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행정수도 이전이 위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난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안하면 되지”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수도이전과 노무현을 동시에 반대해 온 내 친구의 말이다.

“이게 다 노무현의 음모 같아. 이제 충청권은 확실히 열린우리당 편이 되었잖아”

이 친구, 아무래도 신종 노빠 같다. 노무현을 너무 과대평가한다. 탄핵 때도 그러더니, 모든 게 다 노무현의 음모다. <그림자 제국>이란 책을 감명깊게 읽었다더니, 그 뒤부터 사람이 이상해진 걸까. 그의 말이다.

“수도권 과밀 꼭 해소해야 되니? 밀집으로 얻는 이득도 많잖아”

갑자기 궁금해진다. 그러는 그 친구는 왜 사람이 바글바글한 서울을 떠나서 분당의 한적한 아파트에 살고 있을까.


2. 100분 토론을 보다

참석자는 다음과 같았다. 먼저 헌재를 존중하는 세력.

박준선  (변호사)

최경환  (한나라당 국회의원)

최막중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다음은 부정하는 세력.

김갑배  (변호사)

유시민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김중석  (지방분권국민운동본부 대변인)



헌재의 판결문을 보지 않았던 나는 100분 토론을 보고서야 평소 접하지 않던 ‘관습법’ 때문에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가 성문법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관습에 의해서도 지배받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 고마운 헌재, 권위의 상징이기도 한 그 헌재의 위헌판결에 감히 저항하는 세력이 있었다. 헌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수도가 서울인 것은, 그리고 앞으로도 쭉 서울인 것은 우리 국민이 합의한 것이고, 헌법으로 규정된 것이란다. 이명박이 “국민의 승리”라고 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말. <경국대전>이란 말도 국사 시간에 듣고 처음 듣는 것 같은데, 그게 지금도 중요한 법전이라는 걸 배울 당시엔 왜 몰랐을까. 역시 학교 때 배운 건 다 쓸데가 있다. 이에 대해 발칙한 김갑배 변호사는 “헌재가 헌법을 새로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렇게 말했다.

김갑수: 그렇게 관습적인 법을 들어 반대를 하면 호주제 같은 거 없앨 때도 헌법 개정을 해야 하냐?

우리의 박준선 변호사는 여기에 대해 지극히 논리적인 반박을 하셨다.

“헌재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냐.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라”

궁색해진 저항세력의 괴수 유시민은 “존중은 한다”고 안심을 시킨 뒤 “우울하다”는 말을 여러번 반복했다. 마음으로는 절대 복종하지 않겠다는 뜻, 법치국가에서 국회의원이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참다못한 방청객이 나섰다. “우울해하지 마라. 그래서 무슨 발전이 있겠느냐”

아,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우울에는 발전없다! 즐겁게 살자. 


유시민: 관습법으로 수도이전을 막은 사례가 외국에 하나라도 있으면 예를 들어보라.

이, 이런. 무조건 외국 것만 쫓는 사대주의자. 박준선이 나선다

“왜 외국을 따르려고 하냐. 우리 헌법은 우리 역사가 담긴 고유한 법체계다”

아아, 더 이상 감탄이 나오지 않는 멋진 말...그때 헌법학자가 전화를 했다.

학자; 관습법은 영국처럼 왕이 있는 나라에서나...어쩌고 저쩌고...

박준선: 왜 영국 얘기만 하냐. 독일 얘기도 좀 하자.

유시민: (기다렸다는 듯) 그래, 독일 좋다. 독일은 본에서 베를린으로 옮길 때 위헌문제나 국민투표 같은 건 없었잖냐.

그러고보니 유시민이 독일에 오래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음, 이런 사람과는 상대 않는 것이 상책, 박준선의 답변이다. “헌재의 의견을 존중하라!”


출연료만 받고 아무말도 안하던 게 미안했던지 우리편인 최막중(이름이 좀 이상하네...)이 끼어든다.

“수도 이전보다는 다른 대안을 찾는 게 좋다”

예를 들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 최막중의 말이다. “서울에 차가 밀리는 건 대중교통 이용을 활성화해서 해결하자” 으음, 좋은 의견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최교수야 당근 대중교통을 이용하겠지만, 유시민은 그래도 계속 차만 타고다닐 게 아닌가. 최경환 한나라당 의원이 도와준다.

“그러니까 전략 기능을 빼고 내치 기능을 다 지방으로 옮기면 되지 않는가?”

아무리 우리편이라도, 이럴 바에는 행정수도를 옮기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 틈을 비집고 유시민이 질문을 한다.

“어디까지 옮기면 행정수도냐. 청와대만 안옮기면 되냐?”

여기에 대해 최경환은 명확하게 해석을 내려준다. “중요한 건 하나도 옮겨선 안된다!”

그렇다면 최경환의 생각은 뭐지? 그의 원대한 생각을 들어보자.

“김갑배 변호사가 유력신문의 논조가 90년엔 옮기자였는데 십년 후엔 옮기지 말자로 바뀐 걸 추궁하는데, 그때와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그때는 클로우즈드, 즉 닫힌 시대고 지금은 글로벌 시대다. 즉 우리 수도권이 상해나 동경과 경쟁하는 시대란 말이다”

아아, 우리는 서울보다 지방이 못사네 하고 투정을 부리지만, 정말 중요한 건 서울이 동경에게 이기는 것이며, 그걸 위해서는 서울을 더 밀어줘야 하는 거다. 그런 최경환이 이상한 말을 한다.

“위원회를 만들어서 수도권 과밀화 해소에 대해 논의하도록 하자” 왜? 과밀화가 경쟁력이라더니 이런 말을 할까. 이 말도 덧붙인다.

“명실상부한 지방분권을 하자는 게 우리의 정책이다” 그래, 그러니까 서울을 옮기는 것보다는 지방을 잘살게 하면 되는거다. 괜히 어렵게 생각할 게 없었다. 그, 그런데... 아까는 수도권이 세계와 경쟁한다면서 밀어 주자며?? 최경환이 이 딜레마를 해결해 준다.

“우리 당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그렇다.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가지 주장이 공존하는 곳, 그곳이 바로 한나라당이다.


박준선은 행정수도만 믿고 땅을 샀다가 손해를 본 사람들에 대해서도 잊지 않는다.

“대통령과 국회, 특히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땅 투기를 한 사람에 대해서도 이렇게 따뜻하게 감싸안아주는 박준선 변호사, 그는 진정 민중의 대변자이리라.


3. 결론: 해피엔딩

헌재 수호세력은 이렇게 헌재의 결정을 지켜냈다. 최경환의 말대로 수도이전은 당장 급한 게 아니다. 우리나라가 언제 위기 아닌 때가 있었냐만, 지금은 단군이래 최대의 불황이고 하니 수도이전보다 더 급한 게 많이 있다. 최의원은 수도이전에 드는 비용을 차라리 지방에다 지원하자고 한다. 경제도 어려운데 어떻게 그 돈을 마련하느냐는 건 둘째치고, 지방에 대한 최의원의 사랑에 천안에 직장이 있는 나로서는 감동할 수밖에. 서울 시민들이여, 앞으로도 수도는 영원히 서울이다. 아름다운 서울에서 영원히 한번 살아 보시라. 지금까지 그렇게 서울로 몰려왔는데도 수도권 인구가 전 인구의 47%밖에 안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만수산 드렁칡이 모여살듯이 우리 모두 수도에서 살아보자.

 

*헌재 편을 들어준 방청객 중 서울시 의원이 있었다. 그의 눈썹은 정말 멋있었다...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sweetrain 2004-10-22 0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마태님...추천 한방 하고 갑니다.

마냐 2004-10-22 0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우울한 하루였어요. 7명이 재판관이 국민투표 안한걸 이유로 든것도 아니구...경국대전 운운하며 아예 모든 반박의 기회를 차단....무조건 개헌 아니면 길이 없도록 했으니....더 이상 '소모적 논란' 벌이지 말구 까불지 말라는거 아닙니까.......추천은 열방이라도 해드리고 싶지만...그렇다고 이 우울함은 별로 낫지 않을듯..흑.

호랑녀 2004-10-22 0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헌재가 그렇게 쎈! 곳인 줄은 몰랐습니다. 불문법이 그렇게 중요한 줄도 몰랐구요.
진짜 호주제 폐지 그거 어렵겠네... 경국대전은 조선 초이고, 호주제는 조선 중기이니 괜찮을까요?

하얀마녀 2004-10-22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에 100분 토론 보면서 욕지거리 퍼붓기에도 지쳐서 보다가 잤습니다만... 마태우스님의 리뷰를 보니 정리가 되네요. 고맙습니다. 저도 추천.

비로그인 2004-10-22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웅... 조선이전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서 고조선의 수도였다는 (물론 그 정확한 위치에는 논란이 많지만) 평양을 수도로 삼기 위해 북진통일을 주장해도 할 말은 없겠군요...;;;

깍두기 2004-10-22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민가고 싶다는 사람들을 이제 이해해요. 우린 아직도 경국대전을 헌법 삼아 살고 있는 거라는 걸 어제 처음 알았다니까요. 진짜 우울해서 마태님의 기지에 찬 이 글로도 위로가 안되네. 그래도 추천은 해야지.

oldhand 2004-10-22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반도를 영역으로 했던 조선시대의 관습(?)때문에 북한은 아직도 대한민국의 영토를 점거하고 정부를 참칭하는 반국가단체인 것이군요. 헌재가 보안법 폐지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던것에는 그런 깊은 뜻이 있었던 거군요. (무릎을 친다) (저도 추천했어요. ^o^)

드팀전 2004-10-22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급 제안합니다.입법청원하는거죠.... <향후500년간 수도이전 논의 금지법>(그럴싸하지 않나요.?) ...역사적으로 뒷받침하는 논리도 있습니다.경국대전에 서울은 서울이고 앞으로도 서울이어야하는 관습법이 존재하니까.... ^^
법의 집행으로 향후 예측되는 결과는... 서울이 미어터져 나가고 물가와 부동산 가격은 부동의 세계 1위를 고수하는거죠.대기업 사장이나 이사쯤 되어야 집한채 사고 다른 시도에서 지하철 요금 1000원 할때 서울은 10000원하고...삶의 질은 개판되고....하나둘 자발적으로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래도 강력한 법집행이 되어야하니까..(왜 경국대전에서 그랬으니까) 수도 이전 문제를 논의 하면 국가안위를 흔드는 내란죄로 규정하여 국가보안법을 적용하고..... 다 미어터져 죽을때까지 계속 하는겨..끝까지 서울은 서울인겨..... 구호로 정리하겠습니다.

정부는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고 국토의 균형발전을 꾀하는 수도 이전 논의를
향후 500년간 금지하라!! 금지하라! 금지하라!

노부후사 2004-10-22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계에서 제일 살기 좋은 나라 중 하나가 노르웨이인데요. 노르웨이 자살율이랑 한국 자살율 비율이 어떨 것 같습니까? 둘이 삐까삐까 하데요. 한국이야 못살것 같아서 죽는대지만 노르웨이는 왜 죽을까요? 당최 지겨워서 못살겄데요. 직업 없어도 실업수당 나오지. 복지 혜택 좋지. 노르웨이 사람은 한국이 부럽데요. 나라가 워낙 역동적인 것 같아서. ㅋㅋ 이렇게 복닥대는 거 꼭 나쁘게만 볼 건 아닌 것 같아요. ㅋㅋ

마립간 2004-10-22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메디... (양쪽 모두)

마태우스 2004-10-22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은비님/고정하소서. 그럴수록 건강하게 사셔야 합니다.
마립간님/제정신인 곳은 알라딘밖에 없는 듯합니다
새벽별님/우리 헌법은 경국대전의 법통을 이어받은....^^
에피메테우스님/그래도...우리처럼 생계형 자살이 일어나는 나라는 너무 잔인한 사회죠....
드팀전/서울 곳곳에 땅이 있는 제가 찬성하는데, 서울에 땅 한평도 없는 지방 분들이 결사반대하는 이 딜레마.....
올드핸드님/님 글이 훨씬 더 훌륭하십니다.... 북한이 반국가단체인 이유도 그렇게 쉽게 설명을 해주시는군요^^
깍두기님/기지라뇨.. 쓰고나서 그다지 맘에 안들었어요. 더 잘쓸 수 있을 것 같았는데...흑흑
여대생님/아, 북진 통일을 해야할 이유도 그렇게 설명이 되는군요. 관습법의 효력은 정말 무궁무진합니다...
하얀마녀님/어제 백분토론 보셨다면 님도 오늘 근무에 애로가 많으셧겠어요^^
호랑녀님/그러게요. 앞으로 어떤 정책이나 법률 변경도 헌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되었어요
마냐님/유시민도 우울하다더니 마냐님도.. 서울의 땅부자라서 그런지 전 우울하진 않습니다...
아아 단비님/추천 감사합니다.

panda78 2004-10-22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습법 이야기 듣고는 정말 헛웃음이 나더군요. 흐흐. 올해 사시에 꼭 나올 듯.

조선인 2004-10-23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분 토론 안 보길 잘했군요. 고마워서 추천.

sweetrain 2004-10-23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주제는 1948년엔가 생긴걸로 알고 있어요..일본에서 들어왔다던가...여성학 수업을 잠결에 들어서...헷갈리네요...

sweetmagic 2004-10-23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