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크게 보아 과학계에 종사합니다. 지금은 그런 꿈을 꾸지 않지만 처음 이 세계에 발을 디딜 때만해도 <싸이언스>나 <네이쳐>같은 잡지에 투고를 하는 상상을 하며 혼자 좋아했지요. <네이쳐> 대신 <월간 자연>에, <싸이언스> 대신 <과학동아>에 투고를 하는 신세로 전락해서인지 그 잡지의 표지를 장식한 황박사가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싸이언스>같은 유명 잡지에 실린 논문이 조작일 거라고 의심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오랜 기간 밤하늘의 별과 같은 그 잡지를 바라보며 꿈을 키운 탓입니다.
그래서 전, 황박사의 업적이 조작이라는 피디수첩의 문제제기에 황당해했습니다. 과학에 대해 쥐뿔도 모르면서 무슨 검증이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도 논문이 진짜인지 검증해보자는 말은 엄청난 모욕일진대, 황박사는 오죽하겠느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90%가 넘는 네티즌들이 피디수첩을 성토하는 것과는 다르게, 이곳에서는 황박사를 의심하는 분들의 목소리가 더 컸습니다. 줄기세포에 대해 저 역시 별로 아는 게 없고, 글발도 밀린 나머지 소수자의 비애 같은 것도 느꼈답니다. 대세에 휘말리지 않고 냉정함을 유지하는 게 바로 알라딘의 장점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구요.
생산적인 싸움도 물론 존재하겠지만, 대부분의 싸움은 마음 속에 앙금을 남깁니다. 논쟁의 과정에서 전 제가 존경해 마지않던 분들에게 서운함을 느꼈고, 저 역시 그분들게 적잖은 결례를 범했습니다. 싸이언스의 권위를 신봉하는 제가 황박사의 논문을 신뢰하는 것처럼, 싸이언스도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황박사의 논문이 조작된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피차 어떤 입장을 정해놓고 벌이는 토론은 소모적이며 지루할뿐더러 마음까지 다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쯤해서 저는, 황박사 논쟁에서 발을 빼렵니다.
줄기세포에 대해 관심도 없었고, 별로 아는 것도 없었던 제가 어느 정도의 지식을 쌓은 건 이 과정에서 다른 분들과 열심히 토론한 덕분이니, 역시 싸움질만큼 좋은 배움의 터는 없나 봅니다. 저로 인해 불쾌하셨던 모든 분들게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