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 참 재미있게 읽었었다.

 

1. 한겨레

‘...돌출행동을 벌였으며...행진을 시도하면서 이를 막는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10월 4일 시청앞 광장에서 있었던 집회의 풍경을 한겨레는 이렇게 보도했다. 대체로 평화적으로 끝난 그 집회를 과격시위로 몰고가려는 의도가 역력한 대목. 인공기를 불태우는 등의 행위가 왜 ‘돌출행동’인지 모르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민주 사회에서 그 정도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소화기로 불을 끈 경찰의 행동이 오히려 문제가 있었으며, 민간 사회에 적응이 덜된 재향군인 몇 명의 행동을 전체로 확대시키는 보도 역시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을지로 일대에서 극심한 교통정체를 빚어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시위로 인한 시민들의 불편을 걱정하는 자세, 이게 바로 조선일보가 파업 때마다 써먹는 수법이다. 올 봄의 탄핵 반대 집회 때는 그럼 교통정체가 없었던가? 날이면 날마다 벌어지는 시위에 시민들의 불편은 말할 것도 없고, 교보문고를 비롯한 인근 상점들이 매출이 떨어져 울상을 지었지만, 그럼에도 그때 한겨레는 감격에 겨운 듯 촛불시위 장면을 보도하지 않았던가.


시청 앞 광장은 어느 특정 정파의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그 거리에 서서 자신의 주장을 소리높여 외칠 수 있어야 한다. 집회의 주체에 따라 논조가 바뀌는 한겨레의 보도는 그래서 유감이다.


2. 자발성

이번 집회는 순복음과 금란교회 등 대형 교회들이 주축이 되었다고 한다. 보수단체가 10만명을 모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첫 번째는 작년 3월 1일-두번 다 대형 교회들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순복음의 조용기 목사는 신도들에게 모임 참가를 독려했고, 대절 버스를 동원해 신도들을 실어날랐단다.


난 그 교회 신도들이 평소 얼마나 정치적인 소신이 뚜렷했는지 의문스럽다. 목사가 가라고 하지 않았다면, 버스를 대절하지 않았다면 자발적으로 시청 앞에 나갔을까? 별로 그랬을 것 같지 않다. 버스대절, 사실 이거 문제가 많은 거다. 탄핵반대 집회 때 열린우리당 당원이 버스 한 대를 대절한 걸 가지고 난리 굿을 했던 보수 진영이 한 대도 아니고 수십, 수백대를 동원해 군중들을 실어나를 수가 있는가. 탄핵반대 집회 때 모인 군중들이 다들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에 모인 것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그렇다. 우리나라 보수는 자발성이 모자라도 너무 모자란다. 교회 측의 동원력을 빌리지 않았다면, 올 봄의 탄핵 찬성 집회 때처럼 나이드신 분들 몇백명이 인도에 모여 태극기를 흔들었을 거다. 내 주위 사람 중엔 노무현을 김정일보다 더 싫어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들 중 한명이라도 시청 앞에 나갔다는 사실을 들어보지 못했다. 아니, 젊은 보수는 다 죽었는가? 마음 속으로 정치적 신념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한데 모여 세를 과시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언제까지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들과, 아무 생각없는 교회 신도들에게 큰일을 맡길 셈인가. 자발성이 없다는 것, 내가 보수 단체들에게 유감스러운 부분이다.


3. 시각

어제는 다들 출근하는 날이었다. 추석 연휴 때문에 주말까지 쉰 사람들도 모두 다. 회사에 가서 적응도 하고, 밀린 일도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는 그런 날 오후 세시 반에 어떻게 집회를 할 수가 있담? 한가한 거야 알겠지만 그렇게 티내면 ‘보수 애들은 다 실업자’란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탄핵반대 집회 때도 그런 말이 나왔다. 오해를 살까봐 퇴근시간 이후, 그리고 토요일과 일요일에 모임을 가졌었는데도 모 의원님들께서 “탄핵반대 집회에 나가는 애들은 다 실업자”라고 폭로하지 않았던가. 그 바람에 뜨끔해진 실업자 분들은 모임에 누를 끼칠까봐 집회에 안나가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보수 쪽은 왜 하필 월요일 오후 세시 반인가? 교회 예배 때문에 일요일이 안된다면, 최소한 퇴근 후에 달려갈 수 있게 일곱시 정도에 모임을 시작해야 할 게 아닌가. 조선일보 1면에 실린 십만인파의 모습은 구국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더불어 우리나라 실업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 줬다. 실업자라 하더라도 그렇게 티내지 말았으면 좋았을텐데, 이게 내가 그 모임에 가진 세 번째 유감이다.


4. 부시?

마이클 무어의 발랄한 말에 기대지 않더라도, 부시가 또라이라는 건 세계 모든 사람이 안다. 세계의 패권국을 누가 다스리는가는 우리같은 변방의 나라일수록 더 중요한 법, 부시 덕분에 우리는 이라크에 파병을 했고(노무현의 책임을 부정하는 건 결코 아니다), 그래서 지금 테러의 위협에 몸을 떨고 있지 않는가. 생각해 본다. 부시가 중동과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9.11 테러가 발생했을까? 그럼에도 아무 생각없이 사는 미국인 일부는 부시를 지지하며, 이번 대선에서 또 찍겠다고 한다.


미국 애들은 그렇다 쳐도, 부시 때문에 여러 가지로 시달림을 겪은 우리나라만은 부시를 지지하면 안되는 법, 하지만 어제 집회에서는 부시와 함께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를 구하자는 구호를 외쳤다고 한다. 아니 왜 박근혜나 최병렬, 정형근이 아니라 부시인가? 무식하기 짝이 없고 할 줄 아는 거라곤 싸움과 영어밖에 없는 부시를 연호하는 건, 보수단체 스스로 자신들이 또라이임을 증명하는 것이리라. 안그래도 아는 게 없다고 비판받고 있는 우리나라 보수, 제발 좀 참아달라. 보수가 보수다워야 나라가 바로서지 않겠는가. 다음 집회 때는 꼭 당신들의 능력을 보여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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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04-10-05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파란여우 2004-10-05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보수의 양대진영 모두 다 불성실하고 비정직하고 무지하며 힘의 원리에 의한 미국에 의존도 높은 꼬리치는 누렁이, 또는 말 잘듣는 보이스카웃 단원이라고 몇년전엔가 미국무성 회의때 거론되었다고 하더군요...이 비참한 현실을 인정하는 우리는 정말 몽매한 종족일까요?그나저나 이거 마태우스님의 정치성향이 드러난 이 글이 다시 파란을 가져오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이 듭니다. 하도 말많은 세상, 탈많은 세상이라서요...

비로그인 2004-10-05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저에게 화내시는 것 같아 죄송스럽 마음 뿐입니다.
개인의 하나님과 집단의 하나님이 왜 이렇게 달라질까.
늘 고민하며 삽니다. 믿는 사람의 한 명으로서 죄송하네요...

마태우스 2004-10-05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고양이님/앗 전 대형교회에 의존하는 보수를 비난한 거지, 교회를 비판한 게 아니어요. 그리고 저 화 안났아요. 죄송해하지 마세요.
파란여우님/앗 이 글에 제 정치 성향이 드러났습니까? 꼭꼭 숨겨 뒀는데 어떻게 그걸... 하여간 전 보수가 좀더 제대로 잘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낸 겁니다.
꼬마요정님/감사합니다. 동감해 주셔서...

노부후사 2004-10-05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계에서 신도수가 많은 교회 톱 10에 우리나라 교회가 6개가 들어가 있고 그중 1위가 여의도 순복음교회라더군요. 그런데 조용기 목사 접때 허위대학설립해서 잡혀들어갔었는데 어찌 된건지 통 소식이 없네요. 나쁜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oldhand 2004-10-05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수는 이념이 아니라 욕망이다.. 라는 김규항의 말이 생각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들에게서는 자발성이라는 덕목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겠지요. (진보 좌파로 분류되는 김규항의 보수에 대한 일괄적인 규정에 100%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제 개인적으로 한국사회에서 보수를 자처하는 세력들은 기회주의자 집단 혹은 사익 추구 집단으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습니다. 이들이 없어져야 진정한 보수 세력이 보수를 자처할텐데 말이죠.

비로그인 2004-10-05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책에서 본 문구가 생각나는군요. 진보는 모두 죽임을 당했고 보수는 스스로 자폭했다던...

soyo12 2004-10-05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조용기 목사 강연하던걸요. ^.^;;
어제 잠시 텔레비젼 뉴스를 보면서 10만이 모였다는 말에 내 주변 사람들이 역시소수인가?
그런 생각을 잠시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나온 조용기 목사와 일분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10만이면 조금 모인거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우리 나라 교회 정말 굉장한 집단입니다.^.~

하얀마녀 2004-10-05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해드리겠습니다. -_-+

sweetrain 2004-10-05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크리스찬으로 살기가 왜 이렇게 부끄러운지 모르겠습니다...구국 기도회...참 할 말이 없네요. 어쩌다 교회가 저렇게 되었는지...무엇이 구국인지...정말 너무 부끄럽습니다. 믿는 사람이라서...지금 이 땅의 일부 목소리 큰 교회들을 보면서..세상 앞에 부끄럽고 하나님 앞에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욕할만큼 독실한 크리스찬이 못되는 제가 더 부끄럽습니다..어쩌면 하나님의 이름을 부끄럽게 하는것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들이라는 생각이 자꾸자꾸 듭니다.

하이드 2004-10-05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하고 퍼가기.
조목조목 어찌나 맞는 말씀이신지요. 사무실이 바로 시청 광장이 보이는 앞인데,
어제 휴가내고, 집에 박혀있기를 잘했네요. 못볼꼴 볼뻔 했어요. 저 빼고는 온통 저 윗글의 딱 반대 성향의 사람들이 모인 사무실에서, 맘 고생해가면서 말이지요.

마냐 2004-10-06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 글이었군요. 당근 추천 들어감다.

마태우스 2004-10-06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추천 감사해요. 우린 서로 추천을 주고받는 각별한 사이^^
미스하이드니/님도 맘고생이 심하시군요. 저도 그런데..... 그나저나 시청 광장 앞에서 근무하신다니 걱정이 많겠어요
단비님/전 교회를 비난한 거 절대 아니어요. 교회를 이용하는 보수세력이 나쁘다는 거죠
하얀마녀님/늘 추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요님/거의 기업화되어 있죠.... 10만 동원은 진짜 일도 아닐거예요
여대생님/저도 님처럼 상황에 맞는 문구를 적절히 인용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올드핸드님/욕망인데 왜 자발성을 기대할 수 없는지요??? 진정한 보수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엔 동감!
에피메테우스님/님도 우리나라 교회가 10대 중 6개라는 걸 아시는군요. 역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