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교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데, 선배 하나가 날 건드린다. 의대출신이 아니어서 갈 자리가 없었던 그분은 시종일관 나한테 “넌 MD잖아”라고 딴지를 걸었다. 2차를 끝내고 집에 가려다, 난 그와 길바닥에서 멱살잡이를 했다.
“MD가 뭐 그리 큰 잘못이야?”
선배의 옷에서 단추가 두개 떨어졌고, 그제서야 난 내가 실수한 걸 알았다. 다음날 장문의 편지를 써가지고 선배한테 찾아갔지만 선배는 마음을 풀지 않았고, 일이 잘 풀려 모 대학의 교수로 간 지금도 그와 난 서먹하다.
군대 시절, 술을 무지하게 먹은 날 난 같은 과 사람과 상을 엎어가면서 싸웠다. 왜 싸웠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일로 난 잠시 그와 서먹한 시절을 보내야 했다.
이 두건 모두 내 나이 서른이었고, 모두 술에 취해 있었다. 10대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던데, 시작은 알 수 없지만 내 질풍노도는 서른까지였다. 그 후부터 난 술을 먹고 싸움질을 해본 적이 없다. 싸우고 난 이후 견디기 힘든 뻘쭘함이 찾아오니 그 사람을 계속 볼 거라면 절대로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반성 덕분이겠고, 나이가 들면 철이 든다는 것도 그런 거겠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난 내가 싸움을 얼마나 잘하는지 모른다. 20대 때만 해도 합기도 초단의 경력답게 붕 날라서 발차기를 하는 게 내 특기였는데, 그때보다 몸이 두배로 불은 지금은 뛰어봤자 몇센티 못뜰 것이고, 송판 몇장을 깨던 주먹도 많이 무뎌졌으리라. 그러니까 내 실력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도 내가 싸움을 꺼리는 이유일지 모른다. 브루스 리 스토리를 케이블에서 잠시봤는데, 그에게는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말로 해도 될 것을 주먹으로 해결해 버릇을 하고, 그러다보니 싸움이 꼬이는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싸움은 백해무익이다. 자존심을 잠시만 버린다면 훨씬 안락할 수 있는데 왜 싸운단 말인가. 그것도 같이 지내는 사람과! 십대의 싸움과 달리 20대부터는 피를 보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으니. 자신의 애인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함부로 주먹을 쓸 일이 아니고, 술을 먹고 싸운 적이 있는 사람은 아예 술을 먹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인터라겐 사태와 알라디너들>을 쓰고 있던 날,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보니까 둘이서 싸운다. 같은 회사 사람으로 보이는 둘이서 말리는 사람 여덟과 엉켜 있었다. 말리는 사람이 있으면 대개 싸우려다 마는데, 둘은 의지가 제법 강해서 사람들을 뿌리치고 여러번 붙는다. 한명은 무술을 좀 한 듯 폼이 전성기 때 나 같다. 몇 대를 맞은 쪽은 안되겠다 싶었는지 웃통을 다 벗고 덤빈다. 그걸 잠시 보던 난 112에 전화를 했고, 3분 뒤 경찰차가 왔다. 웃통 벗은 남자의 진술로부터 난 그들이 말뚝박기를 하다가 싸움이 났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 서른살의 나처럼 그 역시 다음날 뼈에 사무치게 후회를 할테고, 그 상사와 화해를 하겠지만, 어릴 적과 달리 마음 속의 앙금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제발 그만 좀 하라는 여직원의 절규를 그는 왜 무시했을까. 평소 더한 모욕도 받아넘길 그가 왜 사소한 막말을 참지 못했을까. 술은 즐거우라고 먹는 것이며, 술을 빌미로 평소 티꺼웠던 감정을 발산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내 기준으로 보건대 그가 서른이 안됐다면 깊이 반성할 일이지만, 서른을 넘었다면 앞으로는 좋은 사람들과만 술을 마시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