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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
남인숙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쓴 스티븐 코비가 새 책을 내놨다. ‘7’을 ‘8’로 바꿨다. 이러다간 몇 년쯤 후, <아홉가지 습관>이란 책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처세.경영 부문에서 좀 팔린다 싶은 책들은 대개가 이렇다. ‘2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50가지’는 ‘30대’ ‘40대’로 새끼를 쳤고,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는 2권에 이어 <부자아빠의 투자 가이드>, <부자아빠의 미래설계>를 낳았다. 했던 소리를 또하고 또해가며 속편을 만드는 걸 보면, 돈을 벌고픈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 지들이 돈을 버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이렇듯 처세.경영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내가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라는 처세책을 읽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이유는 말할 수 없지만 난 불순한 의도로 그 책을 읽었고, 읽으면서 처세 책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재확인했다. 잘 팔렸고, 리뷰도 찬사 일색인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게 20대 여성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으리란 걸 부인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저자가 무슨 인생상담원도 아닌 바, 주변에 귀감이 될만한 사례들이 어쩜 그렇게 많을까?
“A는 맨날 불평만 하던 얘였다. 그러다 친구로부터 그렇게 살지 말란 말을 들었다. A는 지금 대기업 임원이고, 겁나게 돈많은 남자와 결혼까지 했다”
“B는 공부보다 미모 가꾸는 데 열심이었다. B는 결국 결혼도 잘하고, 능력있는 사원이 되었다”
이런 사례가 숱하게 나오는데, 이들이 다 실존인물인지 솔직히 궁금하다. 실존인물이라 해도, 어쩜 한가지 문제를 고치니까 몇 년 후 여봐란 듯이 다 성공하는지, 그것도 의문이다. 심지어 이런 사례도 나온다. 여자가 T와 약혼을 했는데, T가 만나는 사람들이 다 비리비리한 사람들, 여자는 T에게 “너보다 나은 사람과 어울리지 않으면 도망가겠다”고 한다. T는 친구들을 끊고 나은 사람들을 사귀었고, 결국 좋은 회사에서 고속승진을 하고 있다. 이거이거, 믿어야 하나? 그 회사의 사장이 알고보니 여자의 아버지였다, 이런 거면 몰라도 만나는 친구를 바꿨다고 이리 될 수가 있는 걸까? 다음 사례는 정말 기절하겠다.
“Y는...성형수술을 받고...미녀의 특권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Y는 미인이 된 후 어떤 일에서든 전보다 수월해졌다. 1년 후 그녀는 원하던 시험에 붙어 원하던 일자리도 얻게 되었다”
이것들이 다 실화란 말야? 그 원하던 시험이 혹시 운전면허시험은 아닐까?
저자는 드라마를 비판하면서 “여자는 적당히 시집 잘가서 잘 사는 게 최고”라는 가치관을 전파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단다. 그.런.데. 저자가 드는 사례의 주인공들은 반드시 조건 좋은 남자와 결혼하는 걸로 끝난다.
“L은 서른세살 노처녀라는 치명적인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조건을 가진 남편과 결혼했다(40쪽)”
“S는 연봉까지 대폭 올려서 이직을 했다....결혼도 손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게 할 사람과 했다(47쪽)”
왜 이런 말을 할까. 저자는 직장에서의 성공 뿐 아니라, 좋은 조건의 남자와 결혼하는 것도 성공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한국에서 결혼은 여자가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이 나은 남자와 하는 것이 균형에 맞다(216쪽)”
그러니 저자가 드는 사례의 결말이 시집 잘 간 걸로 귀결되는 것.
책이란 무엇일까. 실제가 그럴지라도, 조건 좋은 사람과 결혼하는 게 대부분 사람들의 꿈일지라도, 그게 아니라고, 사랑이 중요하다고 한번쯤 외쳐주는 게 바로 책이 아닐까. 굳이 이 책이 아니라해도 주위에서, 그리고 부모님들이 다 조건 좋은 사람과 결혼하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떠드는 상황에서, 이런 책을 읽을 필요가 무엇인지 난 모르겠다. 저자는 말한다. “실용서, 처세서 등이 재미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제대로 된 실용서를 읽어 본다면 또다른 책읽기의 재미를 알게 될 것이다(134쪽)”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이 책으로 인해 성공의 길에 접어들었는지 난 모르겠다. 혹시 심리적인 위안만 받을 뿐, 실제의 성공과는 무관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런지. 이 책을 읽고난 뒤 처세책에 대한 혐오가 더 심해진 나는 앞으로도 계속 처세책을 외면하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