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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식모들 - 제1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박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12월
평점 :
강남역 근처에서 볼일이 있었다. 당시 읽고 있던 책은 지하철을 타고 왕복을 하기에 충분한 분량이 남아 있었지만, 만나기로 한 친구를 삼십분 이상 기다리고 나니 남은 페이지가 별로 없었다. 손에 책이 없으면 열여섯 정거장을 무슨 수로 버틸까 하는 생각에 초조해지기 마련, 난 볼일을 보고 나서 곧장 시티문고로 갔다. 이십분의 장고 끝에 <수상한 식모들>을 발견했는데, 이 책이 눈에 띈 것은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아서가 아니라 내가 아는 지인이 “대단한 책이야!”라고 말한 게 귓가에 어른거려서였다. 하지만 그 전날 늦게까지 술을 마신 탓에 지하철 안에서 내내 잠만 잤고, 심지어 한정거장을 지나쳐 내렸으니 책을 산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책이 정말 ‘대단한 책’인가 하는 점, 책을 다 읽은 지금 난 이렇게 말하련다.
“책 사기 잘했다.”
내 어린 시절에는 ‘식모’라는 명칭의 입주 가정부가 있었다. 재벌2세인 관계로 나 역시 그런 분을 몇명 경험했는데, 책을 읽다가 그들을 떠올리니 괜스레 미안해진다. 그들 중에는 내 나이 또래의 여자애도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못해준 것은 분명 아니었지만, 한창 나이에 남의 집에서 차별대우를 받으며 일하는 것은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닐 것이니까. 박진규가 쓴 이 책은 바로 그 식모들에 대한 이야기다. 고생하는 식모들을 그림으로써 동정을 유발하는 게 아니라 엄청난 상상력을 발휘해 차원이 다른 이야기를 꾸려나간다. ‘질주하는, 전복적인, 쾌활한 상상!’이란 카피는 전혀 과장이 아니어서, 난 ‘도대체 이 책의 결론이 어떻게 날까?’가 궁금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내가 아둔해서 결말 부분의 ‘변신 곰인형’ 파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소설은 충분히 유쾌했고, 또 흥미로웠다.
어두운 역사일 수도 있는 ‘식모’로부터 이런 전복적인 상상을 해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저자의 말이다. “교수님들이 내 작품을 보고 난 뒤 너무 가볍다, 작품이 성기다, 황당하다, 이해가 안간다고 평하는 것이었다.” 그 교수들의 말처럼 이 작품은 가볍고, 성기고, 황당하며, 이해도 잘 안간다. 하지만 이렇게 가볍고, 황당하고 말이 안되는 이야기들이 오히려 독자를 즐겁게 만들 수 있는 법, 그러니 교수 말이라고 무조건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리라. 작가는 “내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들이 환각상태를 경험했으면 한다.”고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환각에 빠져들었던 나는 이제 저자의 다음 책을 기다린다. 환각에는, 중독성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