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잘났어 시리즈가 유행하던 시절, 난 내가 뭐가 잘났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난 끝내 그걸 알지 못했다. 하지만 뒤늦게 내 잘난 점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쓴다. 심기가 불편해도 이해해 주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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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했던 소화기학 강의에 대해 학생들이 평가한 결과를 통보받았다. 평균이 4.5 정도인데 반해 내 성적은 4.7, 하지만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강의를 못하기로 이름난 내가 해마다 평균 이상의 성적을 받는 것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의 비율이 그만큼 낮기 때문이니까. 내 강의 평가는 극단적인 패턴을 보이는데, 2점 이하를 준 학생이 4명(난 이들이 강의에 대해 지극히 공정한 평가를 내렸다고 생각한다)이고 나머지 40명은 다 5점 만점을 매겼다. 쉬는 시간마저 잡아먹기 일쑤인 의대 강의에서 보기 드물게 제 시간보다 빨리 끝내주는 것에 대한 반응이 그리 나타난 것이리라.


교수의 능력이 연구와 강의로 측정된다면 교수로서의 난 한마디로 낙제점이다. 하지만 스스로 평가할 때 학생들에 대한 애정 면에서 나보다 나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능력이 안되는데도 내가 대학에 붙어 있는 건 달리 할 줄 아는 게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학생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 좋아서라는 게 더 큰 이유다. 어떤 선생에게는 학생이 귀찮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난 학생들이 날 어려워하는 데서 서운함을 느낀다. 난 그들에게 형과 오빠같은, 아니 친구같은 존재로 여겨지길 바라왔고, 또 그렇게 살아왔다고 감히 자부해 본다.


지난 월요일, 학생 하나가 날 부른다. 본과 4학년 학생이다.

“선생님, 저랑 친구 몇몇이서 꼭 선생님과 술을 같이 하고 싶은데 시간 좀 내주세요.”

난 그와 수요일날 만나기로 약속을 했고, 어제 그 네명과 술을 마셨다. 국시 준비를 하느라 심신이 피곤한 그들이기에 되도록 난 애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노력했고, 학생 때는 늘 배가 고프기 마련인지라 이틀간에 걸쳐 먹어야 할만큼의 음식을 주문해 줬다.

학생들은 “바쁘실텐데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했지만, 난 내게 술을 사달라고 말해준 그들이 고맙다. 내가 학창 시절, 교수님들은 하나같이 어렵기만 한 존재였고, 난 그분들게 술은커녕 밥이라고 사달라는 말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학생들이 술을 사달라고 말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선생이다.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대학이란 곳이 먹고 살기 위한 기술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는 어제같은 자리를 빌어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는 게 무척이나 즐겁다. 언젠가 지도교수가 갑자기 나에서 다른 선생으로 바뀌었다고, 지도학생 둘이서 사색이 되어 날 찾아왔다. 난 걱정 말라고 그들을 돌려보냈고, 해당 선생에게 연락해 그들을 되찾아왔다. 그래서 내 지도학생은 유일하게 다섯명이다 (다른 사람은 다 두세명).

“선생님 지도학생이라고 다들 저희를 부러워해요”라는 그들의 말에서 보람을 느끼는 나, <nature>같은 유수 잡지에 논문을 싣겠다는 꿈은 점점 물건너가고 있지만, 학생들과의 관계 면에서는 내가 예전에 되고자 했던 선생의 모습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것 같다. 학생들과 더불어 노는 삶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그래도 잘리지 않을 정도의 연구는 계속해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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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5-11-10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paviana 2005-11-10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역시 뒷북이 무섭군요..아니야 재임용통과가 더 무서운걸까요? 갑자기 용기를 내시다니....어제 학생중 미녀가 있었을거에요.

물만두 2005-11-10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moonnight 2005-11-10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같은 교수님이 계셨다면 대학시절을 좀 더 즐겁게 보낼 수 있었을텐데 아쉬워요. 학생들이 부럽네요. ^^

날개 2005-11-10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학창시절엔 교수님이 참 어려웠었는데... (말도 잘 못붙였어요..^^;;)
마태님 같은 분이 계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sweetmagic 2005-11-10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 이제야 슬슬 잘난 거 인정하시겠다는 말씀 !!!
술 고픈 조교에게도 술 사주세요 !!!



ㅋㅋㅋ

BRINY 2005-11-10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지금도 대학원 교수님들 어렵습니다. 또 스스로 어렵게 만드시는 분도 한분 계시고..세미나할 때 웃는다고 자세가 안됐다고 야단맞았어요.

manheng 2005-11-10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네요... 저도 대학가면 교수님한테 술 한잔...꼭 ㅎㅎㅎ....

줄리 2005-11-11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제자들이 정말, 무지하게, 샘나게 부럽다구요!

가시장미 2005-11-11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생들이 술을 사달라고 말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선생이다
-> 나는 모든 선생님들께 술사달라고 졸라본 경험이 있으므로. 믿음이 안가는데? =_=ㅋ

꾸움 2005-11-11 0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너무도 오랜만에 뵙네요. 에구 ..
별일없으시죠? 반가운 맘에 짧은 인사 남깁니다. ^^

사마천 2005-11-11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올리는 글이나 출판하는 책을 쓰는 것도 일종의 의사소통 행위의 하나죠. 사람 사이에는 글이나 말만 오가는 것은 아닙니다. 따뜻한 마음도 오가야겠죠.

마태우스 2005-11-11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마천님/맞습니다. 알라딘은 참 따스하고 좋은 의사소통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선물이 오가는 걸 보면 알 수 있지요
꾸움님/어머나 이게 누굽니까. 정말 반갑습니다. 별일이 왜 없겠어요 지나치게 많아서 탈입니다
가시장미/흠, 그랬단 말이지. 그 자신감은 미모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줄리님/편입학의 기회는 열려 있습니다. 두드리세요^^
만헹님/그러지요^^ 환영입니다.
브리니님/아니 웃는다고 머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니, 유머에 목을 맨 저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다고밖에 말할 수가 없네요. 천사의 미소를 보고 화를 내는 선생이라, ㅡ음.
매직님/알겠습니다. 몸을 좀 만들구요
날개님/어머나 날개님. 제 스타일이세요!
문나이트님/사실 제가 여기 쓴것만큼 좋은 놈은 아닙니다. 좋은 면만 쓰니까 그렇지요^^
여울효주님/제 나이 또래 선생님들은 아마도 학생들과 가깝게 지내고픈 마음이 있을 거예요. 달려와서 인사하면 반갑게 맞아주지 않을까요
만두님/호호호
파비아나님/남자 넷이랑 마셨습니다.....^^
조선인님/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