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에 이 소재를 가지고 우려먹은 적이 있지요. 죄송합니다. 재탕해서...

일시: 10월 16일(토)

누구랑?: 초등 친구들과

마신 양: 소주--> 노래방서 맥주--> 친구집 가서 양주 몇잔.... 비교적 멀쩡하게 집에 감.


대부분의 사람은 약속에 늦는다. 처음 만나는 사이라면 모를까, 여러번 만나서 편한 사람이라면 거의 100% 늦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걸 잘 이용하는 게 삶의 지혜다.


토요일날, 난 6시 동부이촌동에서 친구들과 약속이 있었다. TV로 야구를 보다가 서둘러 나왔지만, 그대로 가면 15분 정도는 늦을 것 같았다. 약속시간인 6시가 되자 한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때 난 지하철에 있었고, 이촌역에 가려면 몇정거를 더 가야 했지만, 그렇다고 먼저 그런 말을 하면 절대 안되는 법이다.

나: 여보세요?

친구1: 야, 나 지금 가고 있는데, 너무 밀려.

나: 뭐야 난 벌써 와서 기다리는데.(가증스런 거짓말...)

친구1: 강변이 꽉 막혔어.

나: 여의도에서 불꽃놀이 하잖아. 그것 때문에 그런 거야. 하여간 빨리 와.


친구 2한테 전화를 했다.

나: 안오고 뭐해! 난 벌써 와서 기다리는데....(두번째 거짓말)

친구2: 내가 늦는다고 했잖아! (이 친구는 미리 말한 게 무슨 벼슬인 줄 안다...)

다시 친구 3에게 전화를 했다. “너 도대체 언제 올거냐? 나 혼자 있는데, 너무 심심해!”(세번째 거짓말)

결국 난 전철서 내리기 전 세 번의 거짓말을 했다. 그때 전철역 밖에서 닭 소리가 들렸다. 꼬-끼-오!


6시 20분쯤 전철에서 내렸다. 하지만 출구를 잘못 선택하는 바람에 아주 황량한 곳으로 나와 버렸다. 그때부터 이촌동 xx 아파트를 찾아 하염없이, 그러나 천천히 걸었다. 걷는 동안 자꾸 전화를 걸어 친구 1, 2를 괴롭혔다.

“너 아직도 안오면 어떡해? 나 그냥 집에 갈래!”

“한시간 기다렸다, 한시간. 나 삐졌구, 오늘 십원도 안쓸거야!”

내가 약속장소에 도착한 건 6시 40분 가량, 그래도 난 일등이었다. 난 엄청난 도덕적 우위를 가지고 늦게 온 친구들을 대할 수 있었는데, 다섯명이 다 모인 시각은 오후 7시, 난 한시간 동안 기다렸다고 투덜거리며 친구들의 미안함을 자극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나도 늘 정각에 오는 건 아니다. 꾸물거리다 5분-10분씩 지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인 바, 절대로 기죽을 필요가 없다. 약속시간이 되면 무조건 전화를 걸라. 그리고 왜 아직도 안왔냐고 윽박지르라. 상대는 아마 십중팔구 “미안해. 지금 가고 있어”라고 할거다. 아주 드물게 “무슨 소리야 나 벌써 와있는데”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는 이렇게 둘러대면 된다. “어, 난 왜 니가 안보이지? 너 온 거 맞아?” 그렇게 말하면서 열나게 뛰어라. 도착한 뒤 친구를 만나면 약속 장소를 잘못 안 것처럼 우기는 거다. “저기서 만나기로 했는데 여기 있으면 어떡해!” 하면서. 이런 게 바로 삶의 지혜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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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inara 2004-10-18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다음번엔 한시간 늦게..히히..
매번 10분씩 늦는 저로선 얼굴 들 면목이 없군요..

ceylontea 2004-10-18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너무 재미있어요.. 나중에 저도 한 번 해볼래요...
그런데... 제 친구들은 대부분 제 시간에 오던지 미리 와 있더군요..

하얀마녀 2004-10-18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번 써먹어 보고싶단 생각이 드네요. 술값좀 굳을라나... ^^

니르바나 2004-10-18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와 가장 가깝게 지내는 친구와의 교유기입니다.
학년이 바뀌어 누구와 사귈까 살피다가 이 친구를 점찍고 나서 유혹하였습니다.
" 전시회있는데 같이 안갈래"
"그래"
"그럼 어디에 몇날 몇시까지 나와"
"알았어 그럼 그때 보자"
이러구 저는 약속을 잊고서 주말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주중에 했던 약속을 잊어버린 겁니다.
그럴수도 있는게 애들끼리 약속이고, 그게 다반사였으니 저는 크게 미안해 하지도 않았구요.
그런데 새로 시작된 월요일 아침에 먼저 와 있는 나를 보고 지나가는 그 친구의 얼굴에서
찬바람이 쌩하고 나더군요. 저는 그때사 내가 잘못을 크게 했구나 생각했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
그 이후에 얼마나 공을 들여서 사과와 아부를 했는지 기억이 다 나지 않아요.
무척 고단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약속시간"에 대한 학습에 얼마나 많은 비용을 지불했는지 모릅니다.
뭐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러명과의 약속은 그 분들이 합한 시간을 소모하는 일입니다.
저는 약속시간을 투쟁하듯이 지키려 애씁니다.
제 친구가 준 '소중한 선물'이니까요.

LAYLA 2004-10-18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너무 귀여워 어떡해 ♥

sweetmagic 2004-10-18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래서 지혜로운 자의 다른 얼굴은 영악함이라 하는거군요~~~흐흐흐

panda78 2004-10-18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할할할- 마태님 거짓말은 하나도 안 가증스럽고 깜찍하기만 합니다. 흐흐흐.
[마태님 만날 땐 속지 말아야지,불끈!]

노부후사 2004-10-18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은 부리님이 써야하는 거 아닌가요? 히히

마냐 2004-10-19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오라버니. 이런 삶의 지혜는 앞으론 살짝 알려주세요. 알라딘 번개땐 못 써먹게 되잖아요. 충실한 제자답게 잘 해치우는 걸 보여드리고 싶은데 말예욧.

마태우스 2004-10-19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자꾸 저보고 오라버니라고 하시는데요, 그러심 안됩니다. 애가 하나 있을 때마다 세살씩 플러스 해야 되는 거 모르세요, 마냐누님??
에피메테우스님/부리 지금 단식농성 중이에요. 이유는 저도 몰라요
새벽별님/그때 되면 까먹지 않을까요? 호호^^
판다님/제 컨셉이 귀여움이긴 하지만, 어제 거울을 문득 보니까 제가 너무 늙었더군요. 그래도 귀엽게 봐주시는 판다님께 깊은 감사를...
매직선사님/아네요 영악은 저와 어울리지 않아요!!
라일라님/어머어머! 난 몰라!
니르바나님/음, 아예 안나간 건 대미지가 크죠. 제 생각에, 약속시간에 조금씩 늦는 건 습관인 것 같더이다. 안늦게 오면 좋겠지만 다들 늦으니 저도 정각에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더군요.
마녀님/그런 목적으로 쓰셔도 될 것 같습니다.^^
실론티님/음, 친구분들이 다 그렇단 말이죠? 그럼 님은 이 방법 쓰시면 안되죠...
수니나라님/님이 십분 늦는 건 귀여운 겁니다. 얼굴 드세요!!

마립간 2004-10-19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bsessive & compulsive한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maverick 2004-10-19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친구중에 상습적으로 꽤 많이 늦는 넘이 있어서 다른 친구들끼리 한번은 골탕을 먹이려 담합을 했지요 약속시간보다 일제히 그넘만 빼고 1시간씩 늦게 나오자고.... 결과요? ㅎㅎ 담합했던 나머지 모두가 그 상습범을 30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 -;

마냐 2004-10-20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컥...그건 어느나라 계산법입니까. (마태님...알라딘 인구 구성비를 생각하세요. 돌 날라온다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