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 작가가 '판디'예요! 판다님과 어떤 관계일까...
친한 친구의 아들이 입원을 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성장호르몬 클리닉에 등록을 했는데, 검사를 위해 입원을 해야 한단다. 미모가 우상시되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미모가 사회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자기 아들의 작은 키는 참으로 속상한 일, 많은 돈-일년에 천만원 이상-을 들여서라도 성장 클리닉에 아들을 보내는 친구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문제는 아들의 나이가 겨우 열두살이라는 점. 키가 주로 사춘기에 큰다는 걸 감안하면 성장클리닉에 보내기에는 너무 이른 게 아닐까?
내 경우를 보자. 중학교 1학년 때만 해도 난 그다지 키가 큰 애가 아니었다. 그러다 중2 때부터 십 센티 이상씩 자랐고,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꾸준히 자란 결과 지금 내 키는 176센티로 우리 나이 또래에 비하면 결코 작은 키가 아니다. 물론 친구의 아들이 현재 또래에 비해 키가 작은 것은 사실이고, 나중에 나만큼 자란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엄마가 162센티에 아버지가 178센티로 결코 작은 키가 아닌 바, 친구의 아들도 곧 고속성장을 시작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면 말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랬다가 진짜로 키가 안크면 무슨 원망을 들을 것인가 싶어 내버려 뒀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90년 무렵에는 일리잘로프라는 게 유행을 했다. 당시 어린이병원에 입원한 환자들 중 그 기계를 착용한 아이가 꽤 많았던 기억이 나는데, 그건 러시아 사람이 만든 기계로, 원리는 이렇다. 일단 다리 중간을 자른다. 그리고 기계를 끼워 1미리미터를 벌린다. 아물만 하면 또 그만큼을 벌리며, 그런 식으로 몇 달에 걸쳐 5-6센티 정도를 크게 하는 것이다. 1미리씩 떼어놓는 이유는 신경이 하루에 1미리 정도 자랄 수 있기 때문인데, 정말이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면 생각할 수 없는 장치인 것 같다. 시술하는 동안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하고 나서 남는 흉터는 어찌할 것인가. 그래서 이건 다리를 다치거나 골격이 이상한 아이에게나 시행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등장한 것이 바로 성장 클리닉이다. 유전자 조합으로 합성된 성장호르몬을 인체에 투여함으로써 성장을 유도하는 것. 일리잘로프보다야 백배, 천배 낫다는 건 인정하지만, 이 방법 역시 내가 보기에는 문제가 많다.
첫째, 성장호르몬은 성장호르몬이 결핍된 아이에게만 투여해야 한다.
위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성장 호르몬이 가장 왕성하게 분비되는 나이는 사춘기 때다. 때가 되면 성장호르몬이 펑펑 나올 테니, 10살 내외의 아이들은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의사들은 그 나이보다 훨씬 이전에 아이를 성장클리닉에 데려가라고 말한다. 왜? 어린이의 뼈에는 성장을 담당하는 성장판이라는 게 있는데, 성장판이 닫혀 버리면 더 이상의 성장이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 내 친구에게도 아들이 곧 성장판이 닫힌다고 겁을 준 모양이다. 아니 열두살에 성장판이 닫히는 수도 있는가? 사람마다 닫히는 시기가 다르겠지만, 인기 여배우인 문근영같은 경우 고3인 올해도 성장판이 닫히지 않아 더 클 수 있다고 하는 걸 보면(스포츠한국 2005/02/21) 가만히 놔두면 저절로 클 애들에게 호르몬제를 투여해 수익을 올리려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 교과서적으로 따지면 성장호르몬은 성장호르몬 결핍증에 시달리는 아이에게 투여해야 하며, 지금처럼 당장 키가 작다는 이유로 투여되서는 안된다.
둘째, 호르몬 제재는 언제나 신중을 기해야 한다.
호르몬이란 세포간의 명령전달을 수행하는 단백질이다. 인체의 호르몬 체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효율성과 정교함에 놀라게 되는데, 시스템의 일부라도 손상이 가게 되면 곧장 질병으로 발현하게 된다. 시스템을 손상시키는 주범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외부에서 투입하는 호르몬 제재도 그 중 하나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신장 위에 있는 부신이라는 장기에서 코티졸이라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 호르몬으로 인해 우리는 스트레스로 인한 각종 해악을 완충시킬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이유로 외부에서 스테로이드를 계속 주입받았다고 해보자. 코티졸의 농도가 늘 높으니 할 일이 없어진 부신은 퇴화되어 버리고, 나중에 스트레스를 받아도 코티졸 분비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오랜 기간 누워만 있던 사람이 달릴 수 없는 것처럼. 그럼 성장호르몬을 분비하는 뇌하수체 전엽도 이와 비슷할까? 알 수 없다. 난 성장호르몬을 투여하면 원래 나오기로 한 성장호르몬의 분비가 덜 되며, 그래서 원래 자랄 것보다 덜 자란다고 믿지만, 아직까지 아무것도 입증된 바는 없다. 하지만 다이옥신을 비롯한 환경호르몬을 가지고 그 난리법석을 떨던 우리나라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를 성장호르몬을 아무런 저항 없이 투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놀랍기만 하다. 섣불리 호르몬을 투여해 호르몬 체계를 흔드는 행위는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 경구 피임약보다 콘돔이 훨씬 더 좋은 피임법인 이유가 경구피임약의 성분이 여성호르몬이라 몸에 들어가면 호르몬 체계를 교란시키기 때문이지 않는가.
셋째, 성장호르몬에 간다고 다 크는 건 아니다
네이버에 나온 사례담을 소개한다.
[대전에 있는 N한의원이 가장 유명하다 하여 한달에 한번씩 가서 검사하며 꼭 1년 12달을 해보았죠. 엄마가 원하는 만큼 키워줄 수 있다더니 6개월이 지나니까 조금 더딘가보다고 하더니, 1년이 다 돼도 2센티밖에 안컸죠. 한의원에서 이렇게 안 크는 애는 첨이라고 말하는데 엄청 기가 막혔죠. 2시간 이상씩 걸려 한의원에가고 아이도 친구들 눈치보며 약병에 한약 넣어 점심때 거르지 않고 먹었는데 말이어요.
그 후로 서울 연세대학병원에 성장 호르몬 주사를 1년 동안 시술했었죠... 1년 공들여 4센티 컸어요. 기간을 1년으로 잡았던 선생님은 계속하자고만 하시고, 아이는 아이대로 밤마다 주사맞고 먹기싫은 우유먹으며 키가 안 크니 스트레스 엄청 받았죠. 근데 이제 그만뒀어요]
결국 엄마는 아들에게 말했다. 건강한 게 최고라고. 나중에 키 크고 덩치 큰 사람들을 부하로 거느리라고. 아이의 부모가 모두 작았으니, 키가 별로 안 크는 유전자를 전수받아 성장호르몬이 듣지 않았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성장호르몬으로 키가 자란 사람은 어차피 키가 클 사람이었던 게 아닐까?
넷째, 문제는 다시 호르몬이다.
다음 기사를 보자.
[미국에서 인공성장호르몬을 사용하여 생산된 쇠고기와 우유가 인체에 해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잠재적 위험성을 들어 유럽연합에서는 89년 이래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금지해 오고 있다....5월 1일 EU과학위원회는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소에게 사용한 호르몬 찌꺼기가 (쇠고기 속에)남아 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주간내일신문, 99/08/25]
미국과 유럽의 무역전쟁으로 번진 이 사건은 언제나 미국 편에 서 왔던 WTO가 미국의 손을 들어주며 종료됐지만, 그 이후에도 유럽은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하지 않고 있다.
성장호르몬으로 키운 소를 먹는 것도 이렇듯 문제가 있는데, 사람에게 인공적인 호르몬을 투여하는 것은 과연 괜찮을까. 사람의 호르몬과 똑같은 염기서열로 만들었다 해도, 인체에서 분비되는 호르몬과 인공적으로 합성한 호르몬은 분명 다르며, 그것들이 몸 안에 들어갔을 때 어떤 부작용을 일으킬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부 연구에서는 성장호르몬에 대한 항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고 하지 않는가?(이 말은, 우리 몸이 인공적으로 만든 성장호르몬을 이물질로 간주했다는 뜻이며, 그렇게 생성된 항체는 구조가 비슷한, 자신의 성장호르몬도 공격할 수 있다). 당뇨병 환자에게 인슐린을 주사하는 것에 아무런 이의가 없는 것처럼, 성장호르몬 또한 성장호르몬이 결핍된 환자에게 주사할 때만이 정당성을 갖는다. 거듭 말하지만 호르몬의 인공적 투여는 신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