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거미 내려앉아 어두운 거리에/밤하늘 너의 뒤 나의 꿈 들려주네
에헤~~~ 에헤~~~~ .......마음깊은 곳에서 우리 함께 나누자
너와 나 너와 나 너와 나만의 꿈의 대화를"

한달만 지나도 식상해지는 노래가 많은 와중에, <꿈의 대화>는 시대를 초월해 꾸준히 불려지는 명곡이다. 당시 인기리에 열렸던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이 노래는 한명훈과 이범용이 만들고 불렀다. 이범용은 연대 정신과를 나와 의사로 살고 있는데,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그 좋은 노래를 정말 그 사람이 지었는지에 대해,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런 노래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 후 20년이 지나도록 아무 노래도 짓지 않고 있지는 않을거다"
그의 말이 맞건 틀리건, <꿈의 대화> 하나만으로도 이범용은 불후의 명가수 대열에 오를만 하다는 게 그 노래를 즐겨부르는 내 생각이다. 몇 년 전 대학가요제 25주년인가를 기념해서 주최측이 그들의 재공연을 추진한 적이 있었는데, 한명훈은 흔쾌히 수락한 반면 이범용이 거절해 아쉬움을 던져주기도 했다.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 너를 다시 만났었지/신문을 사려 돌아섰을때 너의 모습을 보았지...언젠간 우리 다시 만나는 날엔 빛나는 열매를 보여준다 했지/우리의 영혼에 깊이 새겨진 그날의 노래는 우리 귀에 아직 아련한대.."
동물원이 부른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의 가사다. 이 노래엔 지하철에서 발을 밟았는데 미안하다고 했다느니 어쩌니 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여기서 난 우리의 평범한 일상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노래로 만들어질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이 곡 외에도 수없이 많은 주옥같은 노래들을 쓴 천재 작곡가 김창기도 연대 정신과 출신인데, 지금도 어디선가 의사로 활동 중이다. 그가 훌륭한 의사일 수는 있지만, 음악 부문에서만큼 그의 존재가 크지는 않을 터, 그가 음악계에서 계속 활동을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좋은 노래를 많이 만들어서 피로에 지친 사람들의 정신을 위로하는 것도 보람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의 어머님은 한숨을 쉬면서 말씀하신다. "우리 얘가 원래 천재였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에 빠져 저렇게 되었다" 연대 의대가 아무나 가는 것은 아닐텐데, 과연 천재는 천재다. 이대 의대를 다니던 내 써클 친구는 김창기를 좋아해 공연 때마다 찾아가고 했었지만, 김창기는 그녀와 같은 과인 다른 의사와 결혼을 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같은 과 친구에게 김창기를 '빼앗겼으니' 속상할 법도 한데, 지금은 그녀 또한 좋은 남편과 결혼해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중이다.

연대 정신과의 계보를 잇는 마지막 주자는 표진인이다. 신촌 어디쯤에 개업을 하고 있는 그는 TV에 출연하며 화려한 입담을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앞의 두 명에 비하면 중량감이 좀 떨어지긴 해도, 앞의 둘과는 달리 앞으로도 쭈욱 방송에 출연할 예정이니 속단하긴 이르다.

그와 난 초등학교 동창이고, 고교 때 같은 독서실에 다녔고, 대학 때도 잠깐 같이 논 적이 있다. 하지만 그 후 만남이 없다가 인터넷 덕분으로 다시 만났는데, 사실 그 전까지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초등 동창들 중 '신촌파'로 결집되어 자주 만나고 있다. 방송스타에 속하지만 그에게는 그런 거만함이 없다. 술을 마실 때 가끔 팬이라고 찾아오는 여자가 있지만, 배용준처럼 얼굴을 가리고 외출해야 할 정도는 아니다. 그는 아직 독신인데, 걔가 "쟤 예쁘다!"라고 하는 애들을 보면 그다지 눈이 높은 것 같지도 않다. 올해는 뭔가 한건 하겠다고 했으니, 기대해 봐야겠다.

고교 때 독서실에서 만났을 때, 그는 그다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도 지금처럼 같은 독서실에 다니는 누구누구가 이쁘다느니 하는 얘기를 했고, 틈나는대로 기타를 쳤다. 고3 때 같은 독서실에 다니는 친구가 표진인을 불러 "너도 대학은 가야지"라는 말을 했는데, 그때 표진인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자기는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그게 웬 말이냐는 식으로. 그 친구 덕분인지, 아니면 원래 열심히 해서인지 표진인은 연대 의대에 갔는데, 늘 그를 걱정해온 독서실 주인은 그를 껴안고 감격했다고 한다 (하긴, 나도 좀 놀랐다). 언젠가 브레인 서바이벌이란 프로에 출연해 우승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계단 올라가기에서 그가 세운 기록은 UN의 김정훈에 의해 깨지기까지 최고 자리를 유지했다. 우승자들만 출전한 왕중왕전에서 그는 또다시 우승하는데, 우승상금을 두 번 다 출신고에 기증한 덕분에 '훌륭한 선배'로 조회 시간에 연설을 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고교 때도 그랬지만, 표진인은 지금도 기타를 잘 친다. 한때 토요일마다 모 카페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을 정도. 노래도 잘 불러, 동창 모임에서 임재범의 <너를 위해>를 부를 때는 기립박수가 나오기까지 했다. 그의 유머 감각은 최고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매우 독특한 언어를 구사하는데, 그게 참 웃긴다. 예컨대 내가 물을 많이 먹으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야, 너 물 잘나간다!" 빨리 달리는 차가 있으면 "저 차 운전자, 쏘는데?" 이외에도 '신경을 긁는다'같은 자기만의 어휘를 끊임없이 구사해, 나를 비롯한 그의 추종자들은 그 어법을 열심히 배우고 있다. "이땐 쏜다를 써야 되니?" "아니, 먹어준다, 이렇게 써야지" 

한때는 유명 연예인과 안다는 사실이 뿌듯했는데, 같이 놀다보니 그런 마음은 다 없어졌고, 지금 표진인은 내 소중한 친구일 뿐이다. 어찌되었건 면면히 이어지는 연대 정신과의 계보를 누가 계승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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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3-02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의대 출신 중에도 상당히 독특한 분들이 많군요. 하지만, 저에게 있어 '의대 출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가장 쇼킹한 인물'은 이범용도 아니고 김창기도 표진인도 아닌 마태우스님입니다.^^ 뭐, 이건 칭찬이라구요. 칭찬.^^

비로그인 2004-03-02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진우맘님 의견에 한표! ^^ 꿈의 대화는 저두 좋아했던 노랜데, 그런 독특한 이력이 있었군요~ 표진인씨의 어휘세계는 너무 독특해요. ㅎㅎ

sooninara 2004-03-02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 말에 한표...에구..리뷰써야하는데..글솜씨가 없어서 고민중입니다..

마태우스 2004-03-02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 앤티크님/저도 의대애 같지 않다는 말은 칭찬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수니나라님/어머나 제가 리뷰에 대한 스트레스를 드렸군요. 안쓰셔도 되는데...

sooninara 2004-03-04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트레스라니요..공짜로 책받고 죄송해서 알아서 기는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