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때, 시험 기간엔 늘 일찍 가서 자리를 맡았다. 하지만 그것과 열심히 하는 건 별개의 일, 공부하기도 싫고 집에도 가고 싶어서 연방 시계를 들여다보곤 했다. 정 견디기 어려울 때마다 난 도서관 밖에 줄을 서있는 사람들을 봤다. ‘저들은 내가 가기만을 바라고 있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늦게까지 버텼다. 공부를 해야 되니까 하는 게 아니라, 어렵게 얻은 자리니까 공부를 한다니 참 희한한 심보다.


그게 뭐 어떠냐는 분들이 있을지 몰라 내 실체를 좀 더 드러낸다. 1984년, 비가 마구 쏟아져 물난리가 났을 때 난 좀 더 비가 와서 서울이 물에 잠겼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비가 그쳤을 때 난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연희 입체교차로 부근에 맛있는 냉면집이 있다(이름이 청송인가 그렇다). 뭐, 대단히 맛있다기보다 사람이 워낙 많아서, 먹으려면 오래 줄을 서야 하는 집이라서 맛있어 보이는 것일게다. 어젯밤, 오분여를 줄을 선 끝에 냉면집에 들어갔고, 물냉면 두 개를 시켰다. 한 젓갈을 뜨려는데 주방에서 이런 말이 들린다.

“육수가 떨어졌어요. 이제 비냉밖에 안돼요”

물냉면이 안된다는데 내가 왜 기쁜 걸까. 다른 테이블에 앉은 이들이 물냉면이 없다는 종업원의 말에 실망을 금치 못하면서 할 수 없이 비냉을 시키는 광경을 바라보며 난 뿌듯해했다.

“저기 좀 봐요. 비냉 시키네! 저기도, 저기도!”

그러면서 이런 말도 했다.

“여름엔 역시 물냉면이죠! 음하핫!”


학교 근처에 연건삼계탕이란 유명한 집이 있었다. 먹고 있으면 다음에 온 사람들이 테이블 옆에 서서 먹는 광경을 째려보는 그런 곳이다. 어느날 저녁 닭을 먹고 있는데 주방에서 이런 소리가 들린다. “닭 떨어졌어요”

그 말 역시 잠시나마 날 행복하게 해줬다. 난 그 이후에 온 사람들이 할수없이 닭죽을 시키고 혹은 되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해했다. 심지어 이런 말도 했다.

“여름엔 역시 삼계탕이야!”


남의 불행에 기뻐하는 나, 좀 문제가 있다. 착한 척을 하는 내 몸 안에는 커다란 악마가 한 마리 살고 있었던 거다. 앞으로의 인생은 그 악마와의 싸움이 되었으면, 그리고 그 싸움이 성공적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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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7-24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마라고 하기에는.. 많이 귀여운 -_-;;;; 마태우스님같은 악마인가 봅니다. 하하

비연 2005-07-24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건삼계탕...맛있죠^^ ㅋㅋ

이매지 2005-07-24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면 제 마음 속에도 악마가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 _ ㅜㅋㅋㅋ

세실 2005-07-24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 너무나도 솔직한 마태님~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고 있을거란 생각을 합니다.

moonnight 2005-07-24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그 정도는 애교 같군요. ^^ 그런데 전 비냉이 더 좋아요. (엉뚱한 댓글 -_-;)

클리오 2005-07-24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정도가지고 악마라고 하시기엔, 너무 약해요... ^^

날개 2005-07-24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러는데요, 뭘... 흐흐~

바람돌이 2005-07-25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다 그런 것 아닌가요? 그럼 모든 인간이 다 악마가 되는건가? ^^; 저는 내가 하는 나쁜 생각이나 나쁜 짓은 "남들도 다 이래"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어서리 절대 고민하지 않는 버릇이 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