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레르기성 비염을 앓고 난 뒤부터 내 코는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되었다. 미적인 기능만 하는 내 코는 포르말린과 식염수를 구별 못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인데, 그래도 냄새가 아주 심한 경우에는 감지가 가능하다.
엄마가 싸준 밥에서 냄새가 났다. 내 코가 이상하다고 느꼈으니 쉰 게 틀림없다. 하지만 아침에 싸준 밥인데 벌써 쉬었을라고? 음식을 쉬게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세시간 넘었지? 그럼 쉬었을 확률이 높아”
“그래도 먹으면 안될까. 완전히 쉬지는 않았을 거 아냐”
“냄새 잘 맡는 애한테 물어봐. 조금만 이상해도 먹으면 안돼!”
킁킁거리며 다시금 냄새를 맡는다. 역시 쉰 게 틀림없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여기서 햇반을 사러가야 했다. 하지만 나란 놈은 왜 이리 무심한지, 다음과 같은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탁자에 앉았다.
“알콜도 이기지 못하는 내 장인데, 쉰 밥 따위가 뭐 대수냐?”
엄마가 싸준 맛있는 반찬을 늘어놓고 밥을 먹었다. 젠장, 맛도 이상했다. 참고 먹었다. 3분의 1 쯤 먹었을 때, 갑자기 위험한 생각이 들었다.
-내일 커다란 술시합이 있는데, 거기 참가 못하면 어쩌나.
-모레, 남녀 2대 2(여자는 둘다 20대)의 환상적인 술시합이 있는데, 거기 못가면 안된다.
-금요일에는 어머니랑 할머니 모시고 놀러가기로 했는데, 그 맛있는 회를 못먹다니 말이 안된다.
-토요일에는 써클 선배들이랑 같이 강원도에 간다. 젊디젊은 여학생들 틈에서 밤새 술을 마셔야 하는데, 술은 못마시고 화장실에 들락거리면 되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자 난 더 이상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난 찬장을 뒤져 전에 사놓은 컵라면을 꺼냈고, 거기다 끓는 물을 부었다. 라면은 분명 밥만 못했지만, 반찬만 먹는 것보다야 훨씬 나았다. 생각해보면 앞으로 있을 술자리가 나를 살린 거였다. 그게 아니었다면 난 꾸역꾸역 밥을 다 먹었겠지. 술이라는 건 늘 해로운 것만은 아니며, 이렇게 사람을 구해내기도 한다. 슬그머니 걱정이 된다. 3분의 1이나 먹었는데 별일 없을까?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왜 화장실에 가고 싶어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