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테니스를 엄청 잘쳤다고 얘기한 바 있다. 내가 파악한 비결은, 글에 쓴 대로 술을 별로 안마신 것.
이번주 역시 지난주의 기세를 이어나가 멋진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주중에 좀 무리를 했었는데 다행히 토요일 술약속이 취소가 되었고, 9시 조금 넘어 들어와 11시쯤부터 달디단 잠을 잘 수 있었다.
나를 빼곤 다들 컨디션이 엉망이었다.
J: 나 어제 일하느라고 두시간 잤어.
C: 감기가 잘 안낫네. 콜록콜록.
A: 회사 문제로 벌써 두달째 머리아파 죽겠어요. 어젠 회사에 깍두기들이 몰려와서는...
B: 하드코트에서 치니까 무릎이 아파요. 지난번 클레이에서 칠 땐 괜찮았는데...
나: 음하하핫. 그럼 오늘도 나의 독무대인가? 이번주엔 술도 한번밖에 안마시고 어제 잠도 충분히 잤거든.
결론적으로 난 오늘 테니스를 시작한 이래 최악의 플레이를 펼쳤다. 몸이 가벼워 발은 무지하게 빨랐지만, 그래서 인간이 잡을 수 없는 공을 몇 개 건져냈지만, 가장 중요한 스트로크가 전혀 안되었다. 평소 자랑하던 총알같은 스트로크 대신 상표가 뚜렷이 보일 정도로 느린 공을 상대에게 날려야 했던 나, 예전 같으면 모르겠지만 친구들의 테니스 수준이 다들 올라갔는지라 수비 테니스만 가지고는 이길 수가 없었다. 1승 5패. 그야말로 참담한 성적이었다. 테니스를 가장 못치는 B마저 3승2패를 했으니 오죽하겠는가.
“술을 안먹으니 안되네. 이번주엔 술 많이 먹어야겠다. 하하.”
우울한 마음을 감추려고 애써 명랑하게 떠들었지만, 내 마음은 울고 있었다. 샤워를 하려고 옷을 벗다가 난 소스라치게 놀랐다. 테니스를 못친 이유를 알아낸 것. 2년 전부터인가 난 붉은 계열의 팬티를 입어야 테니스를 잘친다는 징크스가 있었는데, 내가 오늘 입은 건 하늘색이었던 것. 어쩌자고 그런 실수를 저질렀을까, 나는. 아마도 어제 너무 피곤해서 그런 생각을 못하고 잔 것이리라. 원인이라고 생각했던 술은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술을 왕창 마신 다음날에도 신들린 플레이를 연출한 적이 어디 한두번인가. 다음 주엔 결코 잊지 않으리라. 붉은 팬티의 교훈을.
* 내겐 모두 다섯장의 붉은 팬티가 있다. 원래 두장이었는데 그렇게 늘어난 이유는-전에 한번 쓴 적이 있지만-다음과 같다. 방학 때, 테니스를 주중에 두 번을 쳤다. 두 번 다 붉은 팬티를 입고 잘 칠 수 있었는데, 그걸 빨지 않고 쌓아둔 탓에 일요일에 남색 팬티를 입고 갔고, 그 결과 테니스를 망쳤다. 이 얘기가 보도되자 안타깝게 여긴 모 여인이 세장을 더 사다 준 것. 일주 내내 치지만 않는다면 팬티 걱정은 이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