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으며 시네21을 펼쳤다가 <우리개 이야기>라는 영화에 필이 꽂혔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이 영화를 하는 극장은 시네코어 딱 한군데, 시간은 8시 10분이면 괜찮을 듯했다. 혼자가 자유롭다는 건 마음을 먹으면 대개 실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을 닫는다는 뉴스를 봐서 그런지 시네코어는 유난히 올씨년스러워 보였다. 에어콘이 안되서 영화 시작을 기다리는 동안 연방 부채질을 해야 했으며, 사람도 없어 검표원 아가씨는 시종일관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손님이라곤 나랑 묘령의 아가씨 둘 뿐, <이터널 선샤인>에선 여자가 먼저, 그것도 맹렬히 접근을 하던데 난 짐 캐리가 아니었고, 장소 또한 영화 속의 바닷가가 아니었다. 그래서 난 영화 시작 전까지 열심히 독서를 하느라 여자가 예뻤는지 어땠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나마도 시작 시간이 가까워오자 손님들이 확 몰렸고, 이십명은 넘고 서른은 좀 안될 숫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출현은 이전까지 로맨틱했던 분위기-나만 그렇게 느꼈겠지만-를 깨기엔 충분했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좋을 수밖에 없다. 영화 내내 나오는 개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가. 게다가 초반의 에피소드들이 어찌나 재미있는지, 미소가 절로 났다. 그러다 중반을 넘어서 좋아하던 소년과 헤어진 개 얘기가 나오자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내가 보건원에 근무하던 시절, 난 일요일이면 벤지를 데리고 보건원에 가서 산책을 시켰다. 실험용 쥐 냄새를 맡아서 그런지 천방지축 돌아다니는 벤지를 통제하기가 힘들어, “벤지야 나 간다!” 하고선 차를 타고 보건원 내 도로를 달릴 때면, 벤지는 흰 털을 날리며 차 뒤를 쫓곤 했다. 행여 내가 자기를 떼어놓고 가버릴까봐. 영화 속에서, 아이를 실은 응급차를 개가 입에 공을 물고 쫓아가는 장면에서 난 어쩔 수 없이 그때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개는 아이를 찾아 결국 병원까지 오지만, 아이는 이미 퇴원한 후. 그때부터 개는 병원 앞에 앉아 아이를 기다렸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 슬픈 표정을 짓던 개는 옆으로 누운 채 일어나지 못한다. 영화 속 장면인 걸 알면서도 어찌나 슬픈지 난 연방 휴지를 꺼내야 했는데, 극장 안은 몇 안되는 사람들의 훌쩍이는 소리로 가득찼다. 모르긴 해도 그들은 개를 길러본 경험이 있지 않을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렇게 끝난다. 기르던 개를 잃고 “다시는 강아지를 기르지 않을거야”라고 말하던 소녀가, “널 닮은 강아지를 또 기를 거야.”라고 하면서. 애견가의 마음을 이토록 잘 아는 것으로 봐서 <조제, 호랑이..>와 <메종 드 히미꼬>를 연출했던 이누도 잇신 감독은 개를 사랑하고 잃은 경험이 틀림없이 있을 거다. 모자를 눌러쓰고 황급히 극장을 빠져나오면서 생각했다. 아직은 개 영화를 보기엔 이르다고.



참고로 이 영화의 별점평은 보기 드물게 높은 9.28인데, 본 사람은 아마도 애견가가 대부분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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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i 2006-06-19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만 읽고도 눈물이 나요. 너무 슬플 것 같아서 영화를 못 보겠어요.

마늘빵 2006-06-20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귀엽다. 녀석들.

세실 2006-06-20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효..마음 따뜻한 마태님.....제 맘도 아픕니다.
전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가도 죽음이 두려워 자신이 없습니다

미완성 2006-06-20 0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일전에 저도 얘기했던 영화구만요. 그때 괜히 말씀드렸나, 씨네21을 보고 택하셨다지만 죄송해요(_ _)
근데 소녀와 강아지의 이야기도, 포치 이야기도 다 좋았지만 전 그 소년이 나중에 어른이 되가지고 회사에서 만든 광고를 떠올릴 때면 웃음을 참을 수가 없어요. 배경음악으로 쓰인 엔카, 지금도 그 멜로디가 막 머릿속에 떠돌아다니는 거 같네요. 기운내십쇼! 인간은 강한 동물 아닙니까;;;;

비로그인 2006-06-20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종종 `사람보다는 개'라고 생각합니다.

누미 2006-06-20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ude님 말처럼 '사람보다 개'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긴 하지요^^

비로그인 2006-06-20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극장에서 대성통곡할까봐 겁나서 못보는 영화중 하나랍니다 ㅜㅜ

Mephistopheles 2006-06-20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만도 못한 사람이...점점 늘어나고 있는 현실인 듯 하네요..
저번 주말에 TV프로를 보니까 개들은 사자새끼도 키우던걸요...

BRINY 2006-06-20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 이 영화 도대체 언제 개봉했는지.

비자림 2006-06-20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참 힘드셨겠네요. 그래도 벤지가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개였을 거에요. 님의 사랑이 깊고 따스했음을 벤지도 알고 갔을 거에요.

건우와 연우 2006-06-20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보단 사람이 좋지만 사람만큼 개도 좋을수 있다고 생각해요.
널닮은 개를 또 기를거라던 말처럼 슬퍼도 또다시 추억할수 있는건 추억이 주는 힘이자 위로 아닐까요? 힘내세요...

sweetmagic 2006-06-20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

마태우스 2006-06-21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직님/이거 왜이러십니까.... 왠지 님은 개보다 더 나은 분인 거 같아서...
건우와 연우님/지금은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근데 한마리 더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키우려면 몇십마리 정도???
비자림님/그랬으면 좋겠어요....감사합니다.
브리니님/저도 몰랐어요. 역시 시네21은 좋은 잡지어요..
메피님/저도 그 프로 봤어요. 사자새끼도 키우는데, 어찌나 신기하던지요
별님/일년 지나서 이제 괜찮습니다 감사드려요
고양이님/님은 필경 그러실 겁니다...
누미님/역시 그렇죠? 같이 지내보면 확실히 느껴져요...
주드님/알라딘엔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 참 많군요^^
니노밍님/아 일전에 님이 얘기하신 게 바로 이거?? 까먹고 있었어요. 광고 넘 웃기죠... 글구 에피소드들이 대충 연결이 되서 더 감동적인 듯...저 밥먹고 힘낼께요
세실님/저도 이제 그렇습니다....
아프님/사람이 아무리 귀여워도 개만 못하죠....
냐오님/슬프기만 한 건 아니구요, 개가 얼마나 좋은 동물인지 느끼게 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