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차려 일해야 할 때 게으름을 피우는 걸 우리집에서는 ‘해찰’이라고 한다. 정신의 높은 경지인 ‘해탈’과 글자가 비슷한데, 아무튼 난 해찰의 왕 쯤 된다. 해야 될 일이 있음에도 시간이 없을 때는 왜 그리 딴짓이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학생들 시험이 앞당겨지는 바람에 시험 문제를 낼 시간이 화요일 하루밖에 없었다. 열심히 문제를 내야 하건만 왜 그렇게 글이 쓰고 싶어지는지. 그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글을 한편 썼고, 하얀마녀님이 개최한 캡쳐 이벤트에 참가해 열심히 댓글을 달았고, 하염없이 F5를 눌러댔다. 이벤트에 당첨이라도 됐으면 모르겠지만 결과마저 나빴는데, 결국 난 기차 안에서, 그리고 술자리에 가면서까지 시험문제를 만들어야 했다.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날 오후까지 내야 할 보고서가 있었는데, 내가 오전에 한 것은 골프선수 강수연의 팬클럽 사이트를 만든 거였다. 갑자기 왜 만들었을까? 박지은은 팬클럽이 있는데 더 이쁜 강수연이 그런 게 없다는 것이 화가 나서.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하필 왜 그때 만들어야 했을까? 나도 모른다. 내가 달리 해찰의 왕인가. 참고로 내가 만든 강수연 팬클럽 사이트는 내 협박에 못이긴 지인들 몇 명이 가입했는데, 그들은 “강수연이 탤런트 말고 또있냐?”고 물을 정도로 골프에 문외한이었고, 당연한 귀결이지만 얼마 못가서 흐지부지되었다.
신춘문예에 낼 글을 쓸 때는 증상이 좀더 심했다. 두줄 쓰고 글한편 쓰고, 세줄 쓰고 TV 보고. 이러니 그날 밤을 거의 새다시피 했지만 결국 완성을 못시키지 않았던가. 결국 난 출근하는 기차 안에서, 졸린 눈을 비벼가며 나머지 부분을 완성했다. 참고로 말하면 문학에 조예가 깊은 내 여친은 내 소설을 보고 굉장히 감탄했다.
“오빠, 정말 될 마음이 있긴 한거야?”
해찰만 안부렸다면 좀더 좋은 소설을 쓸 수도 있었을 텐데.
내일까지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도 해찰은 해찰이다. 잃어버린 나의 집중력, 다시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