들 인간적으로 좋아해.
최보은: 말 되네. 그렇게 살아야지.
김규항: 중요한 건 아이들에게 해주는 게 없는 대신 나중에 보상을 바라거나 섭섭해 하지도 않는 거야. 아주 초근대적인 시스템이지....
김어준: 해주는 것이 없었다기보다, 그런 식으로 통제 없는 시스템 속에서 난 자율적인 인간이 된 거지. 맘대로 하되 그 결과도 스스로 책임지는 거지.
김규항: 애는 나중에 애 낳으면 어떻게 키울 거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을 했대요. 어차피 될 놈은 되고 안될 놈은 안되니까 그냥 놔둘거다.
김규항: 김어준이라는 독특한 인간, 운동권이라든가 제대로 학습을 했다든가 하는 경험이 없으면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대단히 정확하거든. 내가 애를 '비학습 좌파'라고 부르는데, 배경에는 그런 부모님이 있었더라는 거지(244-245쪽)]

김어준은 대학을 다닐 때 2년인가를 휴학을 하고는 현지에서 돈을 벌어가면서 세계 각지를 여행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김어준은 하고픈 일을 다 해가면서 자란 '마당닭'이며, 그래서 다 자란 후에 저토록 예리한 비판적 지성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 시대 대부분의 학생들은 '양계장' 닭으로 길러진다. 학교가 파하면 바로 학원에 가고, 밤늦게 집에 갔다가 새벽에 학교로 오는 숨막히는 생활을 중학 1학년때부터 반복한다. 입시는 전쟁인데, 자율적인 인간이고 비판적 이성이 도대체 뭐가 중요한가. 자식에게 더운 밥과 진수성찬을 차려주시는 어머니는 나중에 혼자 김치에다 식은 밥을 드시며, 자식 공부에 도움이 된다면 그 어떤 것도 아끼지 않으신다. 어머님은 수시로 말씀하신다. "공부 잘해야 해! 공부! 공부!" 그런 행위가 자식에게 얼마나 부담이 될까? 마당닭은 식용 뿐 아니라 싸움닭, 박제 등 여러 가지 길이 있지만, 식용으로 쓰지 못하는 양계장 닭은 아무 쓸모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맛있는 닭이 되기 위한 경쟁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의 사회는 그렇게 양육된 양계장 닭들이 지배할 거다. 새벽에 일어나 밖에 나가보라.  어디선가 닭이 구슬피 우는 소리가 들릴 테니까. "꼬---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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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3-01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의 비유가 점점 고도의 수준에 이르러 가는 듯 한데요~ ^^ 아...왠지 저는 어릴적 시장에서 팔던 병든 병아리 같다는 생각이...쩝...

플라시보 2004-03-01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대체적으로 마당닭인것 같습니다. 집에서는 양계장 닭으로 기르려고 했으나 스무살이 넘어서 양계장을 뒤늦게 탈출 했지요. (물론 양계장 안에서도 그다지 큰 통제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통제하시기엔 부모님들 각자의 삶이 너무 바쁘셨거나 아니면 될성부른 여동생에게 관심을 쏟는게 더 남는 장사란 것을 파악하신 듯 합니다.) 20대 초반에는 시행착오도 참 많이 겪었다..라고 말 하기에는 스물 일곱까지 그 시기가 계속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는 별로 후회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책임지지 못할 일을 쳐 본적은 없고 또 일을 치고 책임을 지지 않은 적도 없었고 내 인생과 관련된 모든 판단은 스스로 내렸기에 잘못 되더라도 원망 같은건 할 곳도 없으니까요.
또 하나 닭과 관련된 것은 엄마가 저를 임신하고 외할머니 댁에 있을때 하루에 닭을 한마리씩 먹어 치웠다고 합니다. 그냥 남비에다 닭을 푹 고아주면 엄마는 뼈만 소복하게 남겨서 다시 방문 밖으로 내 놓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가? 저는 닭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닭을 잘 못 먹습니다.(배고파 죽을것 같으면 먹습니다만)
언젠가는 저도 김어준처럼 발전적인 마당닭이 되길 바랍니다. (올지 안올지 모르지만)

갈대 2004-03-01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절한 비유네요. 마당닭과 양계장 닭. 참견하지 않으면 알아서 자신의 본모습을 찾아갈텐데 사회전체가 양계장이 되어버려서는 부실한 병아리를 키우는데 여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진/우맘 2004-03-01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진...분명히 키우기는 양계장 스타일로 키우는데, 이 놈...마당닭으로 '거칠게' 큽니다. 마박사님, 도대체 무슨 케이스 일까요?

2004-03-01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paviana 2004-03-02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갑자기 마태우스님은 양계장 스타일일까? 아민 마당닭일까 궁금해지네요...전 전형적인 양계장이거든요.거기서도 병든 쪽이네요..

2004-03-02 0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4-03-02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티크님/과찬이시구요, 님은 병든 병아리가 아니라 공작이십니다
플라시보님/님의 내공은 코멘트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는군요. 수많은 팬을 거느린 플라시보님은 이미 '발전적인 마당닭'이십니다. 비록 닭살일지라도요!
갈대님/반가와요!
진우맘님/으음... 말문이 막히는군요. 굳이 답을 하자면, 진우맘님께서 늠름한 마당닭이어서, 자녀 분들도 그렇게 자라는 게 아닐까요?

마태우스 2004-03-02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아나님/제가 무엇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희 세대는 과외가 금지된 시대였기에, 지금 애들보다는 더 자유롭게 자랐던 것 같습니다.

sooninara 2004-03-02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닭살은 닭살인데..엄마가 양계장으로 키우고 싶어하셨는데..저는 마당으로 나와버렸죠..
그런데 성공은 못하고 그냥 평범하게 사는 마당닭입니다..이러다 백숙이 될지도 모르는..
제가 아이키우는 스타일은..마당형과 양계장형의 짬뽕이라서 우리아이들 정신건강이 심히 걱정스럽습니다..(제가 빨리 맘을 잡아야겠지요)
 

 

 

 

 

 

동성애자인 록 허드슨은 여자와 결혼을 한 적이 있다. 왜일까? 그가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나돌자 인기하락을 염려한 기획사에서 그를 강제로 결혼시킨 것. 물론 그 결혼이 행복하게 끝났을 리는 없었고, 허드슨은 그녀와 헤어진다.

차이코프스키 역시 동성애자였단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팬과 결혼을 하는데, 그건 그 여자가 워낙 열렬히 구애를 해온 탓도 있지만, 자신을 둘러싼 이런저런 소문을 종식시키고자 하는 게 더 큰 이유였나보다. 그의 결혼생활 역시 매우 끔찍한 것이었다고 책에 씌여있다.

준재벌의 아들이 맨날 술만 먹는 알콜중독자에다 상습적으로 카드빚을 지는 대책없는 사라이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결혼을 시켰다. 그는 술을 마시고 아내를 폭행하며, 여전히 많은 카드빚을 양산한다고 한다.

내가 너무 보수적인지 모르겠지만, 결혼은 둘 사이의 사랑이 전제되어야 한다. 소문을 불식시키기 위해, 혹은 인간을 만들기 위해 결혼을 시킨다는 건, 상대방에 대한 폭력일 뿐이다.

내게는 외삼촌이 한분 계시다. 아들을 낳지 못하게 된 할머니가 삼촌을 입양하셨는데, 그 삼촌은 나중에 자라서 할머니의 큰 짐이 되었다. 고교와 대학을 간신히 졸업한 이래, 삼촌은 단 한번도 한달 이상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다. 빽을 써서 넣어준 회사에선 번번히 사표를 냈고, 카센터를 한다고 하다 돈만 날렸다. 십분 정도만 얘기해 보면 모자란 사람이란 게 드러나는지라, 아무리 빽이 좋다한들 회사 생활을 제대로 할 수는 없었을게다. 삼촌의 연배가 지금 46이니, 벌써 20년째 놀고 있는 셈이다. 앞의 17년은 할머니가 집을 줄여가며 생활비를 댔고, 그 후 3년은 우리 어머니가 돈을 부쳤다. 어머니가 약속한 생활비 보조는 이번달이 마지막이었는데, 삼촌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이 된다.

택시운전을 하라는 압력을 "애들 교육상 지장이 있다"는, 별로 합리적이지 않게 들리는 논리로 뿌리치며 무직 생활을 해온 삼촌은 불행히도 성격 또한 그리 좋지 않아, 아파트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생활비를 벌어온 외숙모에게 언제나, 별거 아닌 일로-우리 앞에서도-악을 쓰기 일쑤다. 얼마 전 할머니가 몸이 편찮으셔서 응급실에 모시고 갔는데, 병원비를 내려고 찾아간 우리 어머님께 이렇게 말했단다. "할머니 점심값하고 택시비 내가 썼는데, 그거 물어주시유" 나중에 알고보니 할머니는 점심을 드시지 않았고, 택시비 또한 할머니가 쓰셨단다. 언제나 얇디 얇은 지갑을 열며 "돈이 없어 죽겠다"고 소리를 치는 삼촌은 어떤 관점에서 봐도 그다지 좋은 가장은 아니다.

한번의 파혼과 한번의 이혼을 거져 지금의 외숙모와 결혼한 삼촌은 애 둘을 낳았는데, 내가 보기엔 그 애들 둘다 삼촌보다 훨씬 정신적으로 성숙한 것 같다. 신통하게도 공부를 제법 잘하는 큰애는 어찌나 생각이 깊은지 내가 놀랄 정도인데, 그네들이 대학에 가고나면 참고 살았던 외숙모는 이혼을 요구하지 않을까 싶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처가에서는 삼촌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는데, 삼촌은 "자식들마저 날 무시한다"고 가끔 울분을 토한다.

어찌되었건 외숙모를 볼 때마다 난 사실 죄인이 된 기분이다. 외숙모는 사실 삼촌의 아내로 살아가기엔 너무 아까운 분이시니까. 외숙모와 삼촌이 결혼에 합의하면서 양가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했는데, 그 자리엔 나도 참석했다. 대학교 2학년생이었던 난 그날 엄청난 갈등을 겪어야 했다. 외숙모를 타일러서 삼촌과의 결혼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지금 같으면 말할 수 있었겠지만, 그때의 난 그러지 못했고, 결국 둘은 결혼했다. 모르긴 해도, 아니 100% 확신을 가지고 말하지만, 숙모는 이 결혼을 굉장히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당시 숙모의 눈에 뭐가 씌웠는지 난 알지 못하고, 내가 말렸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 결혼이 나로 인해 깨진다 하더라도, 다른 여자가 희생자가 될 것이라고 스스로를 타일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 자리에서 침묵을 지킨 건 옳지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나 또한 그 결혼의 공범인 셈이다.

물론 삼촌은 동성애자가 아니니, 그 결혼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로 인해 꿈이 많았을 외숙모의 삶은 회한으로 점철된 것이 되어 버렸다. '있어 보이는' 것을 빌미로 삼촌을 결혼시킨 할아버지, 할머니와 그 자리에 참석해 신뢰감을 더해준 우리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침묵을 지킨 나는 록 허드슨을 결혼시킨 기획사 사람들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

우리 중 아무도 합격을 예상하지 않았지만, 삼촌은 몇 년간 공인중개사 시험에 도전했다. 3번째로 낙방한 작년도에 '포기'를 선언하긴 했는데, 이쯤되면 이제 뭔가 일자리를 찾아볼 생각도 할만 하건만 앞으로도 계속 놀 태세다. 택시운전보다 무직이 자녀교육에 더 좋다는 논리를 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데, 혹시 노는 것이 몸에 익숙해져 버린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열심히 살려고 버둥거리는 사람이 수두룩한 이때, 삼촌의 젊은 나이와 건강한 몸이 참으로 안타깝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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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주 2004-02-29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위에 선택하신 책의 이미지가 제가 대학 시절에 하던 기독교 동아리의 출판부 서적이라서 깜짝 놀랐습니다. 아마 저 책도 제가 읽었던 것 같은데 동성애에 대한 굉장히 보수적인 시각이었을 게 뻔한데 내용은 기억나질 않네요...

비로그인 2004-03-01 0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서글픈 글이네요...휴...노숙자 분들중에, 노숙이 너무 익숙해져버려서, 일자리를 구해줘도 오히려 적응 못하고, 계속 노숙자로 돌아오는 분들이 있다는 기사도 생각나구...삼촌분이, 어서 멋진 가장으로 우뚝 서셨으면 좋겠어요..

책읽는나무 2004-03-01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지나서 항상 있어왔던 그곳에 그사람이 없을때 있잖습니까??....그사람이 비록 무능한 남편이었어도......병들어 병수발을 들어드려야하는 부모였어도......그래서 차라리 없는게 더 낫다고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데.......막상 내옆에 그사람들이 없을땐.......그래도 옆에 그냥 있어주기만 했단것이 내겐 큰힘이 되었단것을 느낀다는군요.....제가 뭐 외숙모분께 뭐라고 할 입장은 아니지만.....그래도 무능하지만.....남편이 집안에 있어주어.....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었단것을 후에 느끼시리라 믿어요......삼촌분도 하는일이 뜻대로 안되니 혹여 자포자기한 삶을 사시는게 아닌지 싶기도 하구요...울큰집장손오빠가 어렸을적에 아들하나라고 넘 오냐~오냐~ 키웠더니 매사에 식구들에게 의지하며 살고...뜻대로 안되면 쉬이 포기하고...힘들게 살려고 하질 않더군요....지금 시골에서 딸기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데....이농사도 잘 안되면 온 식구들,친척들이 돌아가면서 술먹고 주정하듯이 징징거리는 소리를 들어야합니다....그런오빠를 보면 꼭 인생을 자포자기하듯이 될대로 되란 투로 사는것처럼 보이더라구요...그래서 어렸을때부터 그오빠를 내가 아주 싫어한답니다....그래도 매사에 걱정되긴 마찬가지더군요.....언젠간 그네들에게도 햇볕이 쨍~~할날이 오겠죠........

마태우스 2004-03-02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읽는 나무님/ .....이 님의 컨셉이시군요^^ 정말 삼촌네에도 햇볕이 쨍 할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앤티크님/저도 삼촌 생각을 할 때마다 서글플 떄가 있습니다.....히유....
연보라빛우주님/그게 그런 책이군요. 흐음.... 님의 독서는 정말 방대 itself에요.

연우주 2004-03-02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그게 아니라 누군들 기독교 동아리를 하나 하게 된다면, 게다가 그 동아리의 출판부가 있다면 많이 볼 수밖에 없겠죠...^^ 그리 많이 본 축에 속하지도 못하는데. 참고로 저 책은 500원인가 하는 소책자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