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은 집계가 시작된 1998년 이래 가장 책을 적게 읽은 달로 기록될 것 같다. 보통 열권, 못해도 여덟권 정도는 유지를 했었는데, 다섯권이라니. 연애를 한 것도 이유가 될테고, 술을 마신 것도 원인의 하나이리라. 하지만 언제나 악조건-독서에는-속에서 책을 읽어온 그간의 이력을 돌이켜보면, 연애와 술은 별로 설득력 있는 변명은 아닌 것 같다. 좀더 정확한 이유를 대면 이렇다. 난 대개 기차에서 책을 읽었지만, 지난달엔 이상하게 기차만 타면 잠을 자버렸다. 집에서 자는 시간이 크게 줄어든 게 아니라는 점에서, 내 체력이 많이 고갈된 게 아닌가 걱정이 된다. 초반에 벌어놓은 게 있어 100권은 넘겼지만, 이러다가 내년도엔 두자리 숫자에 그칠까 걱정이다.




97년, 몇십년만에 다시 독서를 시작하면서 난 ‘3천권의 책을 읽겠다’는 포부를 밝혔었다. 어떤 책을 읽겠다는 게 아니라 권수를 지정한 것으로 보아 내가 추구하는 독서가 ‘물량주의’라는 걸 알 수 있는데, 어찌되었건 삼천권은 일년에 백권씩 삼십년간 읽으면 달성할 수 있는 수치다. 120권씩 읽는다면 더 빨리 목표를 이룰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는데, 올해 읽은 책을 보니 그게 쉽지 않을 것 같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일이 바빠져, 따로 시간을 내는 게 만만치가 않다.




난 늘 30대를 찬양해왔다. 내게 부양가족이 없어서겠지만, 30대의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이라고 했으며, 10대, 20대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전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딱 하나, 책에 있어서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책의 소중함을 뒤늦게 깨닫고 나니, 20대의 그 긴 시간들을 스포츠신문과 프로야구로 허송세월하면서, 거의 한권의 책도 읽지 않은 게 어찌나 후회가 되는지. 그래서 난 어려서부터 책 속에 묻혀 사는 지족초5년박예진님이나, 20대 초반에 고강한 내공을 쌓으신 에피메테우스님, 내가 아는 분 중 가장 책을 많이 읽는 평범한 여대생님이 부럽다. 성장의 과정에서 꼭 읽었어야 할 책들을 마흔이 다 되어 가는 나이에 뒤적이고 있는 내 모습이 난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진다. 중학교 2학년 이후, 어느 누구도 내게 책을 읽으라고 권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화도 난다.




책이 평생을 두고 가까이할 친구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이왕 사귈 친구라면 좀더 일찍 사귀었어야 했다. 서른이 넘어서 변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법, 진작에 책을 읽었다면 내가 좀더 올바른 사람이 되어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난 20대를 사는 인생후배들에게 이따금씩 책읽기를 권한다. 하지만 내가 지금사 느끼는 회한을 아직 젊은 그들은 느끼지 못하는 듯, 내 말을 듣고 독서에 취미를 붙이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책 말고도 인생을 배울 여러 길이 있는데, 책만이 정답은 아닐테지만, 그렇긴 해도, 그들 중엔 나처럼 “젊을 때부터 읽을 것을~!”이라며 뒤늦은 탄식을 할 사람이 있지 않을까?




인생은 나이대에 걸맞는 속도로 흘러간단다. 30대인 나의 인생은 현재 30킬로의 속도로 달리고 있고, 몇 년만 더 있으면 거기에 십킬로가 더 붙는다. 뒤늦게나마 책에 취미를 붙여서 다행이다. 좋은 친구인 책과 함께 늙어갈 수 있다는 게 나쁜 친구인 술.담배와 같이 늙어가는 것보다 훨씬 좋지 않는가? 늦게 만난 친구지만, 아니 늦게 만난 친구니까 더 친하게 지내야겠다. 책아, 늘 고맙다. 존재만으로 뿌듯함을 주는 친구는 그리 많지 않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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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04-12-04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이 글을 읽으니저, 책이 되고 싶어요 !!

비연 2004-12-04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저도 마태우스님의 글에 정말 동감합니다...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던 전 책이 절 구원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접어두었었습니다. 다시 책을 들었을 때 아...그게 아니었구나 깨달았고 그래서 더 열심히 읽게 되었었죠. 지금도 그 당시 못 읽었던 책 보충하고자 여기저기 널어놓고 읽는데 체력도 딸리고 게으름도 점점 늘어나고 해서....생각만큼 마구잡이로 읽혀지진 않네요..쩝. 저보다 어린 많은 사람들이 책이 얼마나 소중한 친구인 지를 빨리 알았으면 하는 마음. 저도 늘 있습니다^^

비로그인 2004-12-04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열심히 읽겠습니다. ^^

하이드 2004-12-04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어렸을적 구석에서 책만보고 불러도 대답도 안 하는 아이였대요. 대학교때까지도 꽤나 많이 정신없이 읽었는데, 그때는 내 맘대로 책 사 볼수도 없고, 책 한 권 사면 가슴 두근거리며 빨리 읽고 싶어서 집까지 막 뛰어가고 그랬던 생각이 나요. 회사 들어오면서 점점 멀어졌지만, 내심 '나는 책 많이 읽는 아이' 라고 생각하고 있었던게죠. 아마도 몇년만에 꽤 더웠던 올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 것 같아요. 회사 들어와서 5년 아쉽고, 무작정 읽었던 지난날도 아쉽습니다. 늦었다고 시작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지금이나마 시작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읽고 싶은 책들의 끝도 없는 리스트에 예전의 두근거림은 없지만, 행복함,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읽을 책 많음에 뿌듯하고 다행함과 보람을 느낍니다.

플라시보 2004-12-04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전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요. 무조건 모든 사람들이 다 꼭 봐야할 무언가 처럼 강박관념은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쩌면 그런것들 때문에 사람들이 책읽기를 힘들어하고 어려워 하는지도 모르잖아요. 그냥 즐기면서 읽으세요. 꼭 목표 달성 이런 느낌으로 읽다가 보면 책 읽는것도 하나의 일처럼 되어버리지 않을까요?^^

니르바나 2004-12-05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선 감동적인 고백에 추천 한방이요.

이러니저러니해도 책만큼 배신하지 않는게 드물지요.

사람한테 기울일 정성의 십일조만 바쳐도 아마 크게 대성할 것입니다.

어쩌나요. 늦었다고 생각한 순간부터라도 읽다보면 각성의 순간이 오겠지요.

독서에도 늦깍이는 존재합니다.
그나저나 3,000권이라!

하얀마녀 2004-12-04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충분히 올바르시다고 봅니다만... 역시 책이 좋긴 좋죠. ^^

노부후사 2004-12-04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구 깜짝이야. 제가 나오네요. 고강한 내공이라니 부끄러워요. 마태님. ^^;;

쩝... 책읽기에 관한 거라면 저는 플라시보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요. 책읽기의 의미는 무엇보다 즐거움에 있지요. 다만 그것이 읽으면서 얻는 즐거움이냐 아니면 읽고난 뒤의 즐거움이냐의 차이가 있는 거겠지만요.

마냐 2004-12-04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크..물량주의 독서...제가 올해 딱 그런거 같아요. 플라시보님 말처럼, 일종의 강박까지 생기구...좋은 친구와 오래도록, 편안하게 만나고파요. 이 친구와 당분간은 넘 치열하게 사랑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아요.

sooninara 2004-12-04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은 도둑질에 날새는줄 모른다잖아요^^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마태우스님 정도면 더 없이 훌륭하시니 자책 마세요..

미녀와 데이트하느라 책이란 친구와 멀어지시지만 않으면 돼요..ㅋㅋ

비로그인 2004-12-04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늘 부족하고 게으른 책읽기가 다시 한번 부끄럽습니다.

비누발바닥 2004-12-05 0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신이 번쩍드네요....열심히 읽어야 겠네요....나름대로 읽는다고 읽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인해 많이 읽지는 못하고 있거든요.....많이 읽고 느끼는 바도 많고 깨우치는 바도 많았으면 좋겠습니다....님도 열심히 많이 읽길 바랍니다....^^

이파리 2004-12-05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연애... 연애를 하시나요? 그동안 제가 마태우스님께 너무 무심하였나 봅니다.

한 달에 10권은 커녕 일주일에 한 권 읽는 것도 힘에 부치는 저로서는 마태우스님이 부럽기만 합니다. ^^

마태우스 2004-12-06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파리님/아네요 이파리님, 제가 님에게 무심했죠. 글구..님은 책 말고 또다른 좋은 친구가 있으시겠지요^^

비누발바닥님/아유, 아네요. 사실 내공만으로 따지면 제가 알라딘 내에서 하위 10%일 겁니다..

고양이님/님은 아직 젊으시잖아요. 제가 젊을 때 알라딘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는...

수니님/마침 제 연인도 문학을 하는 사람이니, 책과 멀어질 리는 없겠지요. 같이 영풍도 자주 가고 그런답니다. 책선물도 하고요^^

마냐님/전 나이들어 만나다보니 푹 빠져 버렸어요. 치열하게 만날래요

에피님/나중에 훌륭한 분이 되면 저를 잊지 말아 주세요^^

마녀님/왜 제 주변 사람들은 이런 좋은 친구를 소개해 주지 않은 걸까요... 정답은 그들도 몰랐다?

니르바나님/3천권의 목표가 너무 약소하긴 하죠?? 어쨌든 책만큼 배신하지 않는 게 없다는 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플라시보님/책 자체의 즐거움도 있지만, 책을 통해 뭔가를 이루려는 사심도 있나 봅니다. 그게 제 한계일지도.....

미스 하이드님/저도 5년만 더 빨리 책을 좋아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지만, 후회하지 않으려고, 지금이라도 만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려고 해요

폭스바겐님/어머 무슨 말씀을...제가 열심히 읽어야죠^^

비연님/그러게요. 젊은 친구들이 책의 소중함을 어려서부터 알면 좋겠지요. 님에게 책은 구원이었군요....제겐 인생을 바꿔준 고마운 친구^^

매직님/이런 말 모르세요? 매직님은 책보다 아름답다^^

진/우맘 2004-12-06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대학 다니면서 그 널럴했던 시간에, 점 50원짜리 고스톱을 치는 대신 책을 읽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매일같이 한답니다.

하지만 막상, 한참 자유로운 나이의 그들을 보면, 책보다도 많이 '싸돌아 댕기라'는 조언을 해요. 가정을 갖고 아이를 낳으면....책을 읽는 것은 가능한데, '싸돌아 댕기는 것'은 매우 요원한 일이거든요.

그러니까 나의 후회는, 싸돌아 댕기지도 않을거면서 책 안 읽고 뭐했나....뭐, 그런거로군. 앗, 내가 왜 여기서 뒤늦게 궁시렁거리고 있는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