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문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격증이 필요하다. 자격증을 발급받는 한가지 방법은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를 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출판사의 계간지를 통해 등단하는 것이다. ‘실용성’ 면에서는 당연히 후자가 좋지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아무래도 신춘문예가 낫다.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뒤 작품활동을 안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지만, 수많은 ‘문청’들이 신춘문예에 목을 매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리라.


미모가 뛰어나다는 특징이 있긴 해도, 내 여친 역시 수많은 문청 중 하나다. 26세인 그녀는 올해 처음으로 신춘문예에 도전을 한다. 책을 몇 번 내보니 문인이라도 된듯한 착각을 하고 살았는데, 그녀가 이번에 준비한 소설을 읽으니 나 자신이 부끄럽다. <대통령..> 어쩌고 하는 소설과는 차원이 틀린 소설, 그런 수준의 소설을 쓰는 사람은 이 땅에 차고 넘치고, 그들 모두가 신춘문예를 노리고 있단다. 멋진 소설을 쓰고도 그녀가 자신없어 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여친에게 힘이 되어주기 위해 나도 신춘문예에 소설을 내기로 했다. 거기 응모하는 사람이 모두 수준높은 본격문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안다면 조금은 위안이 되지 않을까 해서다. 내 실력을 과신한 미녀는 나한테 “같은 신문사에 내면 죽어!”라고 하지만, 난 기필코 같은 신문사에 소설을 보낼 생각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다 구상해 놨지만, 문제는 시간이다. 마감일인 12월 9일이 되기 전에 A4 10장 내외의 소설을 써야 하는데, 그러자면 하루 정도는 밤을 꼬박 새야 한다. 매일같이 술만 마시는 내가 과연 하루를 낼 수 있을까. 내야 한다. 그리고 낼 것이다. 미녀를 위해.


생각해보니 몇 년 전에 신춘문예에 소설을 투고한 적이 있다. 3년, 어쩌면 4년 전인지도 모른다. 하루 밤을 꼬박 새며 13장짜리 소설을 완성했고, 마지막날 택배로 조선일보사에 보냈다. 조선일보라니 의아해하실 분이 있을까봐 줄거리를 소개한다. 한 주부가 조선일보사에 불을 지르다 붙잡힌다. 감옥에 갇힌 그녀는 지난날을 회상한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착하던 남편이 경품 때문에 조선일보를 구독하고 난 뒤 서서히 미쳐간 것. 늘 북한이 쳐들어올까봐 안절부절 못하고, 모든 사람을 간첩이 아닐까 의심하며, 세상은 몽땅 음모로 가득차 있다고 믿는다. 결국 남편은 아내마저 간첩으로 의심하다 정신병원에 간다.


좀 너무한 게 아닌가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한 짓거리를 신문지면에 매일같이 해대는 조선일보를 보니 미안한 마음이 일시에 사라졌다. 요즘은 그때보다 훨씬 더 극악한 행태를 보이고 있으니, 소설 한편을 더 쓸때도 되었다. 조지 오웰이 쓴 <1984년>처럼, 대한민국을 조선일보가 지배하는 그런 소설을. 첫 시작은 이렇다. 조선일보 사장이 이렇게 말한다. “대통령 좀 오라고 해!” 저번과는 다른, 좀 완성도가 높은 소설을 써봐야겠다. 그런데 과연 시간이 날까. 참고로 다음주 역시 매일 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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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4-11-21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조선일보에 투고한 그 소설 정말 불후의 명작이어요. 줄거리만 들어도.....

그러니까 올해 신춘문예 당선자 명단을 살펴 보면 마태님의 26세 그녀의 정체를 알 수 있겠군요?^^

비로그인 2004-11-21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하하~ 불후의 명작이 될것 같은 불길한(?)예감이 ^.^

로드무비 2004-11-21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은 '밤의 대통령과 기생충'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탈고 직후 제가 교정을 봐드리고 싶은데요.^^

파란여우 2004-11-21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카테고리가 '내가 본 영화들'이네요..근데, 영화얘기는 없고, 26세 미녀와 관련된 신춘문예 얘기만...흐흐 마태님! 카테고리좀 확인해 주세요!..이 글 올리고는 누구 만나러 나갔을까요?^^

노부후사 2004-11-21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하고 있겠습니당~~

stella.K 2004-11-21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게 싫어요. 무슨 장원급제나 자격증 따는 거 같아서 영 꺼끄럽다는...하지만 또 어쩌겠습니까? 마이너가 되지 않을려면 그 방법이 제일 낫긴하죠.

톨스토이나, 카프카, 도스토옙스키 같은 세계적인 문호들 그런 데 거쳤다는 말 못들었는데...그런 거 거치면 아무래도 그쪽에서 원하는 뭔가를 알고 있어야 할 것만 같아 자유롭지 못할 것 같아요. 문학에, 예술에 정답이 어딨습니까?

아, 난 이래서 영원한 아웃 사이더라니까...

아영엄마 2004-11-21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6세 미녀가 누군지 저도 궁금해요. 조선일보사가 깜짝 놀랄 정도의 멋진 글 쓰시기 바랍니다~^^

하얀마녀 2004-11-22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소설,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

마냐 2004-11-22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소문이 미처 안난 모양이네요. 출판사에서 조르지 않더이까...굉장한 소설이었네요. 이번 것두 그러리라 믿슴다. ^^

미완성 2004-11-22 0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나, 어쩜 이렇게 상상력이 넘쳐 흐를 수가 있는 겁니까..부럽습니다.

꼭 26세 미녀와 같은 신문사에 글을 보내시길 *.*

마태우스 2004-11-22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과님/바퀴벌레를 가지고 장문의 글을 쓰신 사과님의 상상력에 비할 바는 아니지요. 열심히 쓰겠습니다. 벌써 한페이지 썼어요.^^

마냐님/아이 왜이러십니까 제 수준을 뻔히 아시면서^^

마녀님/하하, 저두 읽고 싶은데 어디다 저장했는지 찾을 수가 없네요. 다행스럽게^^

아영엄마님/근디 왜 갑자기 이름을 바꾸시고 그러세요. 그전 이름이 전 훨씬 좋아요. 글구 26세 미녀, 내년 초 신문에서 확인하세요^^

스텔라님/신문이 문인 선발권을 갖는 건 일제 때처럼 변칙적인 시기에 국한되었어야 했어요. 하지만 그 뒤에도 계속 그러는 건, 한번 쥔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게 아닐까 싶네요. 일례로 조선일보는 자기네가 위기에 몰리면 자기 출신 신춘문예 애들한테 옹호하는 글을 쓰게 하더이다.

에피메테우스님/기대 하심 안되죠. 제 수준 뻔히 아시면서...

여우님/카테고리가 틀렸군요 정말. 카테코리 이름을 '문화 사이트'로 바꾸어 버릴까요?

로드무비님/저...그 소설에는 기생충이 안나오거든요. 다른 이름 지어 주세요!

고양이님/늘 궁금한데요, 이름은 고양이지만 이미지는 원숭이거든요. 왜 그러신 거죠??

깍두기님/그럼요, 어찌나 소설이 멋진지 놀라 자빠지겠더라구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니르바나 2004-11-22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은 신춘문예 희곡에 투고하세요.

시나리오 공모전이던가요.

소설로는 인물들의 성격이 다 살아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제 소견입니다.

stella.K 2004-11-22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마태님께 또 한수 배웠습니다. 그럴려면 더 똑똑해지고 자기 소리를 분명히 낼 수 있어야 하는데...

maverick 2004-11-23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그 줄거리로 한편 완성해주세요~~ 대박은 못나더라도 매니아 팬은 생길거 같은데요! ^^ 조지오웰의 뒤를 잇는 마태우스의<198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