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 왜 말 안했냐?”
시계를 보니 6시 20분, 평소 같으면 일어날 시각이지만 서울에서 무슨무슨 워크숍에 참석하는 날인지라 7시 쯤 일어날까 했었다. 난 떠지지 않는 눈을 떴다.
“무슨 일이세요?”
어머니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너 ㄷ일보에 났다고 이모할머니한테서 전화가 왔어.”
며칠 전, 알고 지내는-사실은 두 번 만난 적이 있는-ㄷ일보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연구자 노트’라고, 과학자들이 연구를 하다가 겪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연재할까 하는데 내 생각이 가장 먼저 나더란다.
“선생님이 1호를 쓰시면, 그걸 참고해서 다른 분들께 써달라고 부탁하려구요.”
원고지 5-6매 정도니 A4로 하면 절반 정도. 분량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좀 촉박해서요. 3월 1일 아침까지 보내주실 수 있나요?”
그날은 월요일이었고, 난 마라톤 회의가 있었다. 거기서 나누어준 회의자료의 뒷면에다 몇줄을 끄적거렸고, 그걸 바탕으로 다음날 원고를 써서 보내줬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원고는 웃기려고 작정하고 쓴 거였다. 연구도 잘 안하는 사람이 연구하는 것처럼 글을 쓰는 게 미안해서. 다행히 기자는 재미있다고 해줬다. 그게 오늘 아침 신문에 실린 거였다. 편의점에서 신문을 구해서 봤더니, 생각보다 기사 크기가 컸고, 어디서 무단전재했는지 모르지만 사진도 멋졌다.
모 신문에 이따금씩 글을 쓰지만, 그 신문의 독자가 적어서인지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그걸 보고 “그 집 아들 참 장하다.”고 전화 오는 일은 없단다. 하지만 이번엔 메이져 신문인 ㄷ일보인지라 여기저기서 전화가 온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는 그 어느 때보다 기뻐하셨다. 심지어 “돌아가신 아빠 생각이 난다.”고도 하신다. 어머님의 그런 반응을 보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ㄷ일보는, ㅈ일보와 더불어 소위 나쁜 신문의 양대산맥이다. 안티 ㅈ에 동참하기로 한 지는 좀 되었고, 3년 전에는 ‘ㅈ신문과의 인터뷰 제의를 거절’하는, 꿈에도 그리던 일을 한 적도 있다. 과연 ㄷ일보는 ㅈ신문과 얼마나 다를까. 비록 저항의 역사를 갖고 있긴 하지만,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 이후 ㄷ일보의 행적은 눈뜨고 못봐줄만큼 가관이었고, 어떤 면에서는-물론 그건 세련미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다-ㅈ신문보다 더한 행태를 보일 때도 여러번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이는 그래서 연구자 X파일을 쓰는 내게 “ㄷ일보에 매문을 하느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세 신문이 신문시장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안티 ㅈㅈㄷ이 가능한 것이냐고 항변할 마음은 없다. 내가 신문에 날 때마다 저렇듯 좋아라 하는 어머님을 위해서,라고 변명하고 싶지도 않다. ㅈ신문에의 기고가 나쁘다면 ㄷ일보에 글을 쓰는 행위도 나쁜 일이다. 난 내가 신봉하는 가치를 실천하고 살기엔 너무도 심약하고 무능할뿐더러 입신양명의 욕구에 굴복하는 인간이라는 것, 그게 정답이 아닐까.
하지만 사람이 무너지더라도 지켜야 할 선은 있는 법, 어머님은 “우리 아들이 ㅈ신문에도 났으면 좋겠어. 아는 사람들이 다 그 신문 봐.”라고 하시지만 그 소원은 들어드리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