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7월 28일(목)
마신 양: 보드카--> 소주, 맥주--> ? , 결국 맛이 갔다
친구의 애인 중 나를 좋게 본 여자가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다.
친구: 얘(나를 지칭한다) 아직 애인 없거든? 소개 좀 시켜주라.
애인: 알았어. 내가 아는 선배가 하나 있는데, 서른다섯이야.
하지만 내가 우연치않게 두 번을 웃겼더니 갑자기 태도가 달라진다.
애인: 저기요, 제가 스물일곱으로 시켜 드릴께요.
말만 그런 게 아니라 날까지 잡았다. 목요일로. 물론 난 별 생각이 없었다. 사심(잘보여서 어찌어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게 내 특기잖는가.
나: 제가 예쁘게 하고 가야 해요?
애인: 아니어요. 마음 편히 오세요.
나: 머리 안잘라도 되죠?
애인: 그럼요.
심지어 면도까지 안하고 갔다. 그런데 애인과 함께 나온 여자를 보는 순간, 기절 직전까지 갔다. 내가 보통 미녀라고 하는 기준을 훨씬 넘어선, 과장 없이 상위 0.1% 안에 들만한 대단하고도 엄청난 미녀가 밝게 웃고 있었기 때문. 그날 하루, 난 그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렇다고 내가 없던 사심이 생겼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그런 대단한 미녀는 경배의 대상이지, 결코 작업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게 내 신념이니까. 예컨대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만인이 보고 감탄할 뿐, ‘저걸 내가 가져야겠다’는 사람은 없다. 그건 피라미드가 비싸기 때문이지만, 한편으로는 인류의 위대함에 경배하는 마음이 생길 뿐 소유욕 같은 게 생기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대단한 미녀 역시 넋을 놓고 바라보는 것은 가능해도, 음흉한 마음 같은 걸 전혀 품지 못하게 했다.
나중에 그녀가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겠다고 했을 때, 난 이렇게 말했다.
“아니어요. 어차피 전화 걸지도 못할 건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그녀가 전화를 했을 때-내가 전화 안하면 너는 안할 것 같아서 했다, 어제 고스톱 칠 때 너무 돈을 많이 따서 미안하다, 다음에 고스톱 또 치자-난 그녀의 번호를 살짝 저장했고, ‘지상최고미녀’라는 이름을 붙였다 (근데 그녀의 진짜 이름이 뭐였더라?) 그렇다고 전화를 하거나 그럴 마음은 전혀 없고, 다시 그녀를 보게 될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미녀에 대한 나의 지나친 경배는 사람이란 분수에 맞는 짝을 만나야 한다는 평소의 생각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상처받지 않으려는 보호본능의 산물이기도 하다. 나와 띠동갑인 미녀와 헤어졌던 올해, 석달이 넘도록 난 그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술을 마셨고-술은 원래 마시지만-책을 읽었다. 그럼에도 사이사이 찾아오는 우울증은 날 힘들게 했으며, 지하철을 타고 당산철교를 건널 때는 지하철이 강물로 추락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기쁜 일에도 기뻐하지 않았고, 큰 사건에도 시큰둥했다. 아마도 그때 난 내 인생에 더 이상 사랑이 없을 것임을 맹세하면서 마음에다 보호벽을 쳤을 것이다. 참고로 말하면 올해 헤어진 여자에 비해 엊그제 만난 미녀는 스무배 쯤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