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튜브라는 게 있다.
위장관 내 출혈이 있을 경우 혈액도 제거하고 수술 후 분비물도 제거할 목적으로 끼우는 튜브인데,
확실치는 않지만 Levin이란 사람이 발명해서 l-tube라 불리는 듯하다.
코를 통해서 튜브를 넣고 꿀떡꿀떡 삼키라고 해서 위까지 튜브를 넣는데,
학생실습 때 엘튜브 넣는 걸 보면서 ‘참 괴롭겠다’는 생각을 했다.

알고보니 엘튜브는 상상 이상으로 괴로웠고,
오죽하면 환자들이 가장 좋아할 때가 위수술로 암을 제거했을 때가 아니라
이 엘튜브를 뺄 때라고 하겠는가?
이걸 빼는 건 그냥 당기면 되는, 의학적 지식이 전혀 필요없는 행위건만
약삭빠른 교수들은 그래서 인턴이나 레지던트한테 엘튜브를 제거하라고 시키는 대신
자기가 직접 제거함으로써 환자들의 찬사를 받으려 했고,
더 고수는 굳이 환자 앞에서 레지던트에게 “이 환자 엘튜브 제거하라”고 지시를 내림으로써
환자의 고마움이 다른 이에게 가는 걸 방지했다.

팔자에 없이 엘튜브를 낄 때가 있었다.
이대 목동병원에 갔더니 레지던트가 다짜고짜 엘튜브를 끼웠다.
“자, 꿀떡꿀떡 삼키세요. 옳~지!”
엘튜브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괴로웠다.
한시간이 지났을 때 너무 힘이 들어 “엘튜브 좀 빼주시면 안될까요?”라고 했다가
레지던트한테 심한 야단을 맞았는데
다행(은 아니고 어찌어찌해서) 홈그라운드인 단대병원으로 옮기게 됐다.
마침 응급실에는 내 지도학생이 응급의학과 전공의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반가워요. 저 엘튜브 좀 빼주면 안될까요?”
그는 무척 난감해하더니만 “제가 최대한 힘써보겠습니다”라고 한 뒤 사라졌고,
그 뒤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시간을 더 엘튜브를 끼고 있었는데,
나중에 시술이 잘 끝난 뒤 담당교수가 이렇게 말하는 거다.
“엘튜브는 더 이상 안해도 되겠어요.”
의식이 혼미했지만 그 말만은 내 귀에 또렷이 들렸고,
말은 못했지만 그 교수가 하느님처럼 보였다.
그 뒤로 병원에 며칠 더 있었지만,
엘튜브를 끼우지 않은 병원은 충분히 있을만 했다.
지금 내게 가장 무서운 게 뭔지 묻는다면 볼 것도 없이 엘튜브라고 대답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