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영화의 효시라고 할만한 <지존무상>은 알란탐과 유덕화의 열연에 치밀한 시나리오, 그리고 허를 찌르는 반전이 잘 어우러진 수작이다. 그 이후 수많은 도박영화가 나왔지만, <지존무상>을 능가할 영화는 없었던 것 같다. 오늘 케이블에서 하기에 다시금 봤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우정이다. 알란탐과 유덕화의 우정은 무지하게 헌신적이라, 자기가 가진 것을 몽땅 바쳐도 아깝지 않을 정도다. 그게 좀 지나쳐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의 진한 우정을 이 둘은 보여준다. 유덕화는 알란탐을 구하려고 칼날을 손으로 막고, 그 바람에 신경을 다쳐 더 이상 도박을 하지 못한 채 폐인으로 살게 된다. 그 와중에 알란탐의 약혼녀 미스 퉁을 구하기 위해 독약이 든 술을 마시는데-나쁜놈이 독약이 안든 잔을 마시면 미스 퉁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이 장면이 아주 멋지다. 자신이 독약을 먹었다는 걸 숨기기 위해 술잔을 요리조리 섞은 뒤 한 잔을 골라서 마시고, 그게 독약인 걸 알고 나서도 아닌 척 연기를 하며 결국 미스퉁을 구해낸다. 미스 퉁에게 “놈들이 보고 있어요. 그러니 울지 마세요”라고 하는 유덕화가 어찌나 멋있던지.


유덕화의 죽음이 알란 탐에게 전해지는 장면 또한 인상적이다. 젊은 시절 둘은 운명을 담는다는 동전을 서로 바꿔가졌었는데, 그게 소포로 전해진 것. 흔들리는 동전을 바라보던 알란탐의 표정은 놀라움 그것이었다. 한동안 도박을 끊었던 알란 탐은 복수를 위해 대형 도박을 기획하고, 안된다면서 돈을 못빌려준다는 장인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부자들은 잊고 사는 게 있죠. 그게 바로 의리라는 겁니다”


미스퉁의 도움으로 알란탐은 도박판에 나서고, 도박영화가 다 그렇듯 한판으로 승부를 가리게 된다. 거기서 알란탐이 구사한 기가 막힌 트릭은 영화의 하이라이트. 알란탐의 패가 나쁜 거라는 걸 알게 된 미스퉁은 다리를 다섯 번 바꾸고, 그걸 본 일본인 보스는 자기 아들의 팔과 다리를 판돈으로 내건다. 하지만 최후에 뒤집힌 카드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마지막 장면. 병실을 찾아온 친구가 알란탐에게 묻는다.

“그녀에게 말할 건가?”

알란탐은 평생 비밀로 간직하겠다고 말하고, 우연히 그 말을 엿들은 미스 퉁은 왔던 길을 돌아서 나가 버린다. 왜 알란탐은 그걸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을까? 사랑보다 우정이 더 중요해서? 하지만 유덕화는 이미 죽었는데? 게다가 돈을 빌려준 것도, 채권과 부동산을 제공해 복수를 결정적으로 도운 게 바로 미스 퉁인데? 알란탐은 그게 죽은 친구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산 사람은 산 사람끼리 살아야 하는 법, 난 그 장면이 그때나 지금이나 이해가 가지 않았다.


16년이 지난 뒤 봐도 재미있는 영화는 그리 흔한 게 아니다. 그런 면에서 지존무상은 아주 훌륭한 영화였다. 적어도 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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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죠 2005-07-04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어쩌죠. 저는 저 영화 속의 남자들보다도, 소파에 길게 드러누워서 케이블 영화를 보며 옛날 추억들을 생각하는 마태우스님이 더 멋진걸요 :)

부자들은 잊고 사는 게 있죠. 그게 바로 추억이라는 거에요.


코코죠 2005-07-04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으로 제 마음 전달한 거 아시죠? 오홍홍

마태우스 2005-07-04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오즈마님, 언제 이런 멋진 이미지로 변신하셨어요?? 글구 저 영화볼 때 소파에 누워서 보는 게 아니라요, 그냥 이부자리-요-에 누워서 본답니다. 오즈마님, 반갑구요, 님 마음 방금 접수했습니다^^

파란여우 2005-07-04 0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덕화, 알란 탐을 다시 볼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이게 다 님 덕분이라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워요.^^
역시, 님하고 저는 같은 세대 맞군요.히히^^*

줄리 2005-07-04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저두 같은 세대인걸요! 유덕화, 알란탐의 브로마이드를 제 방에 걸어놓고 매일 보던 때도 있었는걸요.히히.

비로그인 2005-07-04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덕화는 요새도 나오던데, 알란탐은 뭐하시나???

딸기 2005-07-04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콩 누아르 영화(라기보다는 영화 자체)와 담쌓고 사는 사람입니다만,
잊지 못할 영화가 있다면 바로 지존무상이지요.
유덕화 ㅠ.ㅠ 어쩜 아직도 그렇게 멋진지...
저 영화에서는 진옥련도 이뻤지요. 관지림은 나중에 동방불패에 나온 걸 봤었는데.
마태님 쏙쏙 끄집어내시는 '코드'가 저하고 딱 맞아요.
같이 늙어가는 처지임이 확실하군요. ^^

부리 2005-07-04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님/지존무상이 상영될 당시면 제가 일곱살 때군요. 나중에 비디오로 보긴 했는데 뭔 말인지 당췌 이해가... 정리하자면 딸기님-파란여우님-마태가 한 세대고, 줄리님도 같은 세대?? 그 한참 후에 제가 있는거죠
별사탕님/알란탐, 저랑도 연락 안한지 한참 되었지요... 잘 있겠죠 뭐^^
줄리님/키야... 줄리님한테 그런 면이 있었군요!!
여우님/글쿠나, 여우님은 유덕화같은 사람을 좋아하시는구나...부리도 좋아해 주세요

부리 2005-07-04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님/그 여자 이름이 진옥련이군요. 처음 들어보구요, 그 이후에도 본 기억이 없네요. 관지림이야 워낙 유명하지만...

줄리 2005-07-04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 심지어 교과서도 주윤발, 왕조현, 유덕화 얼굴로 도배를 하고 다녔는걸요. 저 그런면 많아요. 그런데 그런 면이 뭔가요?^^

마냐 2005-07-04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당시가 일곱살이라 하시다니....으하하. 부리야, 차세대 주자로 팍팍 밀어줄께.

클리오 2005-07-04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가 저보다 더 어리군요.. 저는 저 영화 고등학교 때 본 것 같은데... ^^ 근데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안납니다. 흐흐...

마태우스 2005-07-04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줄리님/부리 말은... 그러니까 스타에게 열광하는 그런 면을 말하는 거겠지요. 그때 안그런 사람이 누가 있었겠냐만은..사실 저도 강수연에게 빠져서 정신을 못차렸다는...
클리오님/고교생 관람불가 아니었나요? 하여간 부리 좀 잘 이끌어 주세요
마냐님/차세대 주자가 부리가 되서는 알라딘의 장래가 어둡다고 봅니다. ^^

인터라겐 2005-07-04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케이블에서 저거 해주면 넋을 놓고 보지요.. 유덕화는 왜 늙지도 않을까요?
주윤발이 입에 성냥개비 물고 인기를 얻었다면 유덕화는 모든게 다 매력 덩어리였지요...ㅎㅎ 전 유덕화 천장지구에서 완전히 마음을... 저때가 제가 고등학교때 같은데요...

클리오 2005-07-04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인터라겐 님이 고등학생 때면 제가 중학생 때였을까요.. 기억이 가물... --;; 그리고 지난번 장쯔이랑 나오는 영웅에서는 너무 늙고 추한 역할이여서 슬펐단 말여요... 흑흑...

마태우스 2005-07-05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라겐님/유덕화 천장지구 정말 감동적이었지요. 속편이 계속 나와서 김이 샜지만 오천련과의 아름다운 사랑은 제 가슴을 사로잡았답니다
클리오님/님의 젊음이 부럽습니다. 유덕화에 대한 추억이 없으면 어떱니까....

soyo12 2005-07-16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말하면 저 저 마지막 하일라이트는 이해 못합니다.
무슨 뜻인가요? ^.~

marine 2005-08-02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 장쯔이랑 나온 영화 연인 말씀하는 거죠? 그래도 전 너무 멋지던데... 앤디는 여전히 늙지 않는다에 전 한 표 던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