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간 너무 무리해서 그런지, 시름시름 아팠다. 기차에선 책도 못읽고 잠만 잤고, 자도자도 피곤했다. 그래, 너무 일을 열심히 한 거야. 큰일 한가지를 어제 끝낸 뒤라, 운전면허 적성검사 받는다는 핑계로 오늘 출근을 안했다.
면허증 교부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 앞줄 의자에 미녀가 앉는다. 광채가 나는, 시원스럽게 생긴 미녀다. 면허시험장도 은근히 물이 좋은 것이, 미녀건 아니건 면허를 받으려면 어쩔 수 없이 가야 되기 때문이다. 난 책을 읽는 척하면서 그녀를 흘끔흘끔 쳐다봤다. 그때, 같은 줄에 웬 젊은이가 앉았다. 대단하다 싶었는데 말까지 시킨다.
“저...... 시험 접수하러 오셨나봐요”
여자는 남자를 보더니 “어머!” 하고 놀란다. 알고보니 그 둘은 며칠 전 도로주행 시험을 같이 본 사이. 그때는 처음이라 말을 못붙였겠지만 두 번째 보니까 말할 용기가 생긴 듯하다.
원칙 1; 자그마한 인연이라도 물고늘어져라.
남자는 붙고 여자는 떨어졌다. 남자는 시험 때 여자가 떨어진 이유를 말한다.
“나갈 때 우측 깜빡이 안켰구요....어쩌고 저쩌고”
둘이 같은 차에 타고 있었는지 도로주행 시스템을 잘 모르겠지만, 남자가 여자의 모든 행동을 주목한 것은 분명하다.
원칙 2; 상대를 잘 관찰하고 말할 건덕지를 찾아라.
남자는 10년 전에 면허를 땄었지만 음주 때문에 취소가 되었고, 이번에 다시 취득했다. 여자와의 대화 도중 남자는 면허시험 때 있었던 사례들을 재미있게 얘기한다.
“U턴을 하는데 앞차가 신호 바뀌기 전에 돌았는데요, 그걸 따라돌아서 사고날 뻔 했어요. 그 자리에서 바로 불합격됐죠. 하하”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남자는 계속 얘기한다. 내 옆을 보니까 나이드신 아저씨가 날 바라보고 있다. 여자가 더 예뻐 보인다.
원칙 3: 관심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춰라.
남자는 여자에게 미끼를 던진다.
“주행시험 코스를 미리 돌아보면 도움이 되죠. 택시 타고 돌아도 얼마 안나올걸요?”
본색을 드러내는 남자, “제 차로 해보셔도 괜찮구요”
명함을 꺼내서 건네주면서 “연락만 주시면 제가 차 가지고 갈께요. 아, 운전학원 하는 건 아니구요, 회사 다녀요”
여자는 남자의 명함을 들여다본다.
“하루 전에만 연락 주시면 되요”
여자는 알았다고 한다.
원칙 4: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게 뭔지 파악해서 미끼를 던져라.
여자가 손에 든 번호가 나오자 여자는 잽싸게 접수대로 간다. 남자, 면허증을 진작에 받았음에도 끈질기게 여자를 기다린다. 남자는 회색 양복 차림에 머리에 기름이 발라져 있었다. 눈매가 선했다.
원칙 6: 목표로 삼은 이상 인내심을 갖고 공략하라. 그리고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미리 옷차림을 단정히 하자.
남자, 갑자기 놀라서 두리번거린다. 나도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 뒤를 쫓았다. 여자가 일을 보고 그냥 가버린 듯. 남자는 여기저기를 쏘다니다 낭패한 표정으로 면허시험장을 나선다. 남자는 여자가 다시 와서 인사라도 할 줄 알았나보다. 그럼 “점심이나 같이 먹을까요?”라고 작업을 걸 수 있으니까. 인사를 안했어도 눈만 똑바로 뜨고 있었다면, 여자가 가는 순간 접근해서 밥을 먹자고 하지 않았겠는가.
원칙 7: 절대로 방심하지 말자. 작업이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그 남자의 실패를 거울삼아, 다음 적성검사 때는 나도 잘 해보자. 2015년이니 작업하기엔 나이가 좀 많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