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학관리과 과장이란 분이 전화를 달란다는 전갈을 받은 순간, “또 나야?”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아니나다를까 그는 내게 이번 일요일날 수시 입학생의 면접을 부탁해 왔다. 40명의 정원 중 10명을 수시입학으로 뽑는데, 그게 바로 이맘때다. 학생을 선발하는 건 교수가 당연히 할 일이긴 하지만, 여기 발령을 받고 나서 8년째 같은 전화를 받는다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 내가 우수한 학생을 유난히 잘 뽑는 것도 아니고, 더 결정적으로 집도 서울이라 아침 8시 반까지 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왜 항상 난가. 안그래도 높은 보직을 맡아 학교를 위해 용의자 X에 버금가게 헌신하고 있는데 말이다. 처자식이 없어서? 아니면 가르치는 과목이 워낙 특이해서? 작년에는 놀러 가는 걸 예약해 놓았던 터라 사정을 해서 빠졌지만, 이번에는 별일이 없었기에 알았다고 했다. 난 코트에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한데, 이번주는 그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 술을 많이 마셔서 운동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인데.
다음날 내려가는 게 영 심난해서, 토요일날 내려가 연구실에서 자겠다는 깜찍한 계획을 세웠다. 오늘밤에는 다음주로 예정된 시험 출제나 하고, 내일 아침엔 좀 일찍 일어나 학교에 있는 호수 주변을 돌며 운동도 하자. 그리고 어차피 간 거니 일요일날 또 자고 월요일날 집에 와야지. 이런저런 상념에 잠긴 채 고속터미널에 도착했는데, 천안으로 가는 매표소에 사람이 와글와글 몰려있다. 덜컥 겁이 났다. 창구 밖으로 판매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9시 반 우등이고, 일반은 45분입니다.”
9시 반 표를 손에 쥐고 시간을 보니 7시 반, 난 두시간을 어떻게든 때워야 한다. 두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게 대체 뭐가 있을까? 잠깐 생각하다 피씨방으로 달려온 걸 보면 난 책을 읽기보단 글 쓰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집에서도 책을 보기보단 TV를 더 오래 보지 않는가? 버스나 기차 안에서 책을 읽는 게 몸에 배어 정지상태일 때는 책을 읽지 못하는 이런 현상을 니콜 키크더만이란 학자는 ‘정지 난독증’이라고 했던데, 내가 그 병에 걸린 게 틀림없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난 지금 피씨방이고, 앞으로도 한시간여를 여기서 더 보내야 한다. 머릿속에 있는 글들을 다 담아 내려면 부족한 시간. 후훗. 난 정말 글쓰는 걸 좋아한다. 피씨방에서 보내는 아름다운 주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