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으로 한쪽 가슴을 도려낸 어머니가 있다. 어느날, 우연히 가슴을 만지던 딸은 한쪽 가슴에 몽우리가 잡히는 걸 발견했다. 딸은 당연히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당신이 그 딸이라면, 그리고 미성년이 아닌, 40세가 넘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쪼르르 엄마한테 달려가 “나 유방암일지도 몰라!”라고 할까?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정확한 진단이 나올 때까지 엄마에게 말하는 것을 보류할 것이다. 그게 유방암일 확률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설사 유방암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해도, 엄마한테 선뜻 말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유방암에 걸려봤던, 그래서 유방암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질병인가를 알고 있는 엄마에게 걱정을 끼쳐 드리는 게 마음이 아파서다. 이건 엄마에 대한 자식의 배려일게다.
누나의 혈당치가 115g/dl가 나왔단다. 조금 높긴 하지만 혈당의 정상치는 70-120, 내 생각에 크게 걱정할 일은 분명 아니다. 당뇨 환자를 만들기 위해 정상 혈당치를 내리는 게 요즘의 추세긴 하지만, 몇 번 더 체크해서 계속 높다면 문제삼을 일이지, 한번 잰 걸 근거로 난리법석을 떨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 누나는 여동생에게 쪼르르 얘기를 했고, 입이 싼 여동생은 그 즉시 엄마한테 그 속보를 전했다. 엄마는 그날 밤새 우셨다.
우리 엄마에게 당뇨병은 지긋지긋한 천형이었다. 아버님이 당뇨병 진단을 받은 건 30대 후반, 그 이후 돌아가실 때까지 20년이 훨씬 넘도록 어머님은 하루 두 번씩 아버님의 혈당을 체크했고, 인슐린을 놔드렸다. 아무리 인슐린을 맞아도 합병증은 오는 법, 아버님에겐 하나씩 합병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눈에, 그 다음엔 신경, 그리고 마지막에는 신장에. ‘발기불능’이라고 쓰인 아버님의 챠트를 봤을 때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고, 혈중 크레아티닌 농도가 5가 넘어 투석을 해야 한다고 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92년부터, 일년 중 몇 달은 병원에 입원하기 시작한 아버님은 99년 초부터 2001년 말까지 꼬박 3년간을 병원에서 보내셨다. 아버님의 입원 기간 동안 병수발을 하신 건 전적으로 어머님이었고, 나는 물론이고 두 딸도 간병에 일말의 힘이라도 보탠 적이 없다. 즐겁게 살아도 짧을 십년을 간병으로 보낸 어머님에게 당뇨는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당뇨 환자를 볼 때마다 어머님은 매주 월, 수, 토에 하루 8시간의 혈액투석을 받으시며 고통스러워 했던 아버님의 모습을 떠올렸으리라.
그런 어머님께, 40이 넘은 딸이 ‘당뇨’라고 얘기한다. 그것도 정상 범위 안에 포함되는 혈당치를 가지고. 누나에게 따졌다.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왜 난리를 치냐고. 누나의 말이다.
“엄마한테 얘기 내가 안했어. 영자(여동생. 가명)한테 ‘엄마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말해줬단 말야!”
영자. 많이 모자란 내 여동생. 있는 말은 확대.재생산하고, 없는 말도 만드는 그녀. 이간질의 대명사. 그녀에 관한 일화를 하나 드는 게 그녀에 대한 올바른 설명이 될 듯하다.
누나네가 미국에 연수를 갔을 당시, 누나의 시아버지가 다리가 부러진 일이 있었다. 누나는 정형외과를 하는 내 매제에게 도움을 청했다. 한번 봐드리고, 안심시켜 달라고. 여동생은 그 얘기를 듣자 대번에 미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안그래도 힘든 우리 남편을 왜 괴롭히냐고(평소 남편에게 잘해주면 또 모르겠다). 여기까지 했으면 됐을 터이지만, 동생은 한마디를 더했다. “걔(남편)가 뭐라는 줄 알아? 쉬는 날인데 쉬지도 못하겠네라며 투덜거렸어!” 착한 매제가 그랬을 것 같지도 않지만, 설령 그랬다손 쳐도 자기 남편의 허물을 감싸주는 게 아내의 도리가 아닐까. 누나는 내게 전화를 해서 이렇게 말했다.
“민수(매제 이름. 가명)가 착한 줄 알았는데 그럴 줄 몰랐다”
여동생은 그런 사람이다. 엄마가 여동생과 얘기를 나누던 중 누나 얘기를 언급했을 때, 여동생이 그걸 최대한 왜곡시켜 누나에게 얘기함으로써 분란을 야기했던 경험은 수십번이 넘는다. 그런 과거로 보건대 여동생에게 얘기한 것이 엄마에게 빛의 속도로 전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물론 여동생은 “언니가 죽어버리고 싶다고 했다”는, 하지도 않은 말까지 덧붙여-이럴 때면 인간의 상상력이 원망스럽다-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어제 엄마가 누나집에 갔을 때, 누나는 혈당기를 사야 하네 마네 하면서 엄마의 속을 후벼팠고, 집에 온 엄마는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늘 속만 썩이는 딸이지만, 자식이 당할 고통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셨던 거다. 난 정말 짜증이 났고, 내가 누나에게 전화를 했던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한번도 엄마를 기쁘게 해드린 적이 없는 딸이, 왜 없는 걱정까지 만들어 엄마를 괴롭히냐고.
내 말이 누나에게 반성을 촉구하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 내가 전화를 끊자마자 누나는 엄마에게 곧바로 전화를 해서 성화를 부렸단다. “걔는 내 걱정은 안해주고 엄마한테 왜 말했냐고 화만 내더라”고. 궁금해진다. 누나는 왜 나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의산데, 그리고 아버님 때문에 당뇨병에 대해서는 좀더 열심히 공부했었는데. 내게 전화했다면 “그거 별거 아니니까 한번 더 재봐”라고 안심시켰을 텐데, 왜 쥐뿔도 아는 게 없는 여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하소연을 했을까. 모자란 사람들 틈에 있으면 사는 게 힘들듯, 못난 자식을 넷이나 낳아 놓은 우리 엄마 이마엔 주름살이 늘어난다. 이런 제기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