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분이 겪은 일이다. 27세 미녀인 그분-알파라고 하자-은 서울역에서 기차를 내린 뒤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택시를 탔다. 문을 닫자마자 택시는 떠났고, 알파는 “xxx 가주세요”라고 했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그쪽은 안간다면서 택시를 세웠다. 거기까지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그 아저씨가 기본요금에 해당하는 1600원을 달라고 했던 것. 그때가지 간 거리는 잘해야 50미터 남짓, 목적지에 내려주지 못하는 걸 미안해해야 할 처지에 택시비를 요구하다니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불의를 보면 못참는 알파는 못주겠다고 우겼고-이건 꼭 불의를 못참아서가 아니라, 상식이 있는 사람의 당연한 행동이다-택시 아저씨도 지지 않고 싸웠다. 조금이라도 탔으니 돈을 내야 한다는 자본주의 논리로.


뭐, 싸울 수도 있다. 근데 택시 아저씨의 말투가 어느 틈에 반말로 바뀌어 있었다.

알파: 아니 아저씨! 왜 반말하세요?

아저씨: 반말 할 만하니 하는 거지. 아가씨 몇 살이야?

알파: 당신같은 사람한테 반말 안들을 나이는 되요!

여기서 아저씨는 전가의 보도를 내놓는다.

“내가 집에 가면 당신만한 딸이 있어!”

나도 몇 번이나 들어본 이 말, 싸울 때 불리하면 꼭 나오는 말. 하지만 이 말을 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넙죽 절하면서 “아이고 아버님!” 이랬다는 얘기는 과문한 탓인지 들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왜 나이 좀 든 사람은 전가의 보도처럼 이딴 소리를 내뱉는 걸까. 그러니까 어쩌라고? 아버지 뻘이니까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라고? 알파는 거기에 굴하지 않았다.

알파: 그래, 당신 딸이 당신같은 기사 만나서 이런 꼴 당하면 좋겠어?


정말 멋진 말이 아닌가. 여기서 괜히 유머를 구사한답시고 이러면 안된다.

아저씨: 나 집에 당신만한 딸 있어

여자: 그거 나야!

이런 말도 안된다. “난 집에 가면 당신만한 아빠 있어” 이런 식의 말은 상대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니까.


하여간 알파의 말에 열이 받은 택시 기사는 손을 들어 치려는 자세를 취했다. 이런 것에 쫄아서 울거나 그러면 안되는 게 그 세계의 법칙, 다행히 알파는 강한 여자였다.

“그래, 쳐봐! 같이 경찰서 가자고!”

싸움은 그렇게 끝이 났다. 알파는 술을 마시고 있던 내게 전화를 해 속상함을 달랬는데, 그 택시 기사 아저씨, 앞으로 여자 승객이라고 만만하게 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많은 나이는 옳음을 입증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나이가 그렇게 많음에도 부당하게 기본요금이나 챙기려는 시도를 했다는 걸 부끄러워해야 하거늘, 뭐가 그리 자랑스러운가. 나도 나이로 누군가를 누르려고 한 일이 없는지 반성해 본다. 언제나 말하지만 나이는 벼슬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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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05-03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그거 나야! 라니... 푸하하하하- >ㅂ<

하이드 2005-05-03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번호 적어서 신고할래요. 승차거부

2005-05-03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5-05-03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그거 승차거부에는 해당안되거든요
굳이 따지자면 "폭행미수"..폭언을 했으니 미수가 아니네... 정도가 되죠, 아 참참 "절도미수" 도 되네여

포도나라 2005-05-03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음철학의 대가라고 불러드리면 너무 아부적인 발언일려나~?!
ㅋㅋ~ 재미있는 글이네여 마태님... (그 알파라는 님은 너무 멋진걸?!~)
왠지 슬슬 사라져가는 우리사회의 고질병을 보는 느낌입니다...
그나저나 나도 나이값하면서 늙어가야 할텐데... ㅡㅡㅋ...

클리오 2005-05-03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늘 생각합니다. 나이라는 숫자 말고는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으로 늙어가지 말자.. (무서워요 흑...) 그리고 그 알파라는 분, 정말 저의 이상형이십니다. 저는 정작 싸워야 될 상황이 되면 울컥하고 흥분해서 말을 못하거나(안어울리지만), 저 상황같으면 택시기사가 화나서 으슥한 곳에서 때릴까봐 조용히 내릴 거여요.. 근데 기본료를 달라는건 정말 너무해요...

숨은아이 2005-05-03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신 딸이 당신같은 기사 만나서 이런 꼴 당하면 좋겠어?" 정말 명언입니다. 외워둬야지. ^^

마태우스 2005-05-03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아아 존경스러운 숨은아이님. 리뷰도 캡 잘쓰시는 님께서 이런 누추한 곳에 와주시다니.... 저 앞으로 잘하기로 한 거 아시죠?
클리오님/그럼요 알파 처럼 하기 쉽지 않죠. 대부분 다 주눅이 드니까 아저씨들이 기세가 등등해서 그러는 거라구요.... 하여간 택시 나빠요! 이게 뭡니까.
여행자의 노래님/호호 님은 언제나 제 글을 재밌게 봐주시네요. 슬슬 사라져가는 고질병의 마지막 발악이랄까...알파 멋진 거 맞습니다. 같이 있음 즐겁죠^^
하날리님/전 그래도 하이드님 편이어요. 미녀니깐요
하이드님/님이 옳습니다!
판다님/헤헤 판다님이 웃으니까 저도 좋습니다

인터라겐 2005-05-04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신딸이 당신같은 기사 만나서 이런꼴 당하면 좋겠어.... ㅎㅎ 암기들어갑니다...
아직도 저런 사람이 있다는 현실이 그저 슬플뿐입니다...

조선인 2005-05-04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마자. 암기요!!!

BRINY 2005-05-04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암기를. 우선 메모부터 할까나.

하이드 2005-05-04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반적으로 승차거부는 기다리는 승객 앞에 택시를 멈추고 행선지를 물은 후 그냥 출발하는 행위, 승객을 태운 뒤 방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시내리게 하는 행위, 빈차로 서행하면서 승객과 행선지에 대한 대화를 하고그냥 가버리는 행위 등을 말합니다. 또 정원초과나 위험물 휴대 등 정당한이유 없이 승차를 거부한 경우도 이에 해당합니다. 단 예약등을 켜고 예약손님을 찾아가는 중에 다른 손님을 받지 않는 것은 승차거부로 보지 않습니다. 승차거부는 국번 없이 120으로 신고하면 됩니다.

/서울시 사이버민원실

조선인 2005-05-04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하이드님 멋져!!!

깍두기 2005-05-04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렇게 말한 경험이 있죠.
"넌 에미애비도 없냐?"
"당신이 내 아빠야?" ^^

진주 2005-05-04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아가씨 똑부러지게 말 한 번 잘했네요^^
하지만.......그렇게 막나가는 방법말고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 텐데요....
나이값 못하는 기사도 딱하지만, 그 아가씨는 아직 살아가는 방법을 한참 더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즉, 저는 님들처럼 그 아가씨편에 절대 못 섭니다<--진주,너 뭐냐? 남들 예스할 때 혼자 '노'라도 할팅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