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를 '엘지'로 바꾸면 대충 본문내용과 맞는다..
난 휴대폰이 두 개다. 원래는 하나였다. 하지만 말로 안해도 될 것을 굳이 말로 하는 습관 때문에 ‘SK 텔레콤 최우수고객’ 리스트에 올라 버렸고, 그 덕분에 지갑.벨트, 그리고 여성용 핸드백 같은 선물들을 SK로부터 받기도 했다. 다달이 나오는 전화비를 줄여 보려고 휴대폰을 하나 더산 게 올 7월, 그 이후부터는 정말로 전화비가 팍 줄었다. 새로 가입한 전화가 무제한 정액제였으니까. 기존 전화는 수신과 문자용으로만 쓰고, 전화 거는 건 새 전화로만 썼다. ‘본전은 빼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쓸데없이 전화를 더 많이 하게 되었지만-예컨대 심심하면 내 전화기로 전화를 걸기도 하며, 집이 커서 그런 것도 있지만 집에서도 어머니랑 전화로 얘기를 주고받을 때도...-전체적으로 줄어든 전화비 고지서를 보면서 흐뭇해하곤 했다. 그런 내가 세대째의 전화기를 장만한 것이다. 왜?
올해 초, 엘지에 다니는 내 남동생이 전화를 했다. 그땐 번호 이동성 제도가 시행되고 있었는데, 전화기와 무관한, 장판을 팔던 남동생에게도 스무대가 할당된 것. SK에서 019로 가면 단말기를 바꿔야 했는데, 그때 난 최신 카메라폰이 생긴지 얼마 안되었던 탓에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었다. 내가 나중에 해준다고 하자 동생은 “그땐 필요없어. 지금 해달란 말이야!”라고 앙탈을 부렸다. 결국 어머님이 희생을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어제, 그러니까 무려 7개월만에 남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왠일이니”라고 물으니 다시 스무대가 할당되었단다. “못채우면 잘린다”는 말에 선선히 도와주기로 했다. 석달만에 해지가 가능하다고 하니 그냥 전원도 꺼놓고 서랍 속에 쳐박아 두었다가 조용히 해지를 하기로. 그래서 또 30여만원이 공중으로 날라가겠지만, 평소 동생한테 해준 게 없었으니 그정도는 도와줘야지 않겠는가. 그러고나서 누나한테 전화를 걸었다. 누나의 말이다.
“안그래도 xx한테 전화가 왔었는데, 걔가 아쉬울 때 말고는 전화를 하니? 이번에도 전화기 때문인 것 같아 안받았다‘
아, 눈치빠른 누나. 난 누나를 설득했다. “이번 한번만 도와주자”
누나: 안돼! 지금 내 휴대폰 12개월 할부인데, 할부기간이 아직 안끝났단 말야.
나: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지?
누나: 휴대폰 때문에 돈을 내고 있는데 또 휴대폰을 산단 말야?
나: 그럼 동생이 휴대폰이 아니라 세탁기를 팔았다고 생각하면 되잖아.
남동생은 이미 88세 할머니에게 "지금 있는 전화기를 새걸로 바꿔주겠다“고 포섭을 했단다. 할머니는 공짜인 줄 알고 좋아하셨다는데, 도대체 엘지 직원이 하나 있는 것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왜 이렇게 희생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엘지 걸로 바꾼 뒤부터 ”휴대폰이 미워졌다“고 하시고, 사촌형은 나처럼 새로 전화기를 사서 일곱달째 서랍에 쳐박아 둔 상태다. 이 무슨 국가적인 낭비인가. 3등도 그럭저럭 먹고 살았던 과거에 비해 2등도 먹고살기가 어려워진 시대가 되었으니 엘지의 발악이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다단계판매회사가 그러는 것처럼 명색이 대기업인 엘지에서 그런 식으로 주위 사람을 괴롭히는 건 매우 부도덕해보인다. 게다가 올 2월에 019로 옮겼던 사람들이 죄다 SK로 바꿨고, 빚을 내가며 혼자 열몇대의 전화기를 떠안은 엘지 직원이 많다는 걸 보면, 019의 경쟁력이 맨 밑바닥이며, 공룡에 가까운 KT와 SK를 이긴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이 아닐까. 전혀 관계없는 업종의 직원에게까지 못할 짓을 시키는 엘지, 당장의 숨통은 트이겠지만, 그게 과연 얼마나 갈까. 지금쯤은 새 번호를 부여받고 주인에게 사랑받을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엘지 단말기야, 미안하다. 난 너를 사랑해줄 수가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