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를 다녀왔다. 가평으로.


1. 날짜

날짜를 잡는다고 잡은 게 어제와 오늘,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MT를 간다는 게 좀 머쓱한 노릇이었다. 하지만 학장님께 날짜를 말씀드리니 의외로 “예과 때 놀아야지!”란다. 그래서 갔다. 참고로 우리가 예과 때 부르는 노래는 ‘노세 노세 예과 때 노세’다.


2. 축구

가자마자 짐을 풀고 축구를 했다. 애들이 나도 끼워 줬다. 애들은 나한테 큰 기대를 안했겠지만, 사실은 나 축구 잘한다. 특히 1대 1에서 거의 뚫리지 않는 게 내 장점. 나를 제치려고 헛다리를 짚는 등 페인트모션을 쓰는 애들, 그거 나한테 안통한다. 난 걔네들의 모션을 보는 게 아니라 공만 보니까. 한명이 내 앞에서 좌우로 몸을 움직이기에 신경 안쓰고 공을 걷어 차버렸더니 매우 놀란다. 뭘 그리 놀라나. 내가 8개 의대 체육대회 때 대표로 나갔고, 보건원 있을 때 보건원 대표로 뛰었던 걸 미리 말할 걸 그랬나? 하지만 나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졌는데, 우리가 좀 더 우세한 경기를 하고도 골대를 맞추는 등 운이 따르지 않은 까닭이고, 상대 팀의 골 결정력이 더 높기도 했다. 내 존재감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다음 사례를 보면 된다. 내가 있을 때만 해도 우리가 2대 0으로밖에 지고 있지 않았는데, 5분 남았다기에 다른 학생과 교대를 했더니 순식간에 새 두골을 먹은 거다. 다들 이해하셨죠?


3. 과대표

지금 과대표는 여학생이다. 평소에도 예의바르고 일 잘한다 싶었는데, 이번 MT를 갔다오고 나니 그의 팬이 되버린 느낌이다. 나에 대해 어찌나 배려를 해주는지, 그전까지 방치당했던 설움이 다 사라져 버린다. 그와의 대화 한토막.

나: 저 내일 좀 일찍 올라갈께요.

그: 제가 전송 갈께요. 몇시에 가세요?

나: (놀라서) 뭘 전송을 나오려고... 8시요!

그: 7시에 가시는군요!

어떻게 알았을까. 난 아침 7시에 터미널까지 가는 택시를 예약한 상태였다. 그의 눈치빠름에 한층 더 그를 우러러보게 된다.


결국 난 7시 전에 거기서 나왔다.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문자를 보냈다.

“제게 가장 잘해준 과대표세요. 정말 고맙습니다. 재미있었어요”

한참 후 답이 왔다. “알람 맞춰놨는데 못일어났어요. 죄송해요. 잘해드린 것도 없는데.”

점심을 먹고 있는데 학교에 잘 도착했다는 문자가 온다. 이것 역시 다른 과대표한테선 찾아보기 힘든 덕목, 안전하게 다들 왔는지는 내 관심사가 아닌가.


여자라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지금 과대표가 나를, 그리고 다른 학생들을 잘 배려해 주는 능력은 그의 여성성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을거다. 돌아오는 비행기표를 안줘서 날 안달하게 만들었던 그전 과대표와 비교해 보시라. 이래서 난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지지한다. 다른 나라의 예에 따르면 여성 정치인이 부정부패도 적다는데, 거기에 더해 다른 이의 마음을 읽고 배려해 줄 줄 아는 능력까지 갖추었으니 여성들이 의회의 다수를 차지한다면 민중들의 삶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과대표에게 말해야겠다. “혹시 나중에 정치 안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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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0-11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형식적이라고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챙김(?)을 받는 건 기분좋은 일 같아요
여성의 정치세력화.. 좋은데요? ^^

하루(春) 2006-10-11 0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T지라길래 신문 얘기하시는 건 줄 알았어요.
과대표를 안 해봐서 모르겠는데요, 이번 과대표는 리더로서의 자질을 어느 정도 갖춘 것 같네요. 그런데 다른 학생들에게도 그만큼의 능력을 인정받고 있나요?

다크아이즈 2006-10-11 0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대표도 마태우스님도 참 따뜻한 분이시네요. 가끔씩 훔쳐보는 님의 서재는 배려와 유머와 깊이가 공존하는 우물이에요. 한 두레박 퍼마십니다. 꿀꺽!

paviana 2006-10-11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대표 학생 예쁘지요? ㅎㅎ

건우와 연우 2006-10-11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똑똑하고 예쁘네요, 그 여학생...

달콤한책 2006-10-11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 가장 잘해준 과대표세요. 정말 고맙습니다....마태우스님, 이 대목에서 눈물이 납니다^^

마노아 2006-10-11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동안의 설움이 씻겨졌다니 다행이에요. 여성 정치 세력이 적어도 절반은 차지해야 할 텐데..^^;;;

진/우맘 2006-10-11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학교 행사가 있어 교육청 회식에 협찬품목...쯤으로 끼었더랬죠. 여성의 정치세력화는 이미 상당부분 진행되고 있던걸요? 무섭더이다. ㅡㅡ;;

BRINY 2006-10-11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학교 있을 때는 저런 반장 학생 복이 있었는데, 남학교 와서는 통...왜 그럴까요?

다락방 2006-10-11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굉장히 인상적인 페이퍼예요. 많이 생각하게하는데요.

moonnight 2006-10-11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번엔 과대표땜에 서럽지 않으셨다니 참 다행입니다. 그 여학생, 미모도 상당했으리란 추측. ^^; 와, 마태우스님은 테니스만 잘 하시는 게 아니군요. 팔방미인!

마태우스 2006-10-12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밤님/사실은 축구랑 테니스만 잘합니다. 아 참 술두!! 그 모든 건 저보다 님이 낫잖아요!
다락방님/오옷 그렇습니까? 감사!!
브리니님/그게요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우맘님/아직 멀었다는 게 제 생각....^^
마노아님/그렇죠... 성비에 맞게 되어야죠!
달콤한책님/어맛 왜 눈물이..... 님은 '마음이..' 보심 안되겠어요 휴지를 너무 많이 쓰실 듯...^^
건우님/그러게 말입니다^^
파비님/그 나이 때 안이쁜 애가 어디 있어요^^
다크아이즈님/앗 처음 뵙겠습니다. 제, 제가 따뜻한지는 모르겠지만...더위는 많이 탑니다
하루님/그럼요.... 인기 많더라구요! 카리스마도 있구
크리슈미미님/결론이 너무 비약이 아닐까 했는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