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내가 국립보건원에서 공중보건의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지금은 얘기하기도 쑥스럽지만 그때 난 삐삐의 인사말에 소설을 연재하는 걸로 약간 떴다.
그 바람에 정말 온갖 잡지와 인터뷰를 다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경향신문의 매거진 X다.
그때나 지금이나 난 매체가 뭐든지간에 성실하게 인터뷰를 해주는데,
경향신문과 인터뷰는 내 인생에서 정말 부끄러운 인터뷰였다.
인터뷰 시각은 오후 1시 반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날 방송대학 케이블 팀의 피디가 날 찾아왔고,
내게 모 프로그램의 MC를 제의했다.
내 스타일로 보아 당연히 거절해야 할 자리,
하지만 난 늘 그렇듯이 완강히 거절을 하진 못했고,
어영부영 그 피디랑 점심까지 같이 하게 됐다.
보건원 앞에는 닭도리탕을 잘하는 식당이 있었는데,
그런 식사를 시키니 소주도 한잔 할 수밖에 없었다.
그 피디도 소주를 아주 잘 마셔, 각각 한병씩 나눠마시려다
나중에 쌓인 소주병을 보니 네병이나 됐다 (그때는 소주가 25도였다)
술김에 MC직을 수락하겠다고 했던 것만 기억이 날 뿐,
그 후 어떻게 보건원까지 기어왔는지는 완전히 기억에 없다.
잠에서 깨보니 보건원 실험실이었고,
그제서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가 잡혔다는 게 생각났다.
담당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못가서 죄송하다"고 싹싹 빌었다.
기자가 말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인터뷰 잘 하셨는데..."
그 말에 난 기절할 듯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네? 제가 인터뷰를 했어요?"
사진을 보면 눈이 완전히 풀려 있는데,
평소에도 그러고 다녀서 그런지 실제와 큰 차이가 안나는가보다.
기사를 읽어봐도 내가 저런 말을 언제 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나는 상황,
일단 그 기자에게 미안해서 경향신문 앞으로 찾아가 저녁을 사면서 사과를 했다.
물론 기자가 여자였으니 그렇게 한 거였지만 말이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났을 무렵, 그 기자는 내게 전화를 걸어 경향신문에 글을 써달라고 부탁을 했고,
칼럼을 쓰는 인연으로 경향 기자들과 식사를 같이 하면서 그 기자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나이든 사람끼리 다 그렇듯 우리는 서로 하나도 안변했다 어쩐다 하는 얘기를 나눴는데,
그녀를 만나고 나니 괜히 내가 금의환향이라도 한 기분이었다^^
* 지금 검색해보니 그녀는 경향에서 경제부 차장으로 일하고 있고
얼마전 시부상을 당했단다.
** 보건원에서 군복무를 하면서 늘 저렇게 방탕한 생활을 한 건 아닙니다. 혹시 싸이처럼 군대 다시가라고 할까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