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괴담 1은 귀신 시리즈로는 보기드물게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무섭기도 하고, 성희롱과 폭력 등 여고에서 일어나는 문제점도 짚어주는 멋진 영화. 약간 후진 극장에서, 보조의자가 잔뜩 놓이고 개봉 후 20분이 지날 때까지 관객이 계속 들어오는, 그리고 자리 싸움을 하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영화를 봤지만 도무지 영화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속편을 안본 것은 그게 전편의 인기에 편승해 돈을 벌어보자는 안일함의 소산이라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비디오로 그 영화를 보고나서 난 “전편보다 속편이 훌륭한 영화”에 서슴없이 여고괴담 2를 집어넣는다. 전편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에서, 전혀 다른 줄거리로 시작한 그 영화는 귀신이 거의 나오지 않으면서도 스산한 공포감을 내게 안겨 주었다.
이어서 나온 3편 ‘여우계단’을 엊그제 TV로 봤다. 한마디로 “뭐 이런 영화가 다 있어?”였다. 시선을 잡아끄는 힘도 없는데다가 단점만 잔뜩 보이는 전형적인 3류영화, 샤워기에서 피가 나온다든지, 등 뒤에서 귀신이 왔다갔다 하는 등 온갖 상투적인 장면들이 날 짜증나게 했다.

박한별과 그 친구(이름이 진성이다)은 일류 발레리나를 꿈꾼다. 하지만 늘 앞서가는 건 박한별, 학교 대표로 콩쿨에 나갈 사람은 누가봐도 박한별이었다. 그게 질투가 난 진성은 한별에게 삐지고, 왜 그러냐고 매달리는 한별을 진성은 매몰차게 뿌리친다. 계단에서 굴러 불구가 된 한별은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뭐, 그럴 수 있다고 치자. 문제는 그 다음, 진성은 한별의 자리를 차지하고, 콩쿨에 나가서 대상을 탄다. 친구를-고의는 아니었지만-죽이고 나서도 계속 발레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여간 독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 초반부의 진성은 전혀 독한 면이 있어보이지 않았다. 기숙사 창문을 넘어들어온 박한별이 귀신인 줄 알고 침대밑에 숨어버리는 애였다. 그러던 애가 어떻게 귀신의 협박과 애들의 따돌림을 견뎌가면서 계속 발레를 할 수 있을까? 이야기가 다소의 설득력이나마 지니려면 그녀가 어린 시절 시베리아에 버려져 감자를 캐먹으면서 살아났다든지, 시베리아 호랑이 등에 업혀서 자랐다든지 뭐 이딴 상황을 설정해야 했지 않을까?
발레 선생도 그렇다. 그녀는 진성을 무지 낮게 평가했지만, 진성은 결국 콩쿨에 대표로 나가서 우승을 한다. 그렇다면 발레선생이 박한별의 사고 직전 “넌 안돼!”라고 면박을 준 건 사람을 잘못 본 거다. 그렇다 하더라도 진성의 콩쿨 대상은 좀 뜬금없었다. 애초에 진성이 박한별에 최소한 근접한 실력을 갖춘 사람으로 그렸다면 조금 더 설득력이 있었을텐데.
스토리 자체가 말이 안되는데다 귀신이 지나치게 많이 나오는 것도 이 영화의 단점이다. 계단에서 발목을 붙잡고, 창문을 넘어들어오고, 거의 3초에 한번씩 귀신이 나온다. 좌우지간 등 뒤에는 항상 귀신이 있다. 그러니까 관객은 하나도 안무섭고 영화 주인공만 무서워하는 괴리 현상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실오라기 하나 드러내지 않은 나체보다는 가릴 곳은 가린 게 더 야하듯이, 공포영화는 귀신이 많이 나온다고 무서운 건 아니다.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음산한 분위기, 그게 차라리 더 무섭다. 그리고 귀신이 자기를 노리는 걸 알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던가 할 일이지, 왜 음침하고 어두운 곳만 골라서 다니는 걸까?
작품성이 뛰어난 2편이 관객동원에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 영화가 제법 많은 관객을 모은 것으로 미루어, 제작사에서는 이런 생각을 했음직하다. “공포영화는 역시 3류가 최고야. 작품성이 밥 먹여줘?” 보진 않았지만 이번에 나온 <여고괴담 4;목소리>는 그래서 3류성을 더더욱 강조한 대단한 영화인 것 같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3.7의 전무후무한-구본승이 나온 <마법의 성> 이래 그런 평점은 처음이다-별점을 줬지만, 누가 아는가. 관객은 많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