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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평점 :
“그 사람이 책도 썼나요?”
파울로 코엘료의 <11분>을 읽고 있는 조교에게 내가 했던 말이다. 코엘류와 코엘료는 엄연히 다르건만, 난 코엘료를 얼마 전 잘린 축구감독으로만 알았다. 게다가 그 제목이라니. 축구는 엄연히 ‘열한분’이 하는 경기가 아닌가. 하지만 그가 엄청난 베스트셀러를 쓴 브라질 출신의 작가라는 걸 알았을 때, 난 세상은 넓고 알아야 할 것이 많음을 깨닫게 된다.
읽어야 할 다른 책도 있고, 무엇보다도 유행에 휩쓸려 들어가기 싫었기에 난 그 책을 외면해 왔다. 하지만 그런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리 어머니가 그의 또다른 저작 <연금술사>를 선물로 받으셨고, 조교 선생은 내게 책을 빌려 줘버렸다. 신의 뜻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읽기 시작한 게 바로 <11분>이다. 초반부는 딱 내 스타일이었다. 이쁜 여자가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그런 스토리.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기괴해지더니 성에 대한 저자의 독특한 관점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그때부터는 진도가 어찌나 안나가는지, 마지막 남은 덩을 털어내듯 온 힘을 다해 책장을 넘겨야 했다. 유감스럽게도 책을 읽기 전의 선입견처럼 이 책은 잠자리에서 발휘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책이 아니었다.
“서로 사랑하자. 그러나 소유하려 들지는 말자(271쪽)”
저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하지만 사랑이란 건 어느 정도의 소유를 전제하고 있으며, 저자의 말대로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만” 사랑이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한발 더 나아가 책의 남녀는 상상 속의 성이라는 지극히 희한한 방식으로 관계를 갖는다. [그는 상상 속에서 그녀를 애무하고 있었다...하지만 실제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다(213쪽)]
접촉이 없이 사랑을 나누기, 이게 가능하기나 한 걸까. 가능하다고 해도 난 그럴 마음이 없다. 생각하기를 싫어하고 단순하기 짝이 없는 나로서는 저자의 복잡다단하고 심오하며 철학적이기도 한 사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딱 한가지만 빼고. 여성상위가 여자에게 훨씬 더 큰 만족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주장은 경청할 가치가 있는 말인 것 같다.
책의 배경이 되는 스위스라는 나라는 정말 좋은 곳인 듯하다. 주인공인 마리아는 브라질에서 건너온, 미모 말고는 가진 게 없는 이방인일 뿐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스위스는 취업비자를 내주고, 부당한 해고에 항의하는 그녀에게 5천달러나 준다. 비싼 비행기값을 들여 그녀를 브라질서 데리고 왔음에도. 마리아는 원할 때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릴 수 있고, 성폭행을 당할 위험도 없이 거리를 활보한다. 이 땅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얼마나 심한 탄압에 시달리는가를 생각해 볼 때, 스위스는 이주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천국일 듯싶다.
책 뒤에다 리뷰에 쓸 거리를 쓰는 게 버릇이 되다보니, 이 책처럼 빌린 책을 읽고 리뷰 쓰기는 영 힘들었다. 할수없이 휴대폰의 메모란에다 몇자를 적었는데, 아무래도 종이에 쓰는 것만 못한 것 같다. 나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은 역시 책을 사서 보는 게 좋다.