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지 목욕을 시켜줬다. 목욕을 하고나면 벤지는 방에 펼쳐진 이불에 올라가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몸을 비벼댄다. 목욕을 한 게 개운해서 그런건지, 아니면 내게 화난 것을 그런 식으로 푸는 건지, 나이가 제법 든 후에도 벤지 특유의 동작은 여전하다.


개 샴푸가 떨어졌다. 새로 하나 사야하는데, 가축병원에서 파는 건 값만 비싸지 양이 얼마 안된다. 그전에 쓰던 건 이마트에서 샀다. 9월경에 샀으니 무려 6개월을 버틴 거다. 그때는 벤지가 기력이 쇠해서, ‘이게 혹시 마지막 샴푸가 아닐까’는 생각을 했었는데, 어느덧 그 샴푸를 다 쓰고 새로운 샴푸를 사야 한다. 어제 저녁은 물론이고 오늘 아침도 깨끗이 먹어치운 걸 보면, 이마트에 가서 용량이 큰 샴푸를 사도 될 것 같다.


88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열여덟살, 다른 사람들 눈에는 아니겠지만, 내게 벤지는 여전히 귀엽다. 아침에 깨서 여전히 퍼져 자고 있는 벤지를 발견할 때면,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오래도록 쳐다보게 된다. 가끔은 벤지가 부담될 때도 있지만, 벤지 없는 내 삶을 생각하는 건 그보다 더 두려운 일이다.


벤지의 등에는 큰 상처가 있다. 지방종들이 아물면서 큰 딱지로 모이고, 그 딱지가 떨어지면서 생긴 상처인데, 약을 발라줘도 벤지가 유연한 허리로 약을 다 빨아먹어버려, 상처가 나을 겨를이 없다. 귀에도 비슷한 상처가 생겼는데, 세균에 감염되었는지 냄새가 난다. 처음에는 열심히 귀에다 약을 발라줬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반대편 상처에서 나는 냄새다. 나야 뭐 그러려니 하고 살지만, 어머니나 우리집에 오는 사람들은 그 냄새에 질색을 한다. 그래서 ‘벤지를 없애라’는 주장이 대두된다. 나와 같이 사는, 그래서 우리집 일에 대해 일정 부분 발언권을 가진 어머니는 ‘제발 안락사를 시켜라’라고 호소한다.

“벤지도 사는 게 괴로울 거야. 올 봄은 넘기지 말자, 응?”

하지만 내가 보기에 벤지는, 등과 귀의 상처를 제외한다면, 지극히 평온한 삶을 산다. 내가 오면 힘든 몸을 일으켜 나를 따라다니고, 내가 누우면 옆에 자리를 잡고 잠을 잔다. 하루에 한번씩 하는 자위도 거르지 않는다. 물론 나라고 안락사를 생각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안락사라는 게 고통이 극심한 환자를 거기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라면, 이미 안락한 삶을 사는 벤지를 죽이는 건 안락사가 아닌 고려장이다. 어머님이 특별히 나빠서 늙고 병든 동물을 버리자는 게 아니라는 건 잘 알지만, 난 어머님의 뜻에 따를 생각은 없다. 난 벤지가 죽으면 가출을 하겠다는 협박으로 어머님을 닦달하고 있는데, 어머님이 언제까지 벤지를 인내하실지 모르겠다.


그간 난 벤지에게 최선을 다했을까? 말을 안해서 그렇지, 벤지도 이런저런 불만이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을 같이 있어주지 못한 건 내 잘못이지만, 최소한 먹는 것만큼은 내가 여느 개 안부럽게 해준 것 같다. 벤지는 어려서부터 사료 대신 밥을 먹었다. 개 사료라는 것이 아무리 영양소를 다 망라하고 있다고 해도 결국은 인간의 편의를 위한 것, 맛도 없는 사료를 맨날 먹으니 개가 잘 자라지 않고, 수명도 짧은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도 이가 튼튼하고 건강한 벤지는 내 방식이 옳았음을 증명해 준다. 그렇다 해도 개의 수명은 인간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짧은 바, 결국은 이별의 아픔을 맞이해야 한다. 밥만 주고 하루 종일 혼자 둠으로써 우울증에 걸리게 할 생각이 아니라면, 개 기르기는 커다란 책임이 따르는 행위며, 애를 기르는 것에 비교된다는 것이 애견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그래서 난 당장의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개를 기르겠다는 사람을 말리는 편이다. 길거리에 버려진 개들은 그렇게 일시적인 충동에서 구입한 주인의 무책임에서 비롯된 슬픈 결과물이 아니겠는가.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 벤지는, 주인을 잘 만난 것 같다. 그리고 나 또한 개를 잘 만났다. 나와 벤지는 서로 믿고 신뢰하며, 기대를 배반하지 않으니까. 개들이 다 그렇다고? 그건 아니다. 벤지를 대신할 수 있는 개는 이 세상에 없으며, 벤지가 죽으면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 만일 벤지가 죽으면 집 근처 술집에서 사흘간 술을 마실 거예요. 그때 봉투 들고 문상 오세요. 어차피 장례식이란 게 죽은 자보다 상주를 보러 오는 거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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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3-12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벤지님, 더욱 건강하세요..

울보 2005-03-12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슬퍼지네요..
죽음이란 단어는 사람을 참 숙연하게 만듭니다,
18살 장수한거죠..
님의 마음을 알수 있을것같아요..
말은 못하지만 벤지또한 얼마나 슬플까요..
살아있을동안 님이 지금처럼 보살펴주세요..
벤지도 님이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거예요.
그리고 벤지도 님을 분명히 사랑할겁니다,,
문상가지요..일이 생기면 그뭐라고 하지요,,,상가집앞에 거는것 잠시 이름을 잊었는데 ..걸어두세요..

마태우스 2005-03-12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발님 서재에서 훔쳐온 이미지입니다.

복돌님/님과 님의 가족분의 건강을 기원하겠습니다

울보님/벤지가 안다는 걸 녀석의 눈을 볼 때마다 느껴요. 서로 믿는다는 것,

그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부리 녀석이 저 이미지로 바꾸겠다는데, 그렇게 할까요??


파란여우 2005-03-12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의 벤지 아빠!!!요새 무슨 약 드십니까? 점점 글로 기를 죽이십니다.

아영엄마 2005-03-12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우리나라에서 제 명 다 하고 죽는 개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결국 저희집도 한녀석을 키우기로 했는데 덕분에 제 잔소리가 200% 늘었다지요. 쩝~ ^^ (요즘 한창 배변 훈련중인데다가 이리 먹성 좋은 녀석은 처음인지라..^^;;)

2005-03-12 14: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울보 2005-03-12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재미있네요.
그러면 부리님의 엉덩이 춤이 그립겠네요..

마태우스 2005-03-12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예리하신 지적 감사합니다. 고쳤어요 방금!!!
울보님/그죠? 근데 사람들이 엉덩이 춤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지라..
아영엄마님/아 님도 애견클럽에 동참하셨네요. 반갑습니다. 참고로 우리 벤지는 먹성이 그리 좋지 않아, 먹어주는 게 기쁨이었습니다^^
여우님/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부끄럽죠.....

stella.K 2005-03-12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제니 죽을 때 정말 슬펐더랬죠. 근데 지금은 우리 똘똘이 죽으면 제니만큼 또 슬퍼하게될까 그런 생각해요. 아닐 것도 같고...두번째는 첫번째 보다 덜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에고, 모르겠네요. 어쨌든 벤지가 건강하다니 다행입니다. 글찮아도 벤지의 안부가 궁금했거든요.^^

marine 2005-03-12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벤지 종류가 뭔가요? 일반적으로 작은 개들이 오래 산다고 들었습니다 전 요크셔 테리어를 키우는데 수의사 말이 15-16년 정도 살면 인간으로는 100세 산 거라 하대요? 지금 키운지 2년째인데, 그간 큰 수술만 세 번이나 해서 오래오래 잘 살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하도 병치레가 잦아 재채기 한 번만 해도 일단 병원에 데려가고 봅니다 그런데 정말 밥 많이 주세요? 수의사 말로는 개는 염분 배설을 못 시키니까 사람 먹는 음식 자꾸 먹이면 당뇨, 고혈압 걸려서 빨리 죽는다고 하던데... 개마다 틀린가? 그래서 저희 집에서는 꼭 사료만 먹이고 사람 음식은 일체 안 주고, 대신 애견용 간식만 주거든요 사람 먹는 거 먹여도 된다면 정말 주고 싶어요 우리 식구들이 뭐 먹을 때마다 애처롭게 처다 보는데, 차라리 내가 안 먹고 말지, 싶다니까요 ^^

마태우스 2005-03-12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나님/마르치스입니다. 그리고 개 1년이 사람 십년이라는 설, 7년이라는 설은 다 틀린 것 같아요. 개마다 다르고, 키우기에 따라 또 다른 것 같습니다. 나나님 개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아프네요. 벤지는 원래 건강해서, 아프다고 저 속상하게 하는 일이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도 제 복이었네요. 개한테 사료가 좋다는 말은 업자들이 하는 말이지요. 사람도 우주식량 갖고는 못살지 않습니까.
스텔라님/두번째나 첫번째나 똑같이 슬플 것 같습니다. 벤지를 늘 이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부후사 2005-03-12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한테는 사료가 더 좋다고 아부지께서 그러시던데... 쩝... 언제 뵙게되면 개 샴푸 커다란 거 몇 개 안겨드리고 와야 겠네요. ㅋㅋ

플라시보 2005-03-12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에게 사료보다는 밥이 나을꺼란거 저도 예전부터 생각했습니다. 똥을 조금 적게 누고하고 냄새도 덜나게 하며 인간이 편리하기 위해 만든게 사료가 아닌가 싶어요. 개도 동물인데 인간에게 나쁜 인스턴트가 개에게 만큼은 좋을꺼라는 그 믿음이 어디서 온건지 잘 모르겠지만. (이론적인 면은 제가 모르니까) 저도 개를 키울때 밥을 먹여서 키웠고 앞으로도 기회가 닿아 개를 기른다면 꼭 밥을 먹여 키울 생각입니다. 인간에게도 아무리 좋은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인스턴트 음식만 내내 먹으면 지겹듯 개도 그렇지 않을까요? 사료 먹이다가 밥을 조금 먹이면 다시는 사료를 안먹는다는 것은 맛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도 개들이 사료보다는 밥을 더 선호하는 것을 증명하는게 아닌가 싶어요.

BRINY 2005-03-12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엄마도 무슨 말 끝이면 갑자기 [근데, 햄스터를 한마리만 키우면 안되겠니?]하고 덧붙이시죠. 지금 4마리를 키우거든요. 하지만, 한마리만 키운다면 나머지 3마리를 이 춥고 도둑고양이들이 설치는 바깥으로 던져 놓으란 건가요? 저도 햄스터를 잘 키우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저도 이제 햄스터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 없거든요. 벤지랑 계속 행복하게 사세요.

야클 2005-03-13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티즈가 장수 견종인가 봅니다. 우리집 뽀삐도 17살인데. 윗글을 보니 구구절절 동감입니다. 우리집 뽀삐도 어려서 부터 사료라곤 안먹고 자랐죠. 우리들 먹는 음식 따라서 먹고 자랐으니 말 그대로 식구지요. 요즘은 이가 빠져서 soup가 주식이지만... 20살 넘겨서 성년식도 시켜 보죠. ^^

비로그인 2005-03-13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연인이나 벗이 있어서 18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눈을 마주하면서
변하지 않는 애정을 가질 수 있을까요.
저 역시 가족이 된 개는 동물이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마태님과 벤지의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훈훈하고 찡합니다.
벤지가 남은 생을 정말 안락하게 살다가 가길 저도 바라고 있을게요.

부리 2005-03-14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님/맞아요 개가 아니라면, 인간과 인간이라면 그렇게 오랜 세월 변함없는 애정을 갖기가 어려울 거예요. 벤지한테 잘 말할께요. 참, 저 이미지 바꿨어요^^
야클님/와와 그러니까 우리가 먹는 음식이 장수의 한 비결일 수 있겠군요. 우리 벤지는 아직 이가 튼튼하답니다. 님의 뽀삐도, 저희 벤지도 화이팅.
겨울빛님/님의 견해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벤지를 남겨놓고 제가 먼저 죽는다면, 그건 더 슬프지 않겠습니까..
브리니님/햄스터 역시 생명을 가진 고귀한 존재죠. 꼭 버티셔서 4마리 잘 돌봐주세요
플라시보님/맞습니다. 사료먹던 개가 밥에 맛을 들이면 사료를 안먹죠. 인간도 여러가지 먹어야 안지겹듯, 개도 그런 면이 있을 거예요. 사료를 먹는다면 배고파서 할 수 없어서 먹는거지, 맛있게 먹을 수는 없지 않을까 싶어요. 아무리 맛있는 사료라 해도요.
에피님/앗 그럼 저 샴푸 안사고 좀 기다려도 되나요?? 4월 번개 때까지요^^

예삐오빠 2005-03-14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벤지가 계속 건강하길 바란다...아울러 울 예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