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총기난사로 아까운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어이없는 일이다. 피해를 준 사람은 따로 있는데, 애꿏은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는 건 무슨 심보일까. 수류탄을 던지고, 나중에 또 총까지 쐈다고 하니 그 잔인성이 몸서리처진다. 이러니 사람들이 군대 가기를 싫어하는 게 아닌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치사해 보이지만, 신문을 보며 죽은 병사들의 신원을 확인하다가 깨달은 사실이 있다.

-희생자 중 서울에 사는 사람은 딱 하나였다. 그의 집주소는 서울 구로, 나머지 희생자 중 강남은 물론이고 분당에 사는 사람도 없다. 충청북도, 전라북도.... 사고 부대가 전방에 속하는 연천인 것으로 보아, 있는 사람은 전방에 잘 안간다는 통설이 입증된다.

-희생자 중 세칭 명문대에 다니는 사람이 없다. 집 주소와 연관지어 얘기를 해보자면, 집이 부자가 아니면 명문대에 가기 힘든 풍토를 반영하는 건 아닐까 싶다.


군대에 가는 게 싫은 이유는 2년 이상을 자유가 없는 곳에서 썩어야 한다는 게 가장 크겠지만, 인생에 있어서 만나지 않을 수 있는 사람과 길다면 긴 기간을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예전에 내 남동생이 군대에 갔을 때, 아버님을 따라 면회를 갔던 적이 있다. 남동생만 호출했는데 고참 병사도 같이 나온다. 아버님은 남동생이 고생을 덜하길 바라면서 고기와 술을 사줬다. 술을 어지간히 마셨음에도 그 고참은 2차를 가겠다고 난동을 부렸고, 남동생에게 해꼬지를 할까 두려운 아버님은 그에게 맥주를 사주며 타일렀다. 군대가 아니었다면 고생에 찌들어 보이는 그 고참이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를 가졌던 우리 아버님과 나란히 앉아 술을 마시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을 거다. 그날 그랬던 것처럼 아버님 앞에서 맥주병을 깨가며 소리를 지를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한성질 하시던 아버님께서 그 고참의 난동을 참아내기 위해서는 무척이나 많은 인내심이 필요했을 것이다. 숙소로 가는 길에 아버님께서 말씀하셨다. “철이(남동생 이름. 가명) 때문에 참았다”


남동생은 그 고참에게 많이 시달렸다. 하지만 동생은 이번 참사의 희생자들보다는 운이 좋았다. 됨됨이를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놓은 내무반에서, 한 사람만 꼴통이면 저렇듯 개죽음을 당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정말 아찔하다.


꼭 이번 참사가 아니더라도, 군에서는 해마다 300명 이상의 젊은이가 목숨을 잃는다. 대부분 자살로 처리되는 그 꽃다운 죽음들엔 예전에 일어났던 김훈 중위 사건처럼 타살을 자살로 위장한 경우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위험한 무기를 가까이 할 수밖에 없는 군에서 그런 사고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쳐도, 군에서 일어난 일은 아예 정보를 차단한 채 진실규명은 꿈도 꾸지 못하게 하는 작금의 현실은 분명 문제가 있다. 누가 봐도 납득할만한 공정한 조사, 그리고 그 결과에 의한 책임자 처벌이야말로 제대로 된 군을 위해 필요한 조처가 아닐까.


이번 사건의 전말이 철저하게 파헤쳐지는 것은 물론, 다른 부대에서도 틀림없이 자행되고 있을 군대 내 가혹행위가 근절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아울러 가기 싫은 사람을 억지로 가게 만드는 징병제의 폐해에 대해서도 한번 논의해 보자. 그게 그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아영엄마 2005-06-20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편도 언론에 보도되지 않아 우리(일반인)가 모르고 넘어가는 사고들이 많았다고 하더군요.(이번주에는 30위권 진입하시길 바라며 추천하고 가요~ ^^)

ceylontea 2005-06-20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대뿐 아니라.. 세상에.. 이런 어이없는 일들이 왜 일어날까요?? 참 안타까와요... 아무런 잘못도 없는 선량한 사람이 어이없게 봉변을 당하니 말이어요... 이런 세상을 만든 우리들의 잘못일까요?

moonnight 2005-06-20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님 많이 속상하셨겠습니다. 이런 놈 밑에서 내 아들이 무슨 고생을 할까 생각하면 잠도 안 오셨을텐데. ㅠㅠ 저도 뉴스 보면서 제 동생 생각 많이 했습니다. 제발 뭔가 근본적인 뒤집어엎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화가 나고 그저 억울할 따름입니다.

비연 2005-06-20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어이없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총기난사라니.
아들을 군대에 보내놓고 얼굴 한번 마주하지 못한 채 사체로 만나는 부모들의
그 심정이 제게도 전해져 오늘 아침부터 우울할 뿐입니다...

날개 2005-06-20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걱정이라니까요.. 이래가지고 나중에 우리 아들 군대 어떻게 보내나요..ㅡ.ㅡ

클리오 2005-06-20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뭔가 근본적인 개혁이 있어야 할텐데 말입니다. 휴...

마태우스 2005-06-20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제말이 그말입니다. 군대 개혁의 '개' 자도 못꺼내게 하니 원...
날개님/그러게요. 우리 애들은 아무쪼록 지금같은 군 생활을 겪지 않아야 할텐데요
비연님/그 생각 하면 우울하죠... 이 나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앗 비연님, 제가 인사 드렸던가요? 복귀한 마태입니다. 앞으로 호형호제하며 잘 지내길 바랍니다
문나이트님/그죠..군에 지인이 있는 사람은 저 사태가 남의 일 같지가 않겠지요... 별 탈 없이 동생분이 제대하시길 바랍니다. 군대, 이대론 절대 안됩니다
실론티님/우리들 잘못이겠지요 물론. 군대에 대해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노력해야 우리 2세들은 좀 더 편한 군생활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아영엄마님/아이고 매번 추천을....저도 앞으로는 은혜 갚으며 살래요!
속삭이신 분/글고보니 그렇군요. 제가 생각 못한 부분을 깨우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sweetmagic 2005-06-20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군대 제대로 갔다온 남친을한번도 사겨본 적이 없는지라 (미 해당자, 면제, 또는 유예) 군에 면회 한번 갈 기회가 없어서요. 먹을 거 싸들고 군대 면회가는게 한때의 소원이었던 지라...동생 군에 보내고 진짜 열심히 면회 다녔거든요. 양평까지... 근데 갈때 마다 제 동생을 갈구는 나쁜 쇄이가 있었는데 그 **자식이 한 짓거리(동생이 말은 안 했지만 그 실상이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주먹이 부르르 떨려요, 그 넘 제대하는 날 똥차 한대 몰고가서 똥사례를 퍼 부어 줄랬는데.그 넘 부모님 살아계신다는 말 듣고 참았어요. 그런 자식 둔 부모가 넘 불쌍해서요 쳇쳇쳇쳇쳇쳇쳇

마냐 2005-06-20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저두 그들의 주소지, 학력을 보면서 거시기 했는데...애써 외면하려 하였더니, 님이 콕 찍어 지적하셨군요.

숨은아이 2005-06-20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희생자들 중에는 정말 죽이고 싶을 만큼 후임병을 괴롭힌 이도 있을 거예요. 물론 그렇다 해서, 그가 죽어 마땅하다는 이야기는 아니지요.
2. 가해자인 김 일병은 동시에 군대 내에서 있음직한 폭력의 피해자로도 짐작되는데, 정신과 상담이 필요한 이 사람, 군대에 가면 안 되는 사람을 군대에 보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가장 큰 책임은 그 스스로에게 있겠지요. 스스로 벗어나려는 노력을 안 했으니까.
3. 포털에 뜬 기사 제목 "국적포기자 이제 이해된다"를 보고, 저는 냉소했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이해 못 했단 말인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한민국 부모 중 상당수는, 기회 되면 자식 군대 안 보내려고 하지 않나요. 대한민국 남자 상당수는, 가능하면 군대 안 가려고 하지 않나요. 그런데 힘 없고 돈 없어서 군대에 가는 거고, 그래서 박탈감 때문에 군대 안 간 놈 증오하는 거고, 군대 가서는 자기 인생이 아까워 자기보다 약한 놈 짓밟는 거고, 졸병이었을 때 당했으니 나만 당할 수 없어 고참 되면 똑같이 후임병 괴롭히는 거고, 그렇게 흘려보낸 청춘이 아까워 군 가산점이 어쩌고 하면 이를 갈며 덤벼드는 거 아닌가요.
4. 그 틈바구니에서 적응 못하면, 자살하거나 탈영하거나 살인자가 되거나... 하지 않나요.
5. 그래서 역시 군대는 모병제로 바뀌어야 한다는... 머리가 지끈지끈.

릴케 현상 2005-06-20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사고가 연천에서 있었군요 몰랐네...저도 그곳에 있었더랬는데...별 좋은 인연은 못되지만-_-
모병제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만, 군대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모병제로 바뀔 때 저절로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네요. 징병제 하에서도 바꿔야 하는 문제지 않을까요? 먹고살 길을 찾아서 자원해서 간 가난한 남자들이 군대가서 지금 군바리들이 받는 고통을 그대로 받게 된다면 우리 사회의 누가 관심을 가질까 싶네요

로드무비 2005-06-20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기가 막힌 일입니다.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할지......

마태우스 2005-06-21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그러게요... 가슴아픈 일입니다
자명한산책님/님의 말씀에도 동감합니다. 하지만 있는 놈들이 다 군대에 빠지는 작금의 풍토는 군에 간 사람들을 더더욱 허탈하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군인들에게 노력에 부응하는 월급이 제공될 수 있다면, 군대가 지금처럼 썩는 기간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징병제에서도 군대 내부의 폭력은 바뀌어야 하겠죠...
숨은아이님/군 생활에 대한 기억은 다들 좋지 못할 거예요. 군을 편하게 보낸 저 역시 군에서 잃은 게 너무도 많거든요... 님 말씀대로 그 기억 때문에 군에 안간 저 높은 사람들을 비난하는 거겠지요... 그래서 전 모병제에 찬성합니다만, 그렇게 바꾸기까지는 엄청난 난제가 가로놓여 있을 거예요....
마냐님/한겨레 1면에 표로 만들어져 있더군요. 읽으면서 어쩜 이럴 수가 있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매직님/자기가 당했다고 남을 괴롭히는 놈은 정말 나쁜 놈입니다. 단지 먼저 들어왔다고 해서 후배를 괴롭히는 놈도 나쁘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전 님이 참으신 게 아쉽습니다

플레져 2005-06-21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엘리펀트가 떠올랐어요.
콜럼바인 총기 난사사건과 유사한 그 사건의 휴유증은...
지하철에서 군인만 봐도 왠지 두렵더라는 거지요... 안타깝기도 하지만 두려움이 더 크네요. 마태우스님, 반가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