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 헤리엇의 행복을 전하는 개 이야기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3년 9월
평점 :
절판


 

[벤지 생각나게 한다고 어이없어 마시고요, 주제넘지만 벤지와의 즐거운 추억을 간직하시라고 보내드립니다. 마태님, 기운 내세요]

벤지를 보내고 난 뒤 5일째 되는 날, 한 알라딘 분께서 보내주신 책 <수의사 헤리엇의 행복을 전하는 개 이야기>에 동봉된 메시지다. 눈물이 어느 정도 잦아들고 있던 그날, 책을 보자마자 난 문을 잠그고 펑펑 울어버렸다. 이 책을 제대로 볼 수 있었던 것은 책을 받은 지 닷새가 지나서였다.


아들같은 개를 잃고 상실감에 빠진 사람에게 개 이야기를 담은 책을 보내는 건 그분 말씀대로 ‘어이없’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집에 있으면 벤지 생각이 난다고 밖에서 술만 마시는 식의 ‘회피’는 벤지를 제대로 보내는 게 아니다. 어렵사리 책을 읽으며 난 벤지와의 추억을 다시금 떠올렸고, 그럼으로써 벤지를-어느 정도는-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개들은 놀기를 좋아하고,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오락이나 취미를 갖고있다(89쪽): 저자는 두 마리를 함께 키우는 게 좋다고 하며, 그게 안되면 주인이 놀아줘야 한다고 말한다. 나 자신을 반성해 본다. 술만 마시느라 벤지로 하여금 소파 위에서 하루종일 나만 기다리게 만들었던 나는 개를 기를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벤지에게 친구를 만들어줄 생각을 안한 것은 아니었다. 벤지가 열 살이 되었을 때, 우리 가족은 모두 결혼을 해 집을 나갔고, 아버님과 어머님은 병원에 계셨다. 혼자 있는 벤지가 안스러워 미니핀 한 마리를 23만원에 샀다. 하지만 이미 사람에게 길들여져버린 벤지는 성질 고약한 미니핀이 괴로울 뿐이었다. 내가 집에 왔을 때면 벤지는 어린 미니핀이 접근 못하는 소파 위에서 꼬리를 치고 있었다. 결국 그 미니핀은 다른 애한테 넘겨졌고, 그 뒤 6개월을 살다가 죽었다. 막대사탕의 막대를 먹은 것이 원인이었는데, 뒤늦게 그 소식을 들은 나는 혼자 술상을 차리고 술을 마시며 그를 추모했다.

-저자의 말이다. “개와 할 수 있는 놀이는 놀랄만큼 많다. 줄다리기, 공을 던져주고 다시 가져오게 하기, 숨바꼭질까지 할 수 있다(같은 쪽)”

내가 숨어 있으면 벤지는 당황해서 날 찾아다녔다. 이방저방을 오가면서 초조하게 다니는 벤지를 보면서 난 마냥 즐거워했다. 벤지가 날 발견하면 다가와 꼬리를 쳤고, 끝내 날 못찾으면 내가 몰래 벤지 뒤로 다가가 녀석을 불렀다. 날 보고 반가워하는 녀석의 모습, 하지만 난 나를 찾는 동안 벤지가 심리적 고통을 겪을까봐 숨바꼭질 놀이를 자주 하지 않았다.  자주 할 걸.

-책에는 다치거나 병이 든 개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러고보면 나와 같이 지낸 17년 동안, 벤지는 감기에 몇 번 걸린 것치고는 아주 건강하게 내 곁에 있어 주었다. 그게 너무나도 고맙다.


시간이 열흘 남짓 지난 지금은 눈물 없이 벤지 얘기를 할 수가 있게 되었다. 하지만 가축병원 수의사에게 넘겨지던 순간 당황해하던 벤지의 모습은 지금도 눈앞에 선하고, 이따금씩 날 눈물짓게 한다. 그 광경을 잊으려면 좀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 내 마음을 헤아려 책 두권을 보내주신 그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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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2005-06-23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조용히 그분과 벤지와 마태님을 위해 추천을...

노부후사 2005-06-23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정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stella.K 2005-06-23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누군지 모르지만 그 분 참 좋으신 분이네요. 마태님은 복도 많으셔요.^^ 사실 벤지가 죽었다는 소식 들었을 때 마태님 생각 안 한거 아닌데, 저는 저런 생각 못했거든요. 대신 우리 똘똘이라도 드릴까? 하는 생각은 했는데...원하시면 드릴게요.
저 책 시리즈로 나온 거 아시죠? 저는 양을 돌보는 헤리엇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책들 잔잔하고 따뜻한 고급 단편 읽는 것 같아요. 제가 유럽 저자들을 조금 좋아하걸랑요.^^

돌바람 2005-06-23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추천을!

로드무비 2005-06-23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분 저도 참 고맙네요.
전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요!

짱구아빠 2005-06-23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주변에는 마음 따신 분들이 정말 많네요.... 책을 통해 슬픔을 다독거려주시는 분도 계시고..마태님은 참 행복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moonnight 2005-06-23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좋은 사람들은 마음으로 통하는 거로군요. 잔잔하고 감동적인 리뷰 잘 읽었습니다. 벤지와의 추억이 있으니, 그리고 이렇게 좋은 친구분을 두셨으니 마태우스님은 행복한 분이십니다. ^^

진/우맘 2005-06-23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만큼 마태님이 주변지인 모두에게 따뜻한 벗이니까요....

인터라겐 2005-06-23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년전 수의사 헤리엇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은적이 있어요.. 동물이던 사람이던.. 사랑을 받아야 행복한건 당연한거겠죠... 사랑받은 벤지는 아마도 영원히 마태님을 못잊을꺼예요...

panda78 2005-06-23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분인지 알 것 같기도 하고.. 책도 따뜻하고 좋지만, 책을 보내주신 분의 마음이 더 따스하고 좋네요. 좀 더 시간이 지난 다음에 마태님께 벤지 이야기 많이 많이 듣고 싶어요. 저도 추천하고 갑니다.

마태우스 2005-06-24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아시면 좀 가르쳐 주세요! 은혜 갚아야 하는데... 나중에 벤지 얘기 해드릴께요...
인터라겐님/네........ 감사합니다
진우맘님/따뜻한 벗 중 한분인 진우맘님, 요즘 애정이 식은 것 같은데요^^
문나이트님/네, 문나이트님 알게 된 것도 행복의 한 요인이랍니다.
짱구아빠님/그러게요.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로드무비님/아닙니다. 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돌바람님/추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가 톱텐에 진입했습니다
스텔라님/책을 보니까 동물을 사랑하는 분들이 많다는 걸 느껴요... 한권 더 있으니 그거 읽으면서 벤지를 추억할래요...
에피님/그러게요... 술의 힘을 빈 거긴 하지만...
사과님/님의 이쁜 마음도 잘 압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