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 유쾌한 미학자 진중권의 7가지 상상력 프로젝트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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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미학을 진중권에게 배웠다. 미학과가 뭐 하는 곳인지도 몰랐던 난 그의 저작들을 읽으면서 미학의 재미를 알았다. 그러면서 난 미학을 공부하는 데 필수적인 그림은 물론이고 철학의 세계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내 인생은 훨씬 더 풍요로워졌다. 미학 오딧세이 4권에 해당한다고 할만한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역시 미학에 대한 내 갈망을 충족시켜 주었다.


하지만 그의 다른 책들과 달리 이번 책은 내게 좀 힘들었다. 물론 <엑스 리브리스>를 비롯한 진중권의 책들이 읽기 쉬웠던 건 아니다. 철학과 예술을 넘나드는 그의 저작들은 읽을 때 늘 긴장을 요구하니까. 하지만 이번 책이 유독 내게 어려웠던 건, 공간 지각력이 워낙 취약하기 때문이다. 철학 얘기라면 ‘이해 안가면 외우자’고 넘어갈 수 있지만, 공간 지각력의 문제는 그렇게 해결할 수가 없었다. 128쪽부터 나오는 에르하르트 쇤의 작품들은 ‘왜상’, 즉 그림 속에 또다른 그림을 숨겨둔 것들이다. 다시 말해서 화살표 방향으로 그림을 본다면전혀 다른 그림을 볼 수가 있는데, 문제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내 눈엔 그게 안보인다는 거다. <나가! 이 늙은 바보야>는 그냥 풍경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남녀가 하고 있으며 그 여자의 남편인 노인을 팔로 밀쳐내는 장면이란다. 책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열심히 노력해 봤지만, 난 그 그림을 볼 수 없었다. 하도 답답해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이것 좀 봐주시겠어요?”라고 부탁하고 싶은 지경이었다. <고래 배에서 나온 요나>에는 한 사내가 변을 보는 장면이 있고, 그 아래 “뭘 봐?”라는 글씨가 보인다는데 그것 역시 내 눈엔 보이지 않았다. 그런 게 반복되니까 짜증이 나서 읽기를 관두고 싶었다.


평소 길눈이 어둡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한심한 내 공간 지각력이 처음으로 개탄스러웠던 건 고교 때다. 수학 I은 곧잘 했지만 3차원의 도형들이 와장창 나오는 수학 II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 여기에 대해 어떤 분이 내려준 해석이 내게 위안을 줬다.

“너 글을 어릴 적에 배웠지? 글을 먼저 배운 사람은 대개 공간에 약해.”

그 생각이 나서 이 책을 읽은 또다른 분한테 전화를 걸었다. “저기 이 책 그림들 다 이해했어요?” “당연하죠.” “혹시 몇 살 때 글을 깨우쳤어요?” “네 살 때요.”

윽, 난 여섯 살 때인데. 그분의 해석은 틀렸다. 공간 지각력은 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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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4-15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핫.. 유전.. 맞아요. 타고나는게 있는 듯. 저는 길눈은 굉장히 밝은 편인데 지하도만 들어가면 몇 번을 들락거리며 헤맨다는.. -_-;;;

hnine 2006-04-15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리뷰를 읽으면 정말 이 책을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대학때 일부러 찾아가서 들은 '미학'강의를, 한 학기 다 가도록 도대체 뭘 하자는 건지 개념이 잡히지 않아 실망한 이후로 관심을 끄고 살았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공간지각력에 대해서는 마태우스님도 저랑 같은 과네요 ^ ^

진주 2006-04-15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공간 지각력이 약한데 이책은 읽고 싶어지네요. 그건 철학 쪽에 더 취약하기 때문에 수면제같은 철학책 읽기 보다는 그림 본다고 이리저리 책 돌리며 신경쓰다보면 최소한 졸진 않겠네요^^;;

반딧불,, 2006-04-15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훈련도 가능해요.
제가 공간지각력에 한이 맺혀서 파랑이는 어릴 적부텀 블럭이나 교구로 단련시켰더니 쫌 낫더군요;;;

반딧불,, 2006-04-15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다섯에는 동의 못하지만 어쨌든 정말 쉽고도 재미있게 쓰신 리뷰 만쉐이~~!!

마태우스 2006-04-15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아 그런 분이 여기에는 굉장히 많군요 일단 반갑습니다. 글구 블럭이나 교구로 단련이 가능하단 말이죠. 근데 제가 그걸 하기엔 나이가 좀 많지 않나요...ㅠㅠ
진주님/호호 님처럼 색다른 해석도 가능하네요. 진주님 멋쟁이!
hnine님/님도 저랑 같은 과... 반갑습니다. 글구 제 리뷰가 님으로 하여금 책을 읽어보게 만든다니, 그 이상 가는 칭찬이 어디 있겠어요. 감사드립니다.
구두님/길눈이 밝은 것과 지하도에서 헤매는 게 매치가 잘 안되는데요?^^ 혹시 밤눈이 어두우신 건 아닌지요^^

반딧불,, 2006-04-15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말씀. 아직도 교구의 세계의 오묘한 맛을 모르셔셔 그렇습니다.
이 기회에 입문하시죠?^^
아..일단 제 치매예방용인 앵커블럭을 추천합니다만^^

하이드 2006-04-15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반딧불님. 마태우스님 해보고 알려주세요. 앵커블럭.
뉴스보니 요즘 치매는 삼십대부터라고 하더라구요.
아, 그리고 글 네살때 깨친 그 분 정말 천잰가봐요!

반딧불,, 2006-04-15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백합니다.
책과 교구는 사실 제 위로용이지요.====33333!!

비로그인 2006-04-15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왜 안보이죠?? 정면으로 봐도 보이는데 ^^;;
(상처받으실라나 ㅋㅋ)
근데 이상하다고 생각되는게 있어요 ㅡㅡa
진중권은 5번 그림을 '남자의 손은 여인의 젖가슴을 더듬고, 여인의 손은 남자의 성기를 쥐었다. 젊은 남자가 오른 팔을 뻗어 늙은 남자를 문밖으로 쫓아내고 있다' 라고 해설 했잖아요...
근데 암만봐도 가슴 잡힌 사람이 오른 팔로 늙은 남자를 쫓는 걸로 보여요.
그러니까 가슴잡힌 사람이 여자인 것이고, 그러면 그림은 젊은 여자가 오른팔로 늙은 남자를 쫓는 모습이 되는데... 아무리 봐도 ^^a 누구 보신 분 말좀 해주세요~
그리고 6번 그림은 오른쪽 윗 방향에서 왼쪽 아래 방향으로 사선 긋듯이 보면
모자 쓴 남자가 엉덩이를 까고 쭈그리고 있는게 보여요.
엉덩이에 뭐가 방울처럼 매달려있어요(응아겠죠??) ㅋ

스파피필름 2006-04-15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리뷰는 언제봐도 재밌습니다. ^^

마태우스 2006-04-15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파피필름님/아유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나를 찾아서님/그, 그게요... 공간지각력이 있는 분의 '오만'이랍니다 흑... 전 아무리 봐도 그림을 못보기 때문에...흑... 화살표대로 봤지만 볼 수 없었습니다...흑
반딧불님/호오 그렇군요. 늦은 나이에도 그게 가능하단 말이죠.
하이드님/저보다 십년쯤 아래 분들은 다들 세살 때 한글을 깨우쳤다네요. 그러니 네살이면 좀 늦은 거겠지요
반딧불님/제가 사실은요 건축 쪽에 재질이 없답니다. 블록 대신 안주 쌓기 같은 건 안될까요?

해적오리 2006-04-16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랑 댓글이랑 넘 재밌어요. 기필코 이책을 봐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마태우스 2006-04-17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적님/아...네... 마음에 안드시면 어쩌나 걱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