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보지 않았고, 유익하면서도 재미있는 영화를 고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실습 시간에 틀어 줄 영화로 <메종 드 히미코>를 고르기까지 난 적지 않은 고민을 해야 했다. 학생들이 그 영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감동까지는 아니지만 일말의 재미라도 느낄 수 있을까. 몇몇 분께 문의해 보니 “그 영화 최고죠!”라고 한다. 틀었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난 내 선택을 후회했다. 학생들은 시종 비명을 질러댔고, 문을 열고 나가는 학생도 꽤 있었다. 남아 있는 학생들도 지루해 못 견디겠다는 표정, 두시간 반의 상영 시간도 그렇고 동성애라는 주제도 학생들에게 무리였었나 보다. 학생들이 낸 리포트를 훑어보며 그 사실을 재확인했다.

“약간 변태스럽기도 했고 지루한 감도 없지 않았다...거북하게만 느껴진다”

“영화 속 인물들의 비정상적이고 역겨운 언행들이...나의 인내심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교수님이 왜 이런 영화를 선택하셨나 하는 의문도 든다.”

“정말 토 나오게 사는군!”


하지만 한 학생의 리포트를 읽다가 내 눈이 커졌다(그래봤자...남들 실눈 뜬 크기지만). 그 학생의 리포트는 시작부터 날 즐겁게 했다.

“천안에 혹시 개봉할까 기대해 봤지만 역시나 안했다... 생각지도 않게...이 영화를 보게 되어 기뻤다.”

그의 리포트는 왜 학생들이 이 영화를 그토록 거북해 했는지 설명해주고 있다.

“내가 봤던 동성애 관련영화 중에 이 영화가 가장 현실적이었던 것 같다...사실 내가 봤던 동성애 영화에는 실제 동성애 자체가 주 내용이 된 것이 없었다. 더 큰 무언가 다른 것을 말하고자 하는 영화들이 대부분...하지만 이 영화는 동성애자들이 사회와 갖는 관계, 그리고 그들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간다...”

이 리포트는 내가 미처 몰랐던 부분을 깨우쳐 주기도 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가정도 만들어보고 ‘정상’적인 척 생활을 해 보려 한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모두 ‘이상’하더라도 그 자신 자체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 학생이 마지막에 추가로 쓴 말은 그가 이 영화를 얼마나 흥미롭게 봤는지 말해 준다. ㅡ그것도 아주 즐거운 방식으로.

“혼자 봤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하도 동기들이 뒤에서 뭐라고 해서 집중이 잘 안되었다.”


오숙희 선생님이 강의에 오셨을 때 ‘씨앗’이라는 표현을 쓰신 적이 있다.

“한 명이라도 그 속에 있는 씨앗을 싹트게 한다면 성공한 거죠.”

리포트로 보건대 이 학생의 씨앗은 이미 싹이 트기 시작했다. 이 학생이 어떤 의사가 될지를 상상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아마도 감수성이 풍부한, 환자의 아픔을 제 것처럼 느끼는 그런 의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메종 드 히미코>를 고른 나의 선택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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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1-09 0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라보~!

다락방 2006-11-09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보고 싶었는데 못봤어요. 울 동네 디비디 샵에도 없다고 하고. 아이참..

마늘빵 2006-11-09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직 못봤는데 보고파요.

비로그인 2006-11-09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요!! 그 씨앗(?)분이 훌륭한 꽃피우시길..^^

비로그인 2006-11-09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 영화 나도 보고 싶었는데 ^^;

그리고..
계속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잘 자라날 수 있도록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그런 좋은 일을 해주시도록 부탁드릴게요 :)

moonnight 2006-11-09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멋진 마교수님!!! ^^ 맞아요. 한명의 학생이 뭔가를 깨달았다면 나머지 학생들이 다 투덜투덜 야유를 보냈더라도 보람있었던 거죠. 그 학생, 후에 얼마나 열린 마음의 의사가 될까. 제가 막 두근거립니다요. ^^ 자신과 다르면 무조건 변태-_-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좀 다르게 볼 수 있는 눈을 기르길, 바래봅니다. 마교수님같은 스승이 더 많이 필요해욧. >.<

클리오 2006-11-09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감동적인 글이여요... 요즘은 유머에 덧붙여 마음에 다가오는 글을 쓰시는군요. 뭐 신변에 변화라도.... ^^;;;

Mephistopheles 2006-11-09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조제 호랑이~ 와 더불어 잘만든 영화인데요...^^
동성애라는 코드를 가지고 이렇게 일반인에게 쉽게 다가가긴 힘들어요..
전 보고 엄청 감동받았는데..특히 피키피키피키~~~ ^^

marine 2006-11-09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 요새 애들은 이런 영화 싫어하나 보군요
그런데 참, 교수님께 내는 레포트가 무지하게 솔직하네요

비로그인 2006-11-10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탁월한 선택이셨습니다.

춤추는인생. 2006-11-10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멋져요... 혹시 남학생였다면
저 소개시켜주세요 =3=3=3 ^^

모1 2006-11-10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스트 이야기를 담은 것이라고 들었는데 동성애도 들어있나보죠? 호스트라는 소재 자체가 학생들에게는 좀 그렇지 않았나..싶긴 합니다.

마태우스 2006-11-11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1님/어 이건 그냥 게이 얘긴데요??????
춤추는인생님/여학생이었다오 이를 어째..
주드님/다 님 덕분입니다^^
블루마린님/제가 그렇게 유도했죠. 토나왔다, 이런 식으로 쓰라고 했더니 죄다 토나왔다고 쓰네요^^
메피님/영화도 원래 아는만큼 보이지 않습니까^^
클리오님/살이 더 쪘습니다. 그 정도?^^
달밤님/절 끊임없이 격려해주는 달밤님같은 댓글러가 전 필요합니다^^
고양이님/물은 당연히 술일테고 거름이란...삼겹살을 뜻하나요?^^
크리미슈슈님/안그래도 엠티가서 칭찬해 줬지요. 하는 행동도 어쩜 그리 멋진지...^^
아프락사스님/오다기리 조가 님이랑 닮았던데...^^
다락방님/학교 돈으로 사서 대여는 어렵습니다. 함 와서 보시죠^^
마노아님/헤헤. 생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