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마당닭
마당에서 자라는 닭(마당닭이라고 부르겠다)은 대개 몸집이 크다. 키도 오똑하고, 눈도 부리부리하며, 달리기도 잘한다. 겉모습을 봐도 충분히 놀랄 만하지만-친구 하나가 "저런 닭은 동물원에 가야 하는 거 아냐?"라고 한다-백숙을 시켜보면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다. 삼계탕에 나오는 닭 한 마리는 우습게 먹는 사람도 거대한 크기를 가진 마당닭을 보고는 질려 버린다. "저 다리 굵기 좀 봐. 저게...닭이야?"
마당닭이 큰 까닭은 마당에서 크기 때문이다. 그 닭들은 마당 여기저기를 쏘다녀 다리근육을 발달시키고, 사료 외에도 마당에서 자라는 각종 벌레들-구더기를 포함해서-을 쪼아먹는다. 풍부한 영양과 운동이 제공되니, 큰 닭으로 자라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2. 그럼 양계장에서는?
양계장에서 대량으로 사육되는 닭들을 보면 불쌍하기 짝이 없다. 철장 하나에 수십, 수백마리씩 들어가 있는데, 겨우 서있을 정도의 공간만이 닭들에게 허용된다. 그저 한 자리에 서서 가끔씩 주는 사료를 먹는 게 그들 일과의 전부인데, 배설물을 선 자리에서 싸니 환경 또한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그 결과 몸은 왜소해지며, 한 마리라고 해봤자 한사람이 먹기에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들에겐 삶의 즐거움나 미래에 대한 비젼 같은 것도 없어 보인다.
3. 김어준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를 만났을 때, 그의 예리함과 유쾌함에 감탄한 적이 있다. 운동권에서 학습을 받은 것도 아닌 그가 그토록 고강한 내공을 지니게 된 이유가 뭘까? <쾌도난담>의 일부를 소개한다.
[김어준: 난 학교다닐 때 도시락을 잘 안싸갔어. 왜냐? 엄마가 귀찮아 하니까.
김규항: 어준이네 집은 어떤 시스템이냐 하면, 부모가 자식에게 해주는 게 하나도 없어. 그 대신 통제나 참견도 일체 없어. 그러니까 이런 애가 나오는 거지.
최보은: 이상적인 가정이네....
김어준; 그리고 맛있는 거 있잖아? 그럼 부모님들만 잡수셔. 너는 먹을 날이 많이 남았잖아, 이 자식아, 이러면서. 아, 난 정말 우리 부모님들 인간적으로 좋아해.
최보은: 말 되네. 그렇게 살아야지.
김규항: 중요한 건 아이들에게 해주는 게 없는 대신 나중에 보상을 바라거나 섭섭해 하지도 않는 거야. 아주 초근대적인 시스템이지....
김어준: 해주는 것이 없었다기보다, 그런 식으로 통제 없는 시스템 속에서 난 자율적인 인간이 된 거지. 맘대로 하되 그 결과도 스스로 책임지는 거지.
김규항: 애는 나중에 애 낳으면 어떻게 키울 거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을 했대요. 어차피 될 놈은 되고 안될 놈은 안되니까 그냥 놔둘거다.
김규항: 김어준이라는 독특한 인간, 운동권이라든가 제대로 학습을 했다든가 하는 경험이 없으면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대단히 정확하거든. 내가 애를 '비학습 좌파'라고 부르는데, 배경에는 그런 부모님이 있었더라는 거지(244-245쪽)]
김어준은 대학을 다닐 때 2년인가를 휴학을 하고는 현지에서 돈을 벌어가면서 세계 각지를 여행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김어준은 하고픈 일을 다 해가면서 자란 '마당닭'이며, 그래서 다 자란 후에 저토록 예리한 비판적 지성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 시대 대부분의 학생들은 '양계장' 닭으로 길러진다. 학교가 파하면 바로 학원에 가고, 밤늦게 집에 갔다가 새벽에 학교로 오는 숨막히는 생활을 중학 1학년때부터 반복한다. 입시는 전쟁인데, 자율적인 인간이고 비판적 이성이 도대체 뭐가 중요한가. 자식에게 더운 밥과 진수성찬을 차려주시는 어머니는 나중에 혼자 김치에다 식은 밥을 드시며, 자식 공부에 도움이 된다면 그 어떤 것도 아끼지 않으신다. 어머님은 수시로 말씀하신다. "공부 잘해야 해! 공부! 공부!" 그런 행위가 자식에게 얼마나 부담이 될까? 마당닭은 식용 뿐 아니라 싸움닭, 박제 등 여러 가지 길이 있지만, 식용으로 쓰지 못하는 양계장 닭은 아무 쓸모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맛있는 닭이 되기 위한 경쟁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의 사회는 그렇게 양육된 양계장 닭들이 지배할 거다. 새벽에 일어나 밖에 나가보라. 어디선가 닭이 구슬피 우는 소리가 들릴 테니까. "꼬---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