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5월4일(수)
누구와: 학계 동료와
마신 양: 겁나게 많이, 정신 잃음
아직도 난 술을 마실 때 승패를 따진다. 요즘 세상에 술시합을 하는 인간이 어디 있냐고 할지 몰라도, 내 주위에는 희한하게 그런 친구가 많다. 이날 만난 친구-감마라고 하자-도 그 중 하나다.
내가 승패를 따지는 기준은 딱 두가지다. 하나는 오버이트. 오버이트란 몸에서 더 이상의 술을 거부한다는 신호, 그러니 오버이트 하는 사람은 패자가 된다. 두 번째로 자는 거. 잠이 든다는 것은 정신이 술에게 항복을 했다는 표시, 무조건 진거다.(오버이트 하고 자면?) 정신과 육체를 조화롭게 적용한 이 기준에 친구들은 대략 동의하는 편이다.
감마는 술이 꽤 세다. 이 친구 앞에서 고꾸라진 기억이 하도 여러번이라, 이날만큼은 몸을 좀 만들고 술자리에 임했다. 술을 퍼마신 지 세시간이 지났을 무렵, 알파는 잠이 들었다. 이겼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져 몇잔의 술을 더 들이켰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알파가 집에 가자고 날 깨우고 있다. 새벽 1시가 조금 못된 시각, 내가 언제 잠이 들었던 걸까.
경황이 없어서 그냥 집에 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이 안난다. 내가 이긴 걸까 진 걸까. 친구에게 전화를 해보니 “니가 이긴 걸로 해라”고 하는데, 그렇게 선심 쓰듯 얻는 승리는 내가 원하지 않는다. 먼저 잔 사람이 진 거라고 우기고 싶지만, 마라톤을 할 때 지쳐서 걷다가 다시 달려서 우승을 한 사람도 있으니 그렇게만 따질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졌다고 인정하려니 도저히 승복을 못하겠다. 감마 녀석, 화끈하게 오버이트라도 할 것이지 왜 자는 척을 해가지고 날 방심하게 한담? 언제 어디서나 방심은 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