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적으로 난 외국을 가지 못한다.
외국 음식을 못먹기 때문이다.
희한하게도 우리나라에서 파는 외국음식, 예컨대 카레나 스시 같은 것은 잘 먹어도
한국 땅을 떠나면 음식을 거의 못먹는다 (심지어 한국음식점에 가도!).
스페인에선 계속 굶다가 맥도널드를 갔지만, 그것마저 먹지 못했다.
소위 선진국이란 곳에 가도 그랬으니 그렇지 않은 나라를 가면 어떻겠는가?
몽골에 갔을 때 1회용 도시락 8개를 싸가지고 사흘을 버텼던 기억,
태국에선 맥주와 우리나라에선 안먹던 사과로 닷새를 버텼던 기억 등등
외국에 갔던 일들은 죄다 악몽으로 남아있다.

수단으로 갈 기생충학자를 뽑는다는 공문에 시큰둥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석달 동안 체제비 1만여달러와 하루 인건비 22만원을 준다고 했지만,
거기 가면 죽을 것 같은데 어쩌겠는가?
난 별반 망설임 없이 그 메일을 지웠다.

그런데 얼마 전, 기생충학자를 뽑는다는 재공고가 날아왔다.
원래 2명 모집인데 1명으로 바뀌었으니, 누군가 1명이 지원한 모양이다.
먼젓번과 달리 이번엔 갈까 말까를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건, 상황이 좀 안좋아졌기 때문이다.
그 동안 난 아내가 그토록 원하던 스마트TV를 6개월 할부로 샀으며,
올해 8월에 산 차 때문에 들어가는 돈도 상당하다.
모 신문 칼럼에서 “집이 있으면서 수입의 10% 이상을 빚 갚는 데 쓰는 사람”을 하우스푸어라고 정의하던데,
그 기준대로라면 난 딱 하우스푸어다.
수단에 간다면 1400여만원을 손에 쥘 수 있고,
그 동안 학교에서 주는 월급은 그대로 남으니 스마트TV는 물론이고
찻값도 웬만큼 갚을 수 있다.
체력이 될 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야 하는데,
수단에 가는 건 좋은 수단이 아닌가!
“그래, 고생 좀 하자”고 결심하고 나니 왠지 “전기도 잘 안들어온다”던 수단에서도 버틸 수 있을 것같은 기분이 든다.
게다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자기를 욕했던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들일 것 같은데,
이건 나만의 착각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박근혜를 욕했던 5천명 안에는 들었지 않나 싶다.
그 경우 가만히 있다가 미네르바 꼴을 당하느니
선거 다음날인 12월 20일 후다닥 외국으로 튀어 버리면 좋지 않겠는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결심을 굳힌 뒤 아내에게 말했더니,
아내가 이런다.
“절대 안돼! 난 돈보다 여보랑 같이 있는 게 좋아.”
그래도 가겠다고 우겼더니 아내가 이런다.
“맞고 안갈래, 그냥 안갈래?”
그랬다. 아내는 날 이렇게까지 사랑하고 있었다.
보통 아내 같으면 “나가서 돈 벌어와!”라며 안가겠다는 남편을 등 떠밀 수도 있는데,
내 아내는 돈이고 뭐고, 나랑 같이 있겠단다.
아내가 한없이 고맙고 가슴이 뭉클해져 수단을 가겠다는 결심을 철회했고,
지금은 뭘 해서 그 돈을 벌지 구인광고란을 뒤적이고 있다.
어찌된 게 카드 연체금을 받는 일밖에 없는지, 좀 그럴 듯한 일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