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로에 가짜 거북이를 놔뒀더니 차들이 피해서 가고, 가짜 뱀을 놓았더니 밟고 가더라는 실험결과가 있었다 (사고나게 그런 실험은 왜하는지). 뱀꿈을 꾸면 금전복이 있다고들 하고, 태몽 중에서도 상급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의 뱀에 대해서는 사람들 대부분이 혐오감을 드러낸다. 털 있는 동물만 좋아하는 나 역시 뱀을 무지하게 싫어한다. 뱀의 미끈한 껍질, 날름거리는 혀, 간사하게 생긴 얼굴,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다. 천만다행으로 야외에서 뱀을 만나본 적이 한번도 없지만, 기생충을 전공하면서 어쩔 수 없이 뱀을 접하게 되었다. 뱀에는 스파르가눔과 서울주걱흡충이라는 기생충이 들어 있고, 최근에는 또다른 신종 기생충이 발견되는 등 기생충학 발전에 나름대로 이바지하고 있다.
조교 시절의 뱀 실습은 내겐 언제나 고역이었다. 실습방 하나당 4마리씩, 방이 총 10개니 40마리의 뱀을 잡아야 했다. 기차에서 파는 계란 주머니와 비슷하게 생긴 끈주머니에 들어있는 뱀떼를 들고다니며 땅꾼이 쓰는 집게로 뱀 머리를 붙들었다. 그리고는 학생 하나에게 머리를 가위로 자르게 한 뒤 껍질을 벗겨내고 스파르가눔을 고르게 했다. 그때만 해도 내가 좀 짓궂었기에 싫다는 여학생에게 머리를 자르라고 하다가 그 학생을 울린 적도 있다. 아무튼 뱀의 머리는 잘린 뒤에도 한참을 움직여, 나보다 더 짓궂은 애들은 머리끼리 싸움을 붙이기도 했다. 껍질을 벗길 때 선배 조교는, 세상에, 맨손으로 그 일을 했지만, 난 조교를 마칠 때까지 한번도 뱀을 만져본 적은 없다. 우리가 쓰는 뱀은 색깔이 얼룩달룩한 꽃뱀, 하지만 호랑나비나 표범은 예뻐도 꽃뱀은 어떤 치장을 하건 징그럽기 그지없었다.
그 실습을 위해 실습 2주 전쯤 땅꾼에게 부탁해서 뱀을 잡아달라고 하는 게 내 임무였다. 뱀이 배달되면 잡을 때까지 콜드룸이라고 방 전체가 냉장고 온도로 유지되는 곳에 넣어 두는데, 그 경우 뱀이 겨울잠을 자는 것과 비슷한 여건이 되니 따로 먹이를 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실제의 뱀은 겨울잠을 자기 전에 영양을 충분히 섭취하는지라, 무턱대고 냉장고에 넣고 굶긴 뱀들은 나중에 잡을 때 보면 비실비실하기 짝이 없었고, 쥐 한 마리도 잡아먹지 못하는 정도가 되었다. 뱀 가격은 생각만큼 비싸지는 않아 대략 1만원 내외였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뱀 잡는 게 불법화되면서 2만원 이상으로 값이 올랐다. 그렇게 골라낸 스파르가눔을 미리 준비해둔 쥐에게 먹인 후 쓸 일이 있을 때까지 보관해 두는데, 전에도 얘기했지만 그 기생충을 먹인 쥐들은 하나같이 기골이 장대해졌고, 스파르가눔에서 성장호르몬 비슷한 물질이 분비된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래서였다. 애들 실습 말고도 우리는 실험을 위해 뻑하면 뱀을 시켰는데, 내가 들어오기 전에는 뱀 몇 마리가 도망가 실험실 전체가 공포에 떤 적도 있다고 한다.
외국 영화사들이 우리나라에서 직배를 할 때 우리 영화인들은 치열한 반대운동을 했었다. 그 반대가 옳으냐 그르냐에 대해 얘기할 생각은 없고, 단지 그때 반대측에서 코리아 극장 등 직배영화를 상영하는 곳에 뱀을 풀어놓았었다는 건 기억이 난다. 나 역시 뱀을 미워하긴 하지만 가끔 뱀이 불쌍할 때가 있다. 흉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고, 또한 정력제로 오인되어(난 오인이라고 생각한다) 잡아먹히기 일쑤니까. 뱀은 사람을 무는 동물이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만물의 영장인 사람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개나 고양이처럼 인간에게서 사육되면서 재롱을 피우는 게 뱀의 꿈은 아닐까. 몇몇 독사를 제외한다면 냉정히 따져볼 때 뱀이 그다지 나쁜 짓을 하는 동물은 아니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뱀을 영물이라고 불러 왔으니, 너무 뱀을 탄압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엊그제부터 읽던 산문집에서 ‘뱀들이 겨울잠을 자는 걸 발견하고 다 때려죽였다’는 구절을 보니까 갑자기 뱀이 불쌍해져서 써본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