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유머다.


[출산이 임박해 산부인과에 간 이모씨, 그만 산부인과 입구에서 분만을 하고 만다. 서럽게 우는 이씨에게 간호사가 위로랍시고 한마디 건낸다.

“슬퍼하지 마세요. 일전에는 화장실에서 분만한 산모도 있었어요”

그 말을 듣자 산모는 더더욱 서럽게 운다.

“그 사람도 바로 저예요 엉엉”]


오늘 아침, 지각을 한 애들이 뒤늦게 출석을 체크하러 나한테 온다 (지역사회의학은 나랑 다른 선생이 진행하는데, 그 선생은 시간이 되면 칼같이 출석을 부르기로 유명하다). 출석부를 들여다보던 학생들, 내가 출석부에다 학생들 발표 점수를 적어놓은 걸 봤다. 점수에 워낙 민감한 학생들이라 자기들 성적이 궁금한지 자꾸들 와서 본다. 그 중 한 학생의 말, “어, 저는 발표 두 번한 점수가 C+, Co 네요!”

다른 애들 점수를 보던 그는 한탄을 한다. “이럴 수가! 내가 제일 못했네!”

그를 위로한답시고 말했다. “아니어요. 더 못한 학생도 있어요”

그 말을 하고나서 출석부를 뒤졌다. 과연 그렇게 성적인 나쁜 학생은 없었다. 어~어~ 하던 내 눈에 한 학생의 성적이 눈에 들어왔다.

“보세요, 이 학생도 C+, Co 잖아요!”

그 학생, 서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한마디 한다. “그게 바로 저잖아요!”


오늘 아침 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어제 리포트 채점을 끝낸 것들을 다시 다 검색했다. 구글과 네이버를 이용해서. 그 과정에서 ‘레포트 월드’나 ‘해피캠퍼스 닷 컴’을 알게 되었고, 베낀 증거를 확인하기 위해 돈주고 감상문을 구매하기까지 했다. 그때의 난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인터넷에서 베낀 애들이 갈수록 늘어만 갔기 때문. 다섯명, 열명, 그리고 열네명이 된 후에야-의심가는 한명은 좀 더 조사하기로 했다-검색은 끝이 났다. 그렇게 광범위하게 양심불량이 퍼져있는지 미처 몰랐기에 학생들에게 많이 실망했다. 고교 혹은 중학교 2학년 2반 학생이 쓴 감상문을 베낀 학생도 있었는데, 그 학생이 쓴 감상문 역시 다른 무언가를 베낀 거였다. 베끼고, 베낀 걸 또 베끼고, 꼬리를 물고 베낀다. 베끼는 게 쉬운만큼 검색해서 잡아내는 것도 쉽다는 걸 생각했어야 할텐데.


14명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오늘이나 내일 중에 내 방으로 오라고. 벗들이 어제 투표 와 댓글을 통해 충고해준대로, 좋은 감상문을 손으로 두 번 쓰라고 할 생각이다. 학점은 물론 D를 주고. 학생들이 써야 할 감상문은 다음과 같다.

-꼭도라는 분이 쓴 홍상수 론(원하면 여기다 댓글로 올릴께요 정말 잘 쓴 글입니다)

-플레져님의 <미실> 리뷰

-로드무비님의 <유랑가족> 리뷰 (파란여우님, 마냐님 삐지지 마세요!)


어이가 없던 것은 애들이 베끼는 게 잘쓴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10점 만점에 4점, 5점을 준 리뷰들이 알고보니 베꼈다는 걸 알았을 때, 내가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사족: 방금 한 학생이 왔다.

“이거 본인이 쓴 거예요?”란 말에 “아니요”라고 한다. 리포트에 적어놓은대로 “해피캠퍼스죠?”라고 했더니 무척이나 놀란다. 바르게 살라고 말한 뒤 복사한 감상문을 주고-A4로 9장이다-보냈다.


사족 두 번째: 14명에게 문자를 보내니 난리가 났나보다. 애들이 문자로 무슨 일이냐고 묻고, 과대표가 전화를 하고. 한명이 갔으니 지금쯤은 진상을 알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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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8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6-08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감격.
추천합니다.ㅎㅎ
꼭도라는 분의 홍상수론 올려주세요.
읽어보고 싶어요.^^

비로그인 2005-06-08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모씨는 개선되고 있네요.
다음은 병실앞까지 올것으로 기대됩니다.
또하나..잘쓴걸 베낌 어떡합니까. 당연히 못쓴걸 베껴야지 들킬가능성이 낮아지죠.

토토랑 2005-06-08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하루종일 귀가 간지러우시겠어요 ^^;;
왠지 하루종일 '무슨일이야? 너두 문자 받았어? 진짜 하나하나 다 찾아봤을까? 난 문자도 안왔는데 바루 F 인거 아냐? 설마 괜찮겠지? '
이러면서 하루종일 우왕좌왕 했을 학생들의 모습이 그려지네요.. 어쩌면 학생들에겐 잊혀지지 않을 추억을 하나 만들어 주신걸지도 모르겠네요^^;;;

하이드 2005-06-08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2번 말고 한 10번쯤 시키시지.

딸기 2005-06-08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들이 좀 심하네요.

기생충에 감염시켜버리세요

마태우스 2005-06-08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도님이 쓴 홍상수론입니다... 그분의 홈페이지는 http://cocteau.pe.kr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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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록

홍상수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시대의 또 다른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강원도의 힘>으로 관객 만 오천 명을 동원했던 그가, 2년마다 한 편이라는 느린 페이스일망정 꾸준히 영화를 만들 수 있었고, 또 최근작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 이르러서는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 속에 해외 영화제 수상과 흥행성공까지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은, 관객들의 다양해진 욕구와 영화 작가들의 예술적 자의식이 성공적으로 조우할 수 있는 영화 산업적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것을 증거 한다.

이와 같은 상황 변화가 관객의 욕구에 영화자본이 호응했다는, 영화 외부의 경제적/산업적 요인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홍상수 역시 필모그래피가 길어질수록 그의 영화 특유의 '낯섬'과 '냉소'를 덜어가며 더 많은 관객들이 즐길만한 종류의 것으로 자신의 영화를 변화시켜왔다. 물론 이런 변화가 상업적 성공을 목표로 한 전략은 아닐 것이다. 그의 영화에 호의를 보이는 관객이 지식인이나 문인 혹은 (그 경계가 모호하긴 하지만) 영화 매니아들 집단에만 집중적으로 분포해있다는 사실은, 그의 가장 대중적인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개봉 이후에도 그다지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홍상수 영화는 여전히 이상하고 낯설며, 대중적 흥행을 위해 상업 영화가 조장하는 그 흔한 감동 같은 건 한 자락도 흘리지 않는, 건조하고 불친절한 영화인 것이다.

그렇지만 홍상수의 영화에서 변화의 징후는 분명 발견된다. 혹자는 홍상수의 영화가 "느긋해지고 밝아졌다"며 변함 없는 혹은 한층 견고해진 지지를 밝히기도 한다. 이런 변화는 인간 홍상수의 내면적 성숙이나 세계관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이도 있다. 홍상수의 영화의 매력들, 즉, 섬세한 구어적 언어감각, 영화형식/구조적 실험 등은 여전히 영화 속에서 빛을 발한다. 동시에 <오! 수정>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변화의 징후들은 급기야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 와선 관객에게 농담-가령 문호와 헌준이 중국집 종업원에게 작업을 거는 장면-을 던지며 그의 영화에서 '유쾌함'을 느끼게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건 마치 홍상수가 그의 길지 않은 영화 이력 속에서 그의 주요한 영화적 모티프인 '반복과 차이'를 재현하고 변주하는 듯한 양상이다. 그렇다면, 홍상수는 무얼 '반복'하고 있고 또 어떻게 '차이'를 확대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런 변화는 정말 홍상수 영화를 '볼 만한 것'으로 진화시키고 있는가?

1. 반복

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시작된 홍상수의 영화 작업이 한국영화의 지형도에서 위치하고 있는 방식은 매우 낯설고 새로운 것이어서 마치 느닷없는 화산활동으로 갑자기 솟아오른 섬을 연상시켰다. 지리멸렬한 일상의 한 부분을 아무렇게나 끊어 펼쳐놓은 듯한 그의 영화는 (적어도 한국영화 중에서는) 이전에 결코 본 적이 없는 종류의 것이었고, 평론가들과 영화학도들은 그의 영화가 새로이 제시한 화두들에 대해 리얼리즘에서 해체론에 이르는 다양하고 심각한 이론으로 열렬히 화답했다.

홍상수의 영화가 새롭게 혹은 낯설게 보였던 가장 큰 이유는 '일상성'에 있다. '일상성'은 영화의 소재 선택의 원칙이라기보다, 영화적 공간을 구성하는 방법론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가 집요하게 추구하는 영화의 리얼리티를 확보하는데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우리의 실제 일상이 그러하듯, 홍상수의 영화에는 뚜렷한 내러티브가 없다. 인과의 맺고 끊음이 불분명한 사건이 아무렇지도 않게 삽입되고, 등장인물들은 사건의 진행에 관계없는 일 근처에서 기웃거리기를 서슴지 않는다. 가령 <강원도의 힘>에는 바닷가에서 동요를 부르던 세 친구가 정확한 가사가 기억나지 않아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 1분 가량 삽입되었다. <생활의 발견>에선 경수가 놀러간 선배 집에서 선배의 조카가 자동차의 문에 손가락이 끼어버리는 사건이 벌어지지만, 이 역시 경수의 이후 여행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홍상수 영화의 이런 느슨한 구조는 일상을 사는 우리의 경험과 인지적 측면에서 매우 유사하다. 실제로 우리의 삶에는 정해진 내러티브가 없으며, 일상의 수많은 사건들 속에서 사후적으로 그 중대함이 드러나는 사건들을 구별해내기란 불가능하다. 홍상수는 흡사 통계적으로 계산된 결과이기라도 하듯 유의미와 무의미의 사건들을 영화 속에 배치하여 실재 세계를 시뮬레이션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홍상수의 영화가 '낯선' 이유는 그의 영화적 사건들이 현실과 다르거나 작위적으로 구성되어서가 아니라, 다른 영화들이 영화 문법에 따라 자기완결적으로 구축한 영화 공간에 관객들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며, 바로 그런 관습화된 관람태도가 파괴되고 영화가 현실에 한층 가까워지는 경험을 하기 때문이라는 점이 명백해진다. 이렇게 현실의 감각으로 영화 속에 재현된 이미지가 갖는 실재감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갑작스런 살인씬에서 드러나듯 때로 강렬한 정서적 충격을 주기도 한다.

‘리얼리티’라는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홍상수는 영화의 기술적 측면에 많은 제한을 가했다. 즉, 영화가 관객의 감정을 조작하고 등장인물에 정서적으로 공감하게 만들기 위해 발전되어온 다양한 영화적 기교들을 포기한 것이다. 카메라는 롱 쇼트의 거리에서 고정된 위치를 유지하며 원쇼트 원씬으로 처리한다. <오! 수정> 이전의 영화에는 시점쇼트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으며, 클로즈업이나 패닝 등 최소한의 카메라 워크도 자제했다. 이를 통해 영화는 이중적인 효과는 얻게 된다. 즉, 순수한 관찰자의 입장에서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여 시각적/물리적 리얼리티를 제고할 뿐만 아니라,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객체로서 관객을 영화 속에 포획하여, 관객 일반이 느끼는 그 비루하고 폐쇄적인 일상의 감각까지 살려냄으로써 심리적 리얼리티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홍상수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또 다른 구성요소는 '언어에 대한 섬세한 감각'이다. 일상에서 금방 채취한 듯한 생생한 구어들은, 불쾌할 정도로 비관적인 홍상수의 영화에서 때로 유쾌한 흥취를 느끼게 한다. 홍상수 영화가 코미디라면 그건 촌철살인의 묘미를 선사하는 대사들 때문이다. <생활의 발견>에서 술에 취한 명숙이가 내뱉은 저 유명한 대사, "우리 어색한 거 깨게 뽀뽀나 할까요?", 혹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헌준이 엑스터시의 순간에 내뱉는 "깨끗하게 해줄게" 같은 어이없고 때로 황당한 대사는 홍상수 영화에 비틀린 유머를 선사한다.

홍상수는 또한 전작들을 통해 정교한 형식적 실험을 반복하고 있다. 개인적 차원의 일상의 범위를 영화의 소재로 도입한 그는, 영화 형식의 미학적 실험을 통해 쇄말주의에 저항한다. 홍상수 자신이 "영화는 형식이 전부"라고 말할 만큼, 영화 형식에 대한 탐구는 그의 영화에 핵심적인 요소다. 그의 영화에서 '형식'은 영화의 내용을 담아내는 단순한 틀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홍상수가 말하고자 하는 삶의 본질은 바로 그 형식을 통해 웅변된다. <오! 수정>에서 디테일의 차이를 보이는 엇갈린 기억들은 삶의 모호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생활의 발견>은 '모방'이라는 모티프를 반복하며 선영의 대학시절 경험담과 경수가 어느 호수에서 만난 여대생을 연결시켜 원형구조를 완성한다. 이렇게 정교하게 직조된 영화 형식은 그 자체로 지적 유희의 쾌감을 제공하기도 한다. <강원도의 힘>에서 동일한 시간대에 강원도라는 동일 공간에서 어슬렁거리는 두 주인공을 분리하여 보여주면서도 '눈이 예쁜 여자'를 통해 두 사람을 연결하는 방식은, 흡사 타란티노의 영화를 보는 듯, 시공간을 짜맞추며 관객이 스스로 영화의 구조를 완성하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이렇듯 홍상수는 그의 영화에서 리얼리티의 극대화를 목표로 느슨한 내러티브와 절제된 카메라 워크로 구축한 영화적 공간에서 섬세한 구어적 감각의 언어를 구사하는 천박하고 속물적인 인간들이 거닐게 하며 정교한 형식적 실험을 완성해 나아가는 방식을 반복해왔다. 그러나 이런 경향은 최근작에 이르러서는 점차 변모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안이한 매너리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작가 홍상수의 전략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최근 영화들은 이전 영화들과 어떤 '차이'를 보이고 있는가?

2. 차이

한마디로 홍상수의 영화는 점점 덜 낯설어지고 있다. 우선 넉넉해진 제작비와 함께 제작사의 입김에 떠밀려(?) 상업 영화 영역에서 기량을 닦은 유능한 스탭과 스타 시스템에 기대어 영화를 찍게 되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는 원인일 것이다. 스크린에 유지태와 성현아가 등장하는 영화는 김의성과 박진성이 등장하는 영화에 비해 한결 집중하기 수월할 것이고 대중적 파급력 또한 비교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감독 홍상수가 영화에 미치는 장악력을 고려해보면 이런 제작 여건상의 변화는 본질적 원인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그의 영화에 출연하는 스타들은 그들이 다른 상업영화에서 소모되는 방식과 명백히 차이를 보이며 '홍상수적 인간'을 연기한다. 또한 한층 간결해진 구조, 주관적 시점숏의 도입, 그리고 배우에게 가까이 다가서기 시작한 카메라가 스텝의 입김이 아니라 홍상수의 변화된 영화관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앞서 홍상수 영화의 '낯섬'은 기존의 영화문법에서 벗어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영화 속에 재현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논하였다. 그렇다면 홍상수는 현실의 반영을 포기하고 그의 영화를 동시대 인간들의 비루함과 자기모순과 염치불구의 성욕을 드러내는 일종의 '우화'로 만들기로 작정했단 말인가? 홍상수 영화의 리얼리티를 그런 단순 도식으로 이해하기엔 무리가 있다. 홍상수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영화를 찍는다는 사실은, 기계적 객관성을 유지하며 현실을 있는 그대로 필름에 옮기는 대신, 그가 목도한 현실의 본질을 영화 형식을 통해 재구성하여 관객에게 전달하는, 견자의 혜안과 사명을 지닌 예술가로서 자신을 규정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의 영화적 형식이 꾸준히 변해가고 또 우연히도 점차 덜 낯설어지는 것은 현실의 본질을 규명하기 위한 그의 근대적 기획이 시도하는 다양한 실험으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홍상수가 드러내려는 현실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가 드러내는 현실의 본질은 눈여겨 지켜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3. 무의미의 발견

'일상성의 발견'과 그 영화적 재현은 홍상수 영화가 선취한 가장 중요한 업적일 것이다. 사회적 역사적 채무감에서 벗어나, 개개인이 직면한 일상의 경험을 영화의 소재로 삼은 그의 시도는, 거대서사의 몰락 이후의 미학적 진공상태에 빠진 우리 영화계에 새로운 실천적 목표를 설정해주었다. '일상성'을 목표로 한 그의 시도는 철저한 것이어서, 개인의 실존을 역사적 사회적 차원에서 해석하고자 하는 어떠한 이데올로기도 거부한다. 그의 영화에서 애써 역사적 사회적 접점을 발견하고자 하는 시도-가령 <생활의 발견>에서 선영이 운동권 출신인 자신의 남편에 대해 "그 사람은 남을 위해서만 사는 사람이다"라고 말하자 경수는 "난 그런 거 안 믿어요"라고 대꾸하는 장면에서, 이데올로기의 시대에 대한 지식인의 염증을 발견하고자 하는 시도-에 대해 홍상수는 "그냥 그 인물이 그런 말을 함직하다 해서" 그런 장면들을 넣었다며 시큰둥하게 답변할 뿐이다.

결국 홍상수의 영화가 일상성의 재현을 통해 드러내는 현실의 본질은 '우리의 삶이 비루하고 인간은 여건만 주어진다면 비열한 욕망에 몸을 맡기는 추하디 추한 동물이며,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적어도 <오! 수정> 이전의 영화들은 이런 내용을 말하고 있었다. 가만, 이거 새삼스럽지 않은가? 우리의 삶이 그러하고 인간이 그러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홍상수의 영화를 보며 낄낄대고 웃는 사람은 스크린 속에 재현되는 추태가 바로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다른 사람들도 다를 바 없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다. 홍상수의 영화는 새로운 정보를 전혀 내놓지 않는다. 관객은 이미 알고 있는 세상사의 지식을 스크린을 통해 확인할 따름이다. 거기에 어떤 즐거움이 있다면, 그것은 숨기고 싶은 자신의 치부가 영화를 보는 타인과 자기 자신에 의해 공공연하게 조롱당하고 있다는 상황이 주는 매저키스틱한 즐거움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홍상수 영화를 보는 행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 극장을 찾는 관객은 없다. 홍상수는 뛰어난 작가적 감수성으로 축조한 리얼리티의 공간 속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현실의 모습을 낯설게 만들어 제시하며 우리의 삶이 얼마나 비루하고 너저분하며 지리멸렬한지 신랄하게 드러낸다. 프랑스 일간지의 평가대로 홍상수의 영화에서 "표현된 세계보다 더 보편적이고 더 직접적이고 그러니까 더 가깝게 느껴지는 세계는 없을 것이다." 이 농축되었지만 과장되지 않은 현실의 재현에 충격을 받은 어떤 관객이 자신의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도록 노력했다더라는, 바람직한-하지만 그다지 현실성은 없어 보이고, 또 홍상수의 의도도 아닐- 결과를 상상해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관객의 몫이다. 그런 착실한 효과를 기대하지 않더라도 홍상수의 영화는 여전히 볼 이유가 많았다.

하지만 <오! 수정> 이후의 홍상수 영화는 점점 더 봐야할 이유를 상실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최근 영화에 나타난 여러 변화의 징후들 때문이다. 그의 영화가 점점 관습화된 영화 문법을 차용하면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나 <강원도의 힘>에서 발견되던 그 엄정한 관찰자이자 관찰대상의 위치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홍상수 영화를 지켜보는 관객의 위치가 변함에 따라, 홍상수 영화를 본다는 관람경험이 다른 영화의 그것과 변별점을 상실한 것이다. 좀 더 자유로워진 감독과 관객의 시선은 그의 영화 속에 늘어난 유머를 즐기며 등장인물의 섹스 행각이 어떻게 흘러가나 느긋하게 지켜볼 수 있는 여유를 획득했다. 그 너저분한 성욕에 대한 자괴감에 어두컴컴한 극장 안에서 홀로 낯뜨거워하지 않아도 된다. 홍상수의 영화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의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가 친절해지고 낯익어지는 만큼 영화는 남의 이야기가 되어갔다. 영락없는 '음담패설'이 되어간 것이다.

심지어 그의 음담패설은 균형감마저 상실했다. <오! 수정>까지 홍상수 영화의 주인공은 남성과 여성이었다. 그러나 <생활의 발견>과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주인공은 남성이며, 영화는 그들이 겪는 섹스 무용담 혹은 후일담을 풀어놓을 뿐이다. 이전 영화에서 욕망의 주체로서 낯선 공간을 배회하던 여성들은 점차 남성들의 하릴없는 섹스 판타지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강원도의 힘>의 지숙과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선화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는 확연하다. 좌절된 사랑의 회한으로 꺼이꺼이 울음을 터뜨리던 지숙과 달리 선화는 아무런 실존적 고민이 없는 캐릭터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성욕을 드러내는 모든 남자를 만족시키는 기능적 캐릭터일 뿐이니까. 어느 삶의 혹은 환상의 영역에서 저런 여성 캐릭터가 현실감을 갖는지는 자명하다. 윤락가나 섹스 판타지! 어느 평론가의 말과는 달리 선화라는 캐릭터는 홍상수의 영화에서 "여자가 남자를 추월"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음담패설의 나락으로 추락했음을 증명할 뿐이다.

공적이고 역사적인 차원을 거부하고 영화가 다루는 범위를 사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으로 환원해버린 후, 그 텅빈 서사의 공간을 뭔가 다른 미학적 원칙에 따라 채워나가는 것은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홍상수의 이전 영화들은 그 어려운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나아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최근의 그의 영화들은 그 공간에 이상한 걸 채우려하는 것 같다. 세계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며 냉소를 흘린다면, 세상은 분명 비루하고 위선에 가득 차 있으니까, 그건 납득할만한 태도이다. 하지만 느긋함과 유쾌함을 핑계로 공정하지도 않은 판타지로 영화를 채우려 한다면, 발견되는 건 홍상수 영화를 보는 행위의 무의미함뿐이다. 그런 홍상수 영화는 단지 불쾌한 코미디일 뿐이다.

paviana 2005-06-08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의사회가 구현된듯해서 유쾌,통쾌,상쾌합니다.^^

엔리꼬 2005-06-08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으로 시험문제를 내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레포트도 될 수 있으면 베낄 수 없도록 자신의 이야기를 넣어서 내도록 하려고요....

moonnight 2005-06-08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수고하셨어요.

ceylontea 2005-06-08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론... 인터넷 시대의 폐단이군요...쩝//

가을산 2005-06-08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맘착하신 마태님, 두번만 쓰게 하시다니! ^^
이 다음 소식도 전해주세요!

그런데, 전체 정원이 몇명인가요?

클리오 2005-06-08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학기부터는 그런 일이 없겠지요.. 무조건 F를 주겠다고 미리 말하는 것도 치사하지만 한 방법인 듯 합니다... 고생하셨어요...

2005-06-08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5-06-09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아닙니다 마음이 약한 겁니다..
속삭이신 진우맘님/그래봤자 2점밖에 안됩니다(100점 만점)
클리오님/미리 말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고생은요 저보다 클리오님이 더 하셨죠^^
가을산님/두번 가지고도 많이 놀라는 학생이 있더이다... 전체 정원은 50명인데요 그중 30%인 14명이 인터넷을 베꼈죠..
실론티님/인터넷 시대의 폐단일 수도 있지만 글쓰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애들 탓이 더 클 것 같습니다
문나이트님/저보다 문나이트님이 더 애쓰셨지요(이런 덕담은 피하자, 마태야. 말이 안되는 거 니가 더 잘 알잖아?)
서림님/자신의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베낀다면 검색해서 찾기가 더 어렵지 않을까요.. 애들이 글쓰는 걸 이렇게 싫어하는지 미처 몰랐거든요
파비아나님/거듭된 곱창 제의에 왜 한번도 답변을 안하시는 겁니까. 성의있는 답변을 요구합니다
슉슉님/딸기님다운 깜-찍-한 댓글이십니다^^
하이드님/10번 쓰라면 반발하는 애가 있을 거예요. 차리라 F 맞겠다고... 그러면 좀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될지 모르죠...
토토랑님/하핫, 제가 애들한테 세상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 건 맞는 것 같습니다 글구 저 원래 귀는 가렵습니다 ^^
하날리님/말씀 듣고 보니까 그렇네요^^ 이모씨가 개선되고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로드무비님/감격씩이나요... 제가 봐도 정말 훌륭한 리뷰십니다

paviana 2005-06-09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사주시는 건가요? 공짜라면 양잿물이라도 좋다는 신조를 가진터라 ^^;;

파란여우 2005-06-09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안삐졌어요. 절 어찌 보시고....(간신히 대범한 척 하느라고....)^^

찌리릿 2005-06-28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신지 꽤 됀 글에 댓글을 다네요. 감상문, 레포트, 양심이라는 3단어를 보니... 저도 양심에 찔리는 게 있더라구요.
 
얼마 전, 제 여자친구의 여동생, 그러니까 앞으로 결혼할 제 신부의 동생, 그러니까 처제(될 사람)가 저에게 SOS를 보내왔습니다.
"형부(꼭 아쉬울 때는 "형부"라고 부릅니다. 보통 땐 "아저씨" 또는 호칭없이... ㅠ.ㅠ), 부탁이 하나 있는데 들어줄거죠?"
"("형부"라는 호칭에 아주 좋아라하며...)뭔데?"
"저... 제일 싫어하는 과목 과젠데요... 독후감 쓰기에요..."
"에이.. 아무래도 그렇지, 책을 잃어야 쓸 수 있는 과젠데.. .내가 할 수 있나?"
"그래도, 형부는 한국사를 좋아하잖아요"
"그렇긴 하지.."
"책은 제가 드릴테니까.. 대충 읽고 간단하게 써주세요"
이러면서, 10분간... 된다 안된다고 옥신각신... @##$%#$%^$%^#^@$
 
결국... 승락을 하고 말았는데.. 그 책을 받아보니, 정말 한국사를 좋아하는 저로서도 딱 읽기 싫은, 잃어도 별로 얻을게 없을 것 같은 책이었습니다. 소재는 신라, 백제, 고구려 삼국과 그들이 전쟁에 대한 이야기인데, 왜 그걸 대학교 1학년들이 교양으로 알아야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가더군요. 다만 과목의 강사 자신이 4년 전에 쓴 책이라는 사실 밖에는... (알라딘 세일즈 포인트가 300포인트 정도 밖에 안되는 몇권 팔리지 않은.. ㅠ.ㅠ)
 
대학교 신입생들이라 조교가 그냥 적어준 대로 듣는 교양 과목인데, 삼국시대에 고구려에서는 어떤 무기를 썼고, 신라 병사들의 전투복은 어떤 모양새였는지를 말해주는 책을 왜 읽으라고 하는지 저도 참 안타까웠습니다. 그것도 삼국시대 전쟁 소사를 읽고, 무슨 감상을 적어 내라고 하는 것인지....('처참했군요.', '아, 그당시에 그런 무기도 있었군요!'라는 말 밖에는... ㅠ.ㅠ)
 
그러나, 예비 처제의 부탁인데, 행여 점수라도 낮게 나와서, 예비 형부로서의 점수라도 깍일까봐.. 책을 읽을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오래전의 일인데다(삼국시대니...),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전쟁 세사였고, 더군다나 고증이 불가능하여 저자의 상상력이 위주로되어 역사책인지 소설책인지 구분 조차되지 않아 도저히 마음이 내키지 않아, 4분의 1만 읽고 접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해피캠퍼스"였습니다. 오만가지 리포터가 다 있어서, 교수가 어떤 과제를 낸다고 해도 걱정할 게 없다는 TV CF에서 본 바로 그 레포트 사이트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이 책에 대한 감상문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비슷한 감상문을 찾긴 찾았는데, 이건 빼껴쓰려고 해도 쓸 수가 없는 아주 못 쓴 감상문이었습니다. 책을 옳게 다 읽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군데군데 발췌해서 쓴 어이없는 감상문!
 
그런데 다운로드 받는데 2천원이나 쓴 저는 "이런 도둑놈!"이라는 욕을 할 수 밖에 없더군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깨끗하게 내가 직접 쓰자라고 결심을 했습니다.
솔직하게 썼습니다. '책이 별로 흥미가 없어서, 4분의 1밖에 안 읽고 쓴다.'부터 시작해서, 감상문이라기 보다는 책 비평문 비슷한 걸 썼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읽어보니, 이러다가 처제의 이 과목 점수가 D밖에는 안 나오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가다듬고 또 가다듬어 두리뭉실한 감상문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시는 '이런 재미도 없는 과목에, 누구도 읽기 싫어할 책을 신입생들에게 (사라고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살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책을 구해서 읽고 감상문까지 쓰라고 하는 강사가 너무 원망스럽고 미웠'지만, 지금 마태우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남의 부탁을 받고 대신 레포트를 써주는 저의 도덕성이 더욱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작은 법 위반이나 약속어김을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저...
정말 반성해야겠습니다.

마태우스 2005-06-29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찌리릿님/글 잘 읽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사실 저도 잘못하는 거 겁나게 많은데.... 우리 같이 반성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